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곡 듣지 않아도 마음이 동하는 음악이 있다. 뮤지션 안지영의 노래가 그렇다. 항상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북돋아주면서도 사춘기 소녀의 감수성으로 같이 공감하고 아파한다. 볼빨간사춘기의 노래는 청춘을 대변한다. “잠깐만 아파하다가 우리 다시 예쁘게 피어나자.” 안지영의 진솔한 음악이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이유다. 홀로 서기를 시작하며 많은 점이 달라지겠지만, 그녀의 음악은 변함이 없다. 얼마 전 발표한 <사춘기집Ⅱ 꽃 본 나비>에서도 우리의 존재는 불안해서 더 찬란하다고 위로한다. 실제로 만난 안지영은 그녀의 음악만큼이나 사랑과 배려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33℃의 폭염 속 촬영에도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지 않고 주변 사람들을 보살폈다. 그런 그녀와 사랑과 슬픔, 그리고 앞으로의 우주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홀로 선 후 첫 인터뷰다. 어땠나?
둘이 설 때보다 혼자 포즈를 취하니 어색하고 쉽지 않았다.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평소와 다른 스타일의 옷도 입어봤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린 것 같다. 하하.
안지영의 매력은 단연 목소리다. 어릴 때부터 스스로 마음에 들었나?
내 목소리가 독특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앨범을 내고 노래를 만들며 계속 듣다 보니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쓰는 법을 찾아 만족한다.
왜 에이미 와인하우스를 좋아하나?
그녀의 비극적인 삶의 애환이 노래에 녹아 있다. 슬픔을 음악으로 승화시킨 솔직한 가사들이 와닿는다. 그녀의 음악을 지향하며 영감을 많이 받았다.
볼빨간사춘기의 음악도 솔직하던데.
맞다. 은유적인 가사도 있지만 직설적인 표현도 굉장히 많다. 사람들이 솔직한 가사와 표현에 공감과 위로를 얻는다고 말한다.
가사만큼 직설적인 성격인가?
그런 편이다. 팬들이 공연할 때는 종종 유치원 선생님 같다던데 편안하게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 사근사근하게 다가간다. 근데 실제 성격은 직설적인 면도 있다. 친구와 다퉜을 때도 먼저 다가가서 화해하는 편이다. 어색한 상황이 불편하다.
그럼 사람들과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나?
생각보다 낯은 많이 가린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잘 못 하는데 대신 친해지면 직설적으로 얘기한다.
이번 앨범 <사춘기집Ⅱ 꽃 본 나비> 중 어떤 곡이 가장 애착이 가나?
‘품’에 가장 애정이 간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곡이다. 편곡 부분도 그렇고 멜로디나 가사도 좋다. 나 자신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는 곡이다.
어떤 점이?
일단 날 좋을 때 만든 곡이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없지 않나. 사람 간의 거리가 멀어지다 보니까 따뜻한 온기도 사라지는 듯하다. 그 간극을 따뜻하게 채우고 품속으로 전해주고 싶은 마음을 담았다.
‘민들레’의 가사 중 이런 대목이 있다. “끝없이 방황하다 또 끝없이 오르내리다가.”
‘민들레’는 작년 <Two Five> 전국 투어 중 마지막 공연에 부른 미공개 곡이었다. 그 당시 ‘25’라는 제목처럼 청춘에 대한 곡을 많이 썼다. 모든 청춘의 고민이 같을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이 시기를 잘 보내야 할까?’ 고민하는 청춘들을 위해, 그리고 또 나 자신을 위해 쓴 곡이다. 모든 청춘에게 ‘잠깐만 아파하다가 우리 다시 예쁘게 피어나자’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노래할 땐 어떤 마음으로 부르나?
최대한 많은 감정을 실으려 한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상대방에게 전달하는 데 집중한다. 그러다 감정에 취해 울기도 하고.
눈물이 많다고 들었다.
남들보다 약간 더 많은 거 같다. 하하.
어떨 때 감성적으로 되나?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할 때. 근데 다들 비슷하지 않나? 아직까지도 ‘나의 사춘기에게’나 ‘나만 안 되는 연애’ 같은 곡을 부를 때 감정이 계속 남아 울컥한다.
슬픈 감정을 즐기는 편인가?
어딘가에서 들었는데 슬픔을 즐기는 감정은 없다고 한다. 그래도 울고 싶을 땐 눈물을 흘리면서 해소한다. 주로 슬픈 영화의 도움을 받는다.
‘꽃 본 나비’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기뻐하는 모습을 비유한다고. 사랑의 어떤 면을 보았나?
사랑이란 감정의 여러 면을 봤다. 고마움, 미움, 아픔 등.
스물여섯이다. 사랑을 아는 나이가 된 건가?
아직 잘 모르겠다. 대신 사람을 대하는 감정은 많이 변했다. 성숙해지기도 했고.
20대 초반에도 사랑에 관한 곡을 많이 썼다. 지금과 어떻게 다를까?
팬들한테 ‘심술’이라는 곡은 청하지 말아달라고 한다. 당시 어떻게 그런 가사를 썼는가 싶다. 지금 다시 쓰라고 해도 못 쓰겠다. 가사가 오글거리고 낯간지러운 걸 보면 이제 성숙해졌나 보다. 그때 가사들은 정말 직설적이고 표현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근데 지금은 상대방을 배려한다. 적당히 거리를 두는 사랑이다.
만약 지금 연애를 해도 그럴 것 같나?
지금 연애를 하게 된다면 가사처럼 마음을 다 보여주지는 못할 것 같다.
이번 앨범 같다. 다 보여주지는 못하는 은유적인 마음.
그러네. 상처받을까 겁이 난다.
볼빨간사춘기의 가사를 음미하면 안지영은 깊이 사색하는 사람 같다. 어떤가?
어떤 생각에 꽂히면 온종일 그 생각만 한다. 특히 샤워할 때 생각이 되게 많아지는데 불면증이 있는 이유 중 하나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생각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음악에 대한 생각도 하겠지? 말랑말랑한 노랫말은 책을 많이 읽어서 나온 건가?
예전에는 소설책이나 에세이 읽는 걸 좋아했는데 근래에는 시집을 몇 권 읽기 시작했다. 시는 직설적이지 않지만 품처럼 포근하게 감싸주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시를 읽다 예쁜 말이 보이면 기억해두고 가사로 쓰려 한다.
뭐가 있을까?
‘민들레’의 가사 중 “그대는 노란 꽃의 민들레다”. 조금 시적이지 않나? 하하하.
시적인 노랫말을 보면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잡아내는 능력도 갖춘 것 같고.
말하는 것도 좋지만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굉장히 좋아한다. 대화를 나누다 영감을 얻은 대표적인 곡이 ‘썸 탈꺼야’다. 친구가 썸을 타는 얘기를 내 방식대로 풀어 썼다. 아무래도 곡을 쓰는 사람에게는 혼자만의 경험은 한계가 있기에 다른 사람의 경험이 도움이 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곡을 쓰니까.
혼자만의 시간도 즐기나?
스케줄이 없을 땐 집에만 머문다. 혼자 보내는 시간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라 집 밖을 안 나가는데 작업실도 집 안에 있다. 나에게는 집에서 재충전하는 시간이 중요하다.
예능 프로에서 보니 감정 기복이 있는 줄 알았는데 털털한 면이 많더라.
앞에 언급했듯이 항상 솔직하게 말하고 행동한다. 털털한 게 내 매력 같다. 감정 기복도 심하긴 한데 음악을 만드는 데 쏟아낸다.
주량이 소주 2병이라 들었다. 여름에 집에서 먹을 안주를 추천해달라.
토마토, 블루베리, 견과류. 배부르면 술을 많이 못 마시니까. 특히 토마토를 굉장히 좋아한다.
SNS를 보면 여행이나 등산도 좋아하던데. 어떤 것을 얻는가?
역시 음악적으로 많은 부분을 얻는다. 예를 들어 ‘Seattle Alone’은 실제로 시애틀을 갔을 때 영감받아 쓴 곡이다. 일단 나는 혼자 여행하는 스타일이다. 혼자 여행을 하면 그곳에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지 않나? 지구 반대편 사람이랑 대화도 해보고 새로운 걸 보고 배우며 영감을 많이 얻을 수 있어 여행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할 수도 있고.
계획은 꼼꼼하게 세우나?
원래 매우 꼼꼼하게 계획을 짜는 편인데 지금은 중요한 장소만 찾아놓고 돌아다닌다. 촘촘하게 세운 계획은 잘 안 맞는 것 같다. 큰 틀만 세우고 남은 시간에는 혼자 카페에 가거나 바에 가서 사람들이랑 얘기하고 논다.
나만 알고 싶은 인디 밴드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밴드로 성장했다. 피부에 와닿나?
지금도 여전히 볼빨간사춘기는 인디 밴드라 생각한다. 처음에 좋아서 시작한 음악이 인기가 많아지면 사람들의 입맛을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최대한 내가 하고 싶은 음악 위주로 시도하자는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 사람들이 내 곡이 다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어떻게 보면 내가 쓴 곡이니까 당연하다. 이런 고민을 덜어내고 처음 음악을 시작했던 때처럼 좋아하는 걸 밀고 나가며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4년 전과 비교하면?
많은 성장을 했다. 음악도 그렇고 무대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로 조금 즐기게 됐다. 사실 음악을 즐기게 된 지도 얼마 안 됐다. 항상 긴장 속에 살고 불안에 떨었는데 ‘조금 성장을 했으니까 즐겨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든다. 앞으로 재밌게 즐겨야겠다.
드라이브도 즐기고?
운전할 때 음악 리스트를 완벽하게 짜놓는다. 강변북로 타고 가다가 다리 건너 올림픽대로 타고 돌아오며 스트레스도 풀고 즐긴다.
지금이 뮤지션으로서 터닝 포인트다. 홀로 서기도 시작했고. 20대 초반과 중반에 그렸던 우주와 다르게 앞으로는 어떤 우주를 그리게 될까?
작년에 ‘25’라는 곡을 썼다. 그 가사 후반에 26세가 돼도, 29세가 돼도 세상의 반만 알아갈 거라고 썼다. 세상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해도 그냥 딱 절반만 알며 나만의 우주를 만들고 싶다.
무서워서?
굳이 세상을 다 알아야 할까 싶기도 하고. 현재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미래를 그리려고 생각하면 불안하고 힘들고 이때까지 못 즐겼으니까 지금을 즐기고 싶다. 하루하루 알차게 살아가다 보면 그 하루가 모여 나만의 우주가 되지 않을까?
그럼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네?
한 가지 확실한 건 음악을 오래 하고 싶다는 거다. 차곡차곡 하나씩 알아가고 쌓아 볼빨간사춘기만의 우주, 스펙트럼을 만들고 싶다. 마치 마블 유니버스처럼.
이미 만들어진 거 같은데?
더 만들어야 한다. 듣자마자 “이 노래는 안지영 거야!”라는 반응이 나올 수 있게 말이다.
지금도 사람들은 볼빨간사춘기 유니버스를 구축했다고 보지 않을까?
볼빨간사춘기의 노래가 어느 누군가에게는 추억의 배경음악이 된다고 한다. 내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계속 정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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