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반듯한 사각형이 차곡차곡 쌓여 도시를 빼곡히 채웠다. 그것이 아파트인데 도시에 사는 중산층 혹은 중산층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자의든 타의든 대부분 아파트에 살게 된다. 그런데 그곳에 살게 되면 사방을 둘러보아도 모양이나 크기가 같아서인지 모두 같은 병을 얻게 된다. 그것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라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더 큰 아파트를 원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의 부모님도 그 병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다.
그런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 병이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내가 네 살 때, 처음으로 살게 된 아파트는 복도식이었는데, 그 시절에는 현관문을 열어놓고 지내는 가정이 많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집까지 가자면 몇 개의 현관을 지나쳐야 했는데 그때마다 열려 있는 현관을 통해 이웃과 마주치게 되면 인사를 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딱히 새삼스럽지 않은 일이었다. 내가 살던 7층에 또래 친구들이 열댓 명쯤 살았다. 나는 그들의 현관문을 두드리거나 벨을 누를 필요도 없이 열려 있는 현관문에서 “누구누구야 놀자!”라고 외치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현관문을 닫기 시작했다.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리고 그 흐름이 쳐놓은 올가미에 우리는 꼼짝없이 걸려들었다. 현관문이 외부와 나를 연결하는 통로였다면, 외부로부터 나를 차단하는 방패로 바뀐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이 자신을 고립시키는 창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다. 고립이란 한마디로 외부와 연결되는 통로가 막혔다는 뜻이다. 그런데 자기만의 방에 들어앉아 스스로 그 통로를 차단하고, 곁에 있는 이에게는 관심을 갖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끝없는 관계의 결핍과 마주하게 되었다. 거기에 더해서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더 비싼 값을 치르고라도 기어코 더 좋은 고립의 창을 마련하기 위해 경쟁하는 역설이란.
WORDS&PHOTOGRAPHY 김선익(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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