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F8 트리뷰토
엔진 V8 90° 트윈 터보 배기량 3,902cc 최대출력 720마력 / 8,000rpm 최대토크 78.5kg·m / 3,250rpm 전장 4,611mm 전폭 1,979mm 전고 1,206mm 휠베이스 2,650mm 공차 중량 1,435kg 무게 배분 전 41.5% - 후 58.5% 변속기 7단 듀얼클러치 F1 0-100 km/h 2.9초 안전최고속도 340km/h 복합연비 6.6km/L 가격 3억5천2백만원(기본가, 옵션 미포함)
터무니없는 숫자라고 생각했다. 720마력은 손에 쥘 수도 없고, 잡았다 하더라도 공기처럼 주먹의 미세한 틈으로 빠져나갈 것만 같았다. 720마력은 페라리 F8 트리뷰토의 최고출력이다. 엔진 회전수 8,000rpm에서 발휘된다. 리터당 최고출력이 185마력이니, 어쩌면 720마력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사실 무섭기도 했다. 3억이 넘는 슈퍼카가 통제력을 잃는다면, 대출 가능한 금액과 이자가 얼마인지 계산해봤는데, 그 또한 쉬이 그려지지 않는 금액이었다. 생각의 꼬리를 쫓아 인제 스피디움으로 향했다.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도로인 서킷이라면 F8 트리뷰토의 성능을 체험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담도 덜하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인제 스피디움 초입에 위치한 페라리 라운지에 들어섰다. 라운지는 조용했다. 하지만 서킷 쪽으로 문을 열고 나서자 새빨간 F8 트리뷰토가 위용을 드러냈다.
디자인에 담긴 두 가지 의미
서킷에서 F8 트리뷰토의 다운포스는 어떨까? 바람이 깎아내린 듯한 초현실적인 디자인을 보았을 땐 가슴이 뛰었다. 기대감이었고, 경외감도 있었다. F8 트리뷰토는 488 GTB를 잇는 8기통 미드리어 엔진 스포츠카다. 페라리 스타일링 센터에서 디자인해 488 GTB의 흔적도 보이지만 전설적인 페라리 모델들의 유산도 곳곳에서 목격된다. 페라리의 가장 상징적인 미드리어 V8 모델에서 영감을 받은 엔진이 강조된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초경량 렉산 소재로 제작한 새로운 후면 스크린을 장착했는데, 이는 V8 엔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후면 스크린은 세 개의 루버 형태(타원형의 긴 구멍)를 적용해 엔진이 정확히 보인다. 엔진룸의 뜨거운 공기를 배출하는 기능도 한다. 또 8기통 모델 중 가장 유명한 F40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후미등 주변을 감싸고 있는 스포일러는 전작인 488 GTB보다 더 커서 존재감이 뚜렷하다. 시각적으로는 무게중심을 낮추는 역할을 하고, 동시에 초기 8기통 베를리네타 모델의 특징인 트윈 라이트 클러스터를 연상시킨다. 새로운 디자인은 페라리 역사를 현대적으로 구현하는 한편 기능성도 강화했다. 주목할 것은 향상된 공기역학 요소다. 새롭게 설계된 전면부 S-덕트는 공기역학적 기능을 더욱 강조했고, 검은색 사이드 스플리터가 적용된 전면부 양 측면의 공기흡입구는 범퍼와 조화를 이루도록 디자인되었다. 측면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휠 아치다. 불필요한 치장 없이 공기역학의 역할에 최적화됐다. 빈틈없이 타이어를 감싸는 모습이다. 인터쿨러용 측면 공기흡입구의 형태 또한 신차에 맞게 재설계됐다. 기대감을 갖고 운전석에 올랐다. 아니 내렸다고 해야 할까. 헬멧을 쓴 상태에서도 헤드룸이 조금 남을 정도로 시트 포지션이 상당히 낮다. 마치 노면에 엉덩이를 걸치고 있는 기분이었다.
페라리 최고의 8기통 엔진
스티어링 휠의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8기통 엔진의 굉음이 실내로 쏟아졌다. 운전석 뒤에 위치한 엔진은 달리기도 전에 강력한 포효를 이어갔다. 그 소리가 부담스러워 당장이라도 가속페달을 밟아야만 할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서킷에 오르자 엔진음이 매끄러워졌다. 소리는 강하지만 그 질감은 오히려 부드럽게 느껴졌다. F8 트리뷰토의 V8 터보 엔진은 4년 연속 올해의 엔진상 대상을 수상했다. 8기통 중 최고의 엔진으로 손꼽혔다. 비단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페라리는 지난 40년간 최적의 무게중심을 구현한 8기통 엔진을 연구해왔다. 1975년 2인승 8기통 베를리네타 라인업의 첫 모델로 308 GTB를 선보였고, 페라리 첫 슈퍼카이자 상징적인 모델로 평가받는 1984년 GTO와 1987년 F40에도 8기통 엔진을 적용했다. 그리고 F8 트리뷰토에 이르러 V8 터보 엔진은 그 기술적 정점에 도달했다. 8,000rpm에서 720마력의 최고출력을 발휘한다. 이는 488 GTB보다 약 50마력 높은 수치다. 토크 또한 1.02kg·m 향상된 최대토크 78.5kg·m에 달한다. 더 강한 힘의 비결은 트랙 전용 모델을 바탕으로 개발된 새로운 흡기 라인이다. 보다 직접적이고 효율적인 공기흡입구 배치는 엔진에 공급되는 공기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해준다. 유체역학적으로 최적화된 인테이크 플래넘과 매니폴드로 실린더 내 공기 온도를 낮춰 엔진의 연소 효율성과 출력도 개선되었다. 증가된 출력에 따라 피스톤과 실린더 헤드는 연소실 내 최고 압력을 최대 10% 향상시켰다. 늘어난 하중을 감당하기 위해서다. F1 기술이 적용된 DLC 코팅 피스톤 핀을 사용하는 등 내부 마찰을 줄이는 데도 심혈을 기울였다. 출력은 더 강하지만 무게는 오히려 가벼워졌다. V8 터보 엔진은 페라리 챌린지와 F1에 기반한 경량 부품이 적용됐다. 488 GTB보다 18kg 가벼운 고효율 경량화에 성공했다. 이 강력한 스펙만 믿고 직선 구간에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자, 금세 200km/h에 도달했다. 터보 랙 현상 없이 매끄럽게 변속되었으며, 충격이 없는 강력한 가속력은 마치 노면 위를 부양해서 달리는 듯한 착각도 일으켰다. 여기에 달리고 싶게 만드는 경쾌한 엔진음은 양념이다.
차가 사람을 만든다
서킷에선 안전을 위해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설정하고 달렸다. 차체 제어 등 전자장치가 개입되어 차체의 미끄러짐을 방지해준다. 그래서였을까. F8 트리뷰토는 곡선 구간에서 내가 바라본 모서리를 향해 날카롭게 회전했고, 노면에 달라붙은 것처럼 안정적으로 곡선 구간을 빠져나갔다. 내 운전 실력이 일취월장한 듯한 착각도 들었다. 정밀하고 안정적으로 코스를 잇따라 빠져나갔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단단히 오해했다. F8 트리뷰토의 전자제어 장치들이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다. 차량에는 다양한 고성능 기능을 도입했는데, 새로 도입된 부스트 리저브 컨트롤 같은 것들이다. 고속 주행에서도 반응 시간과 성능을 최적으로 이끈다. 내게 필요한 출력을 즉각 구현한다. 또 어댑티브 퍼포먼스 런치 기능도 갖췄다. 접지력을 분석하고 전자제어를 활용해 토크를 노면 접지 수준에 맞게 최적화한다. 덕분에 바퀴는 미끄러짐이 최소화되고, 가속력은 최대화된다. 전반적으로 488 GTB보다 상당히 개선된 성능에도 더욱 편하게 운전할 수 있었다. 얇고 작아진 운전대나, 최신 6.1 버전의 사이드 슬립 컨트롤 시스템과 최신식 페라리 다이내믹 인핸서 도입은 최대 성능을 이끌어내기 수월하고, 성능이 발휘된 상태에서도 자신감을 부여한다. 덕분에 오버스티어나 언더스티어가 발생되지 않았다. 결코 내가 운전을 잘한 게 아니었다. 차가 사람을 만들었다.
노면 가까이
앞서 언급한 F8 트리뷰토의 공기역학적 효율을 다시 한번 강조해야겠다. 최첨단 공기역학 솔루션은 F8 트리뷰토의 핵심 중 하나이고, 488 GTB와 차별되는 중요한 요소다. F8 트리뷰토의 개발 목적은 공기저항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다운포스를 향상시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488 GTB에 비해 공기역학 효율성이 10% 개선됐다. 운전 중 느낀, 노면에 바싹 붙는 듯한 밀착감은 다운포스의 영향이다. 특히 빠른 속도로 코너를 돌아 나갈 때면 차량 앞쪽이 노면에 닿을 듯한 다운포스가 느껴진다. 비결은 전면부의 S-덕트와 후면부의 스포일러다. S-덕트는 범퍼 중심에서 고압류를 낮추고, 고압류를 보닛의 환기구를 통해 상향부로 향하게 만든다. 압력 변화로 인해 전면 차축으로 다운포스가 형성된다. 또한 새로운 브레이크 냉각 흡입구를 범퍼의 바깥쪽에 위치한 흡입구와 결합시켰다. 이를 통해 개선된 휠 아치 내 공기 흐름을 이용해 정확한 브레이크가 가능하다. 후면부의 스포일러도 주목할 점이다. 블론 스포일러 내부에 위치한 세 개의 터닝 베인이 공기 흐름을 차체의 뒷부분으로 향하도록 재압축해 공기저항을 감소시키며 다운포스를 선사한다. 이외에도 차량 하부, 리어 디퓨저에서도 다운포스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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