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파트에서 내 나이만큼 살았다. 족히 삼십 년이 넘은 아파트다. 주변에는 우리 아파트만큼 오래된 아파트가 얼마 남지 않았다. 내가 삼십몇 년간 산전수전 겪으며 달려온 만큼 우리 아파트는 그만큼의 시간을 버텨왔다. 우리 아파트에는 새 아파트들과 달리 지하주차장이 없다. 세차를 하자마자 내 차는 새똥 폭탄을 맞는 일이 허다하다. 풍파에 해진 외벽은 페인트칠을 하지 않아 나이를 숨기지 못하고 주름살만 드러내놓고 있다. 주변 아파트와 비교하지 않아도 동안은 아니다. 어쩔 때는 외벽이 기워놓은 옷 같기도 하다. 서울의 아파트는 시한부 선고를 판정받아야 그 가치가 오른다. 나와 함께 일생을 견뎌온 이 집이 허물어지기를, 이 단단한 콘크리트 구조물이 먼지처럼 사라지기를 절박한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 바람을 외면하지 못한 아파트들은 화장되듯 사라졌고, 재만 남은 터에는 새로운 형태의 아파트가 세워졌다. 우리 아파트, 그러니까 내 삶의 방증인 이 건축물에는 그래도 자랑거리가 있다. 오래되어서 낡고 느린 엘리베이터다. 요즘 아파트에는 없는 남다른 엘리베이터지만 이 근처만 와도 나는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기서 최대한 오래오래 살고 싶다. 그게 나의 바람이다.
WORDS&PHOTOGRAPHY 윤지영(저스트슛픽처스 비디오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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