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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아파트

주름살

자고 일어나면 값이 오르는 서울 아파트. 갖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전세라도 괜찮지만 그마저도 사라진 지금. 서울 아파트는 계층 상승을 위한 동아줄 같은 걸까. 아파트를 갖지 못한다면 우리는 밀려나고 추락하게 될까. 그런 것 말고. 고향이고 삶의 터전인데, 평생의 기억이 담긴 곳을 떠나야만 성공하는 걸까. 나에게 서울 아파트란 무엇인가. 서울 아파트에 적을 둔 다섯 사람이 답했다.

UpdatedOn September 01,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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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에서 내 나이만큼 살았다. 족히 삼십 년이 넘은 아파트다. 주변에는 우리 아파트만큼 오래된 아파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삼십몇 년간 산전수전 겪으며 달려온 만큼 우리 아파트는 그만큼의 시간을 버텨왔다. 우리 아파트에는 새 아파트들과 달리 지하주차장이 없다. 세차를 하자마자 내 차는 새똥 폭탄을 맞는 일이 허다하다. 풍파에 해진 외벽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나이를 숨기지 못하고 주름살만 드러내놓고 있다. 주변 아파트와 비교하지 않아도 동안은 아니다. 어쩔 때는 외벽이 기워놓은 옷 같기도 하다. 서울의 아파트는 시한부 선고를 판정받아야 그 가치가 오른다. 나와 함께 일생을 견뎌온 이 집이 허물어지기를, 이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먼지처럼 사라지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 바람을 외면하지 못한 아파트들은 화장되듯 사라졌고, 재만 남은 터에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가 세워졌다. 우리 아파트, 그러니까 내 삶의 방증인 이 건축물에는 그래도 자랑거리가 있다. 오래되어서 낡고 느린 엘리베이터다. 요즘 아파트에는 없는 남다른 엘리베이터지만 이 근처만 와도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기서 최대한 오래오래 살고 싶다. 그게 나의 바람이다.

WORDS&PHOTOGRAPHY 윤지영(저스트슛픽처스 비디오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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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조진혁

202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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