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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하는 작가들: 영화감독 김정훈

기술 발전과 가장 밀접한 매체는 게임이다. 사실적인 그래픽과 정교한 구조는 사람들을 게임에 깊이 몰입시킨다. 이제 게임은 사용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직접 만들게끔 유도하고, 사용자는 오직 자신만의 서사를 갖게 된다. 비록 로그아웃하면 그만인 휘발성 강한 서사라 할지라도 사용자의 뇌리에 오래도록 남아 다른 형태로 표현된다. 시나 소설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설치미술로 눈앞에 등장하기도 한다. 미래에는 게임이 선도적인 매체가 되리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지금, 게임에서 영감을 받는 작가들을 만났다. 게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게임과 예술의 기묘한 연관 관계를 추적했다.

UpdatedOn November 0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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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 스트라이크>

<카운터 스트라이크>

➊ <카운터 스트라이크>와 극강의 서스펜션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가장 좋아한 게임이다. 특수부대원과 테러리스트의 전투로 진행된다. 내가 <카운터 스트라이크>에 빠져든 2003년 당시 유행한 FPS 게임들은 플레이어가 5:5 정도로 구성됐지만, <카운터 스트라이크>는 한 맵에 플레이어가 15:15로 구성된 30명 규모의 게임이었다. 사망한 다음에는 타인의 시선으로 게임을 보는 것이 묘미다. 플레이 중 사망하면 다음 판을 기다리며 아군 생존자의 플레이를 지켜봐야만 한다. 화면에서는 생존자의 시점만 보이기 때문이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홀로 살아남아 14명 팀원의 시선을 느낄 때다. 중압감이 밀려오는 한편, 승리하기 위해 살며시 움직이며 적을 찾아내야 한다. 작은 발소리조차 허용되지 않는, 서스펜스가 극대화되는 상황이다. 적을 하나씩 처치할 때의 짜릿함은 잊을 수 없다.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몰입감은 충격적이었다. 매우 하드보일드한 게임인데, 영화도 하드보일드 장르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도 잘 맞았다. 장비나 아이템, 무기도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만들어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었다.

<오버워치>

<오버워치>

<오버워치>

➋ <오버워치>와 판타지 세계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캐릭터는 특징이 없다. 유저가 곧 캐릭터로 분하기 때문이다. 반면 <오버워치> 캐릭터들은 특징과 능력, 역할이 제각기 다르다. 각기 다른 캐릭터들이 팀을 이루어 전투를 벌이기 때문이다. 딜러, 탱커, 힐러로 나뉜 팀에서 정해진 역할을 완수하는 게 중요하다.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하드보일드한 전쟁 영화라면 <오버워치>는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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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

➌ <젤다의 전설: 야생의 숨결>과 사용자가 만드는 서사

‘젤다’ 시리즈를 인생 게임으로 뽑는 사람들이 많다. 매력이 많은 게임이기 때문이다. 게임의 기본 줄기는 성에 갇힌 젤다 공주를 구출하는 것이다. 어떻게 구출할 것인가는 플레이어의 몫이다. 게임에 접속하자마자 곧장 공주를 구출하러 달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점수는 구출 과정을 유저가 정하는 것이다. 일본 교토 정도 크기의 맵에는 즐길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퍼즐을 깨고 적을 무찌르며 초능력을 하나씩 얻는다거나, 신비의 무기를 찾거나, 맵에 퍼진 아이템을 주우러 다닌다거나, 1백20개의 사당을 하나씩 클리어할 수도 있다. 이러한 미션을 클리어하면 능력치가 향상된다. 물론 이 미션을 반드시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단지 이러한 경험을 쌓을수록 강해질 수 있다. 젤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강해지는 여정을 플레이어가 스스로 구성한다. 정해진 순서는 없다.

  •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➍ <더 라스트 오브 어스>와 서사의 힘

    서사가 재미있는 유일한 게임인 것 같다. 영화처럼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그 안에 기승전결과 반전도 있다. 설정이나 미션으로 구성된 게임과는 다르다. 잘 짜인 이야기고, 아포칼립스 장르의 리얼함도 재미 요소다. 게임은 1인칭 시점의 영화처럼 시작된다. 영화에서처럼 인물들과 대사를 주고받는데, 갑자기 재난 상황이 펼쳐지고 위험한 순간 플레이가 시작된다. 관객처럼 보고 있다가 내가 주인공이 되어 플레이하는 순간 긴박함을 느끼고, 깊은 감정이입이 이루어진다. 충격적이고 놀라웠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경험하기 전에는 게임이 미래라는 말을 믿지 않았다. 게임은 사용자가 체험하는 인터랙티브 매체이고, 영화는 작가의 문제의식과 주제의식을 자신이 만든 세계관 안에 구현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라스트 오브 어스>를 하며 게임을 통해 오락성 외 스토리로도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플레이하지만 이야기는 정해져 있다. 이 게임의 핵심은 주인공 여자아이를 보호하고 목적지에 데려다주면서 그 아이에게 애정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유저의 감정이 게임에 이입된다. 그로 인해 결말의 비극적인 선택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이야기를 통한 감정이입이라는 점에서 게임이 이야기 매체와 비슷한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 <모여라 동물의 숲>

    <모여라 동물의 숲>

    <모여라 동물의 숲>

    ➎ <모여라 동물의 숲>과 힐링의 끝

    힐링 게임이라 경쟁 요소가 없다. 평화로운 유토피아에 자원은 넘쳐나고 노동을 조금만 하면 돈을 벌 수 있다. 돈으로 집을 만들고 방을 늘리고, 나중에는 내 섬을 가질 수도 있다. 섬을 꾸미고 사용자들을 불러들여 마을을 만들고, 주민과 대화하며 소소한 즐거움을 누린다. 섬을 잘 꾸민 사람들을 구경하기도 하는데, 나는 그런 재미를 조금도 못 느끼겠더라. 섬을 왜 꾸며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매일 자원을 얻어 부자가 되는 것 같지만 부자가 되어도 할 수 있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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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TA>

<GTA>

영화 <들개>

영화 <들개>

영화 <들개>

➏ 게임에서의 욕망 실현

게임이 내 영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다. 그보다 취향이 반영되었다. 영화 <들개>에서는 사제 폭탄을 만드는데, 나는 어려서부터 그런 파괴적인 상상을 했다. 내 폭력적인 욕망은 <카운터 스트라이크>에서 쾌감으로 이어졌고, <GTA>에서도 재미를 느끼게 했으며 게임에 깊이 몰입하게 만든다. 게임의 몰입감은 기존 이야기 매체가 따라갈 수 없다. 내가 그 인물이 되어 움직이니까. 

➐ 게임은 엔터테인먼트의 왕

게임이 미래 매체고 영화는 쇠퇴할 거란 자조를 농담처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20세기에는 영화가 가장 핫한 매체였다면, 21세기에는 게임이 가장 핫할 것이라 예상한다. 지금 엔터테인먼트의 왕은 게임이다. 게임은 기술 발전과 밀접하다. 영화는 기술적으로 발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시장 규모도 게임 산업은 영화와는 비교가 안 되게 크다. 영화 산업에는 충분히 위협이 될 수 있다. 게임 시대에 작가들은 이야기와 감정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체험이라는 측면에서 게임을 이기긴 어렵다. 게임과 영화는 서로 경쟁하고 있다.

김정훈 영화감독

김정훈 영화감독

영화 <들개>를 연출한 김정훈은 하드보일드 세계를 찾는다. 거칠고 냉혹한 환경에서 소총 한 자루 들고 적을 찾아다니는 FPS 장르를 즐기고, 이따금 무위한 무인도에서 섬 꾸미기에 빠지기도 한다. 플레이어가 직접 서사를 만들어가는 게임과 탄탄한 기승전결을 이룬 서사로 충격을 주는 게임도 모두 즐긴 그는 게임과 영화가 서로 경쟁하는 영역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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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이예지
GUEST EDITOR 정소진

2020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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