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이런 일이 다 있군.’
패션지에서 ‘서울 아파트’를 주제로, 소설가에게 원고를 청탁하다니. 소설가와 부동산, 이 조합은 어린 왕자와 트럼프 대통령의 만남처럼 이질적이다. 하지만 나는 전업 작가 아닌가. 원고 청탁을 가려서 수락할 처지가 못 된다. 하여 일단 청탁 수락 메일을 보낸 후, 곰곰이 따져봤다. 잠자리에서 누워서까지, 이상하다 여겼기 때문일까.
희한하게도 이날 꿈에 ‘어린 왕자’가 나타났다. 생텍쥐페리의 소설 속 ‘어린 왕자’ 말이다. 리얼리스트인 나는 너무나 놀랐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어린 왕자는 다 알고 있다는 듯 대답했다.
“한국은 매우 재미있는 곳이더군.”
“그게 무슨 말이야?”
내 질문에 그는 그림 하나를 보여줬다. 등이 뾰족뾰족하게 삐져나온 고슴도치였다.
“이건 고슴도치잖아.”
그러자 어린 왕자는 잔뜩 실망했다.
“쳇. ‘오늘의 작가’ 수상자라 해서 상상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너도 똑같은 어른이군.” 나는 소설 <어린 왕자>를 떠올려봤다. 작품 속에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이 나온다. 그리고 어른들은 그 보아뱀을 모자로 착각한다.
“설마 보아뱀이야? 그럼 대체 뭘 삼킨 거야?”
어린 왕자는 마침내 안도했다.
“응. 이 보아뱀은 은마아파트를 삼켰어.” 나는 순간 아연실색했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라니.
“한국 어른들이 이 아파트에 너무 관심을 두고, 때로는 이 아파트 이야기를 하면서 싸운다기에, 보아뱀이 먹어본 거야. 대체, 이걸 먹으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 궁금했대.”
아! 저런. 나는 탄식을 했다. 그나저나 아파트를 삼켰는데, 왜 고슴도치처럼 보이는 건가. 내 궁금증에 어린 왕자는 한숨을 ‘푸우우’ 뱉으며 답했다.
“땅은 좁은데, 하늘 높이 너무 높게 지어놓았잖아. 뾰족하고, 빽빽하게. 보아뱀 몸뚱이는 고만고만한데, 그걸 다 삼키니 뱃속에서 그만 아파트들이 똑바로 못 서고, 무너지고 만 거야. 그러다 아파트들이 보아뱀 등가죽에 넘어진 채로 걸려서 여기저기 삐죽하게 튀어나온 거야. 아! 손대지 마. 지금 보아뱀은 잔뜩 성이 나 있어. 이상하게 아파트를 삼킨 후에는 줄곧 성이 나 있어.”
어리벙벙하다는 내 표정에, 한심하다는 듯 답했다.
“보아뱀이 그러는 거야. 이 아파트들을 먹고 난 후, 줄곧 배탈이 났다고. 다들 상했다는 거야.”
어린 왕자는 다들 왜 이렇게 오래된 집을 고집하면서 사는지 이해할 수 없다 했다. 게다가 보아뱀이 삼킨 건 요리로 치자면, 너무 값비싼 음식이라 더 이해할 수 없다 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어느덧 조금은 어른이 되어, 한국 어른의 입장이 됐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집은 복잡해. 단순히 먹고 자는 곳이 아니야.”
“이제, 이야기가 통하는군.”
어린 왕자는 반색했다.
“그래. 집은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고, 노래를 부르고, 꽃을 심고, 사랑을 얘기하고, 아기의 웃음소리를 듣는 곳이야.”
나는 ‘아이쿠’ 하고 탄식을 했다.
“아니… 그게 아니고….” 나는 몇 시간에 걸쳐, 한국의 자본주의 실정에 대해 알려줬다. 다행히 어린 왕자는 이해력이 남달랐다.
“그래서 어른들이 재밌다는 거야. 아파트에 모든 걸 쏟아붓고, 자기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해. 아파트에 모든 걸 쏟아붓고, 쓴 술을 털어 넣으며 매일 버틴대. 자유로워지고 싶다면서, 만나면 집 이야기뿐이지.”
맞다. 내가 그날 낮에 글을 쓴 카페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손님은 부동산 이야기를 했다. 나는 왜 안 했냐고? 나는 혼자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맞아. 네가 옳아. 한데 현실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너도 여기서 지내보면 알 거야. 왜 다들 이렇게 사는지.”
어린 왕자는 공감 능력이 높았다.
“그럼 여기서 한 달을 살아보고, 다시 찾아올게. 걱정 마, 내 기준으로는 한 달이지만, 네 기준으로는 고작 내일 밤이 될 테니까.”
이렇게 말하고선, 어린 왕자는 다음 날 밤에 내 꿈에 또 찾아왔다. 어린 왕자는 전날보다 훨씬 행복해진 표정으로 돌아왔다. 표정은 희망과 기대에 부풀어 있었고, 미소엔 자신감이 넘쳐났다. 대체 비법이 뭔지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아니, 어째서 이렇게 싱글벙글 웃는 거야? 찾은 거야? 여기서 행복해지는 비결을?”
어린 왕자는 쑥스러운 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아뱀 그림을 꺼낼 때처럼, 주머니에서 뭔가를 잔뜩 꺼냈다.
그리고 탁자 위에 30년 장기 주택 청약통장과 ELS 변동금리 통장, 해외리츠 가입 통장을 쫙 펼쳐 보였다.
“나는 무주택자에, 실은 우리 별에 두고 온 7세 미만 자녀도 있어서 우선순위야. 연 소득도 부부 합산 8천만원 미만이야.”
나는 어리둥절해졌다.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그러자 어린 왕자는 내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또박또박 대답했다.
“동안이라고 얕보지 마. 내가 1943년에 어린 왕자였어. 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다고. 그동안 계속 무주택자였어. 서울 아파트에 사는 네가 내 심정을 알아?!”
그는 한때 우리는 모두 어린이였다고 했다. 집에서 걸음마를 떼고, 노래를 부르고, 떠오르는 해를 보고, 꽃을 심고, 미래를 기대하던 우리가 자라고 나면 이렇게 되는 거라고. 그렇다고 이게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이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자신은 내 말대로 현실에 눈을 떴을 뿐이라고. 조금 늦게 어른이 된 것뿐이고, 누구나 어른이 되다 보면 상처가 쌓이고, 콤플렉스가 생기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그걸 함부로 평가할 자격은 누구에게도 없다고.
나는 또 한 번 어리둥절해졌다. 하지만 어린 왕자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어른이 되는 건, 남을 이해해주는 일이야. 날 이해해줄 수 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를 이해하길 바라며. 그리고 조금 더 어른이 되길 바라며.
WORDS 최민석(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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