➊ 시집 <배틀그라운드>
게임 <배틀그라운드>에 대한 연작시를 게임 맵별로 묶은 시집이다. <배틀그라운드>의 세계관에 직접 창작한 국적 불명의 두 여성 송경련, 왕밍밍을 투입해 그들을 시적 화자로 등장시킨다.
➋ 게임 <배틀그라운드>
시집 <배틀그라운드>의 서문에 ‘배틀그라운드 용사 문지성에게’라고 썼는데, 그가 내 친오빠다. 오빠가 방 안에서 늘 헤드폰을 쓰고 플레이어들과 “거기 사람 있으니까 가지 마” “빨리 점프해” 같은 현실에선 잘 하지 않는 말들을 하는 것이 이상하게 흥미로웠다. 오빠 방에 들어가 게임하는 걸 지켜보니 더 재미있더라. 낙하산을 펼쳐서 어떤 섬에 떨어지는데,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고, 아무 데나 무작위로 생기는 원 안에 들어가야 체력이 닳지 않는다. 그런데 그 원이 점점 줄어들어 끝까지 살아남는 한 사람이 이기는 세계인 거다. 서사적으로 완전히 매혹됐다. 계속 오빠 방에 살다시피 하면서, 오빠는 책임감 있게 게임을 하고 나는 그 모습을 지켜봤다.
➌ 에란겔 초원 맵
가장 좋아하는 맵. <배틀그라운드>의 맵들은 외롭고 쓸쓸한 폐허 같은 풍경이고 비장미가 감도는 페이소스가 있다. 이 맵에 ‘갓카’라는 밀밭이 있는데, 햇빛이 드는 아름다운 곳이다. 위급한 상황임에도 풍경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➍ 세계관
게임은 하나의 거대하고 정교한 세계관 안에서 작동된다. 하지만 시는 각 편마다 세계관이 다르다. 그것이 시가 지닌 자유로움이기도 하지만, 시공간이 정해진 세계 속에서 역설적으로 시도 새로운 자유로움을 찾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 쓴 시의 화자가 오늘 쓴 시의 화자고, 연속성을 지닌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으로 시집 <배틀그라운드>를 썼다.
➎ 게임 속 아이템과 시적 정황
게임 속엔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 한가득 있다. 말하자면 이미 마련된 세트장 안에 들어가서 상상을 하는 것이다. 나는 시를 쓸 때 항상 어떠한 정황에서 시작하는 편이다. 이미지에서 시작하는 시인도 있고, 하나의 표현에서 시작하는 시인도 있는데, 나는 어떤 정황이 주어질 때 상상력이 발동되는 편이거든. 게임에는 주울 수 있는 정황이 너무나 많다.
➏ 공간
시를 쓸 때 공간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책기둥>은 책에 대한 메타적 시들이 많다. 작가와 비평가와 독자가 잔뜩 등장해 갑론을박을 한다. <배틀그라운드>를 오빠의 게임 방에 들어가서 쓴 것처럼 <책기둥>은 도서관에서 썼거든. 아침, 점심, 저녁에 도서관 세 곳을 옮겨 다니면서 책에 대한 시를 쓰게 되더라. 나중엔 도서관이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가상의 공간 <배틀그라운드>는 이방인의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어떤 시는 게임임을 환기하며 의식하고, 어떤 시는 실제 일어나는 전쟁 중 쓰인 시처럼 비장했다. 요즘 꽂힌 공간은 내 방이다. ‘내 방에서 살아남기’로 유튜브 브이로그를 하고 있다.
➐ 게임에 대한 시라니
게임에 대한 시집을 낸다고 할 때 낯설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었냐고? 그런 사람도 있었겠지. 하지만 대체로 그렇지 않았다. 연배가 있으신, 이를테면 황인숙 시인님께서 <배틀그라운드>를 재미있게 읽었다고 말해주셨다. 동시대 시를 쓰는 사람들은 열려 있다. 어떤 시도를 해도 놀라지 않는다. 나에게 시는 가장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말하기다. 가끔 소설을 써놓고 내가 시라고 우기는 나태함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➑ 모바일 게임 <스카이>
영혼을 구하고 날개 빛을 전부 모으면 죽는 게임이다. 죽는 게 목표다. 숭고한 죽음이지. 보통 게임은 목적지에 가는 게 목표지만, 이 게임에선 영혼을 구하지 않으면 목적지에 가봤자 문이 열리지 않는다. 목적지에 가는 것보다 더 많은 이들을 구하는 게 중요하다. 개발사에서는 ‘친절함을 가지고 서로를 찾는 게임’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계엔 적이 없고, 영혼을 찾으면 여러 동작을 알려준다. 인사하는 동작, 포옹하는 동작 등. 동작엔 아무런 기능이 없다. 그래서 좋다. 게임이라면 으레 경쟁하고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는데, 이건 그냥 휴식을 취하듯 할 수 있다.
➒ 소설 <스카이>
이 소설에 영감을 받아 단편을 하나 썼다. 제목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어떤 시선으로 사랑하는지에 관한 소설>이다. 친구와 손을 잡으면 체력이 늘어나고 포옹을 하면 날 수도 있을 만큼 체력이 강해진다. 그렇게 손을 잡은 이들이 새벽에 사라지는 이야기다. 손 글씨로 써서 우편으로 독자에게 글을 보내는 서비스를 했는데, 그때 보낸 소설 중 한 편이다.
➓ Dial-A-Poem
미국 시인 존 기오르노가 1960년대에 시도한 방식인데, 전화로 시를 낭독해주는 서비스다. 코로나 시대에 시 낭독회조차 제대로 열기 어려운 마당이니, 이렇게 전화로 시를 낭독해주는 서비스를 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원하는 독자에게 일대일로 전화를 걸어 시만 낭독하고 끊는 거다. 나아가, 지면이 아니라 전화로 신작 시 발표를 하는 건 어떨까? 오래전에 시도되었지만 지금의 게임과도 닮은 점이 있는, 영감을 주는 서비스다.
⓫ 게임이 된 시, 시가 된 게임
시도 게임이 될 수 있고 게임도 시가 될 수 있다. 시를 읽다가 QR코드를 찍으면 그 시 속 맵으로 들어가는 형식도 가능하지 않을까? 텍스트라는 형식을 포기할 수도 있다. 시는 낭독으로서도 존재할 수 있으니까.
⓬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영화는 일찍이 문학보다 먼저 게임 같은 형식을 시도했다. 넷플릭스 영화 <블랙미러: 밴더스내치>는 게임 프로그래머가 ‘밴더스내치’라는 게임을 만들며 진행되는데, 선택지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도 어느 순간 ‘나’라는 관객이 선택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엔딩도 여러 가지가 존재한다. 시도 이렇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시에는 결말이 없으니 선택에 따라 다른 엔딩을 보여주는 건 어렵겠지만, 선택에 따라 다른 시에 도착하게 되는 이야기는 가능하다. 독자의 선택지에 따라 ‘몇 쪽으로 가시오’라는 안내를 할 수 있겠지. 그런 시도의 시집도 재미있겠다.
⓭ TRPG
보드게임 <뱅>과 <페이퍼사파리>를 좋아한다. 게임 설명서를 읽으면 엄청나게 정교하고 수학적이며 천재적이다. 수많은 변수를 다 생각해내면서 만들어내야 하니까. 보드게임을 만든다는 건 어떤 면에서 한 세계를 만들어내는 연습일 것이다.
문보영 시인
스물다섯의 나이에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문보영 시인은 책에 대한 시 <책기둥>부터 게임에 대한 시 <배틀그라운드>까지,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써낸다. 게임을 신의 시점에서 한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문보영의 시는 때때로 게임처럼 작동한다. 신이라는 플레이어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가상의 세계관 같고, 등장인물은 때때로 NPC 혹은 다른 유저 같으며, 게임 같은 방식으로 움직인다. 게임과 시, 가장 멀어 보이지만 실은 가까운 관계에 대하여 문보영 시인에게 이것저것 캐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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