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촬영은 난생처음인데 어땠나?
정말이지 너무 쑥스럽다. 훈련사가 언제 이런 걸 찍겠나. 늘 무지 티셔츠만 입는 사람인데.
오늘 반려견 바로와 함께 화보를 찍자고 했을 때, 먼저 두 가지 약속을 하자고 했다. 개를 부르거나 억지로 쳐다보게 하지 말 것, 인위적인 포즈를 취하게 하지 말 것. 반려견을 동반한 촬영을 종종 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개들은 자연스러운 모습이 좋다. 그게 아름답다. 사진 촬영은 인간이 원하는 거니까, 그들과 함께하려면 보호자와 놀 듯이 해야지, 강요하면 안 된다. 아직도 반려견을 같이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여러 즐길 거리 중 한 가지 콘텐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괴롭다.
강형욱과 방송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의 등장이 한국 사회의 반려견에 대한 인식과 관점을 바꿨지. 견주가 아닌 보호자다, 나쁜 보호자가 있을 뿐 나쁜 개는 없다, 서열은 없다, 강압적 훈육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금은 당연해졌지만 당시엔 커다란 인식의 전환이었다.
예전의 교육은 지극히 인간 중심적이었다. “당신의 강아지가 짖습니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같은 홈쇼핑 느낌이었지. 반려견이 왜 짖는지 고민 없이 압박만 했다. 그 방식에 계속 의구심이 생겼고, 접근 방법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찾아보자는 거다. 이를테면 오피스텔에서 보더콜리를 키우면서 짖지 않기를 바라? 불가능하지. 닭한테 쪼는 걸 못 하게 하고, 치타에게 느리게 달리길 바라는 것과 같다. 문제 행동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반려견이 뛰는 게 문제 행동인가, 아니면 단지 내가 불편한 게 문제인 건가? 보호자가 개에게 적절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하지 못하는 사람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거다. 그런 걸 보호자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받아들이지 못하더라. 휴대폰 액정이 깨져서 서비스센터에 찾아갔는데 직원이 “당신의 휴대폰이 액정을 갈고 싶지 않대요”라고 하는 것과 비슷했지. 불과 6년 전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최선을 다해 설명해드리고 싶었고, 조금씩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생겼다.
그런데 최근 <개는 훌륭하다>에서는 공격적인 반려견들을 다루며 이전과 다른 강한 훈육 방식도 보여주더라. 심경의 변화가 있었나?
잘 물어보셨다. 하고 싶었던 말이다. 아마 <개는 훌륭하다>를 보는 많은 분들이 의아할 거다. 요즘 왜 반려견을 압박하지? 훈련사로서 난 스스로 계속 되묻고 내가 했던 말들을 견제한다. 돌아보니 문제가 하나 있더라. 제 역할을 하지 않는 보호자가 있다는 것. 내가 31개월 된 아들에게 제일 많이 가르치는 게 예절이다. 욕구가 있고 표현할 줄 아니 부정적 감정도 표출하고 안 좋은 행동도 할 수 있겠지? 성장 과정이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다면 아이를 잘 키우는 데는 세 가지가 필요하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태도, 마음껏 에너지를 표출할 수 있게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하고 같이 놀아주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 그런데 많은 보호자가 이 중 몇 가지만 취사 선택한다. 보호자는 부모인데, 삼촌이나 이모 정도가 되고 싶어 하는 거다. 예뻐해주고 좋은 역할만 하고 싶어 한다. 당시엔 개를 기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면, 지금은 애정의 학대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잘못된 사랑으로 개를 망친다는 건가?
캔디만 준다고 좋은 보호자가 되는 게 아니다. 사랑한다고 나쁜 길로 가는 걸 방치하면 책임의 유예일 뿐이라는 거다. 내가 보호자를 그렇게 만든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 책임감을 느낀다. 지금 만나는 개들은 대부분 그런 애정의 학대를 당해왔다. 그런 보호자들로 인해 규칙을 지키는 걸 참지 못한 채 성견이 되어버린 거지. 많은 보호자가 내게 “우리 개가 사회성이 떨어져요”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보면 보호자가 사회성이 없다. 자기 반려견이 누군가를 향해 짖었다면, 줄을 짧게 잡고 상대방에게 괜찮냐고 묻고 사과하는 게 먼저인데, 그냥 ‘짖튀’해버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개에게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시스템을 알려주고, 보호자다운 모습을 보여야지.
매우 공격적인 개들을 다룰 때 겁나진 않나?
훈련사들 역시 사나운 개를 만났을 때 공포감을 느낀다. 나도 어릴 적엔 사나운 개를 다루지 못하는 데 콤플렉스가 있었다. 그런데 많이 물리다 보니, 얼마나 물릴지 예상이 가능하더라.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라고 생각하면 괜찮다. 중요한 건 두렵지 않다는 태도로 대해야 한다는 거다.
손과 팔이 흉터투성이다.
이건 교육하면서 며칠 전에 생긴 거고, 이런 것들은 오래된 거다. 훈련하다 보면 당연히 생기는 거지. 가끔씩은 물려줘야 하는 순간도 있다. 왜냐하면 어떤 개들은 무는 것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 문을 여는 열쇠라는 생각으로 물려주곤 한다. 중요한 건 물렸을 때 난 아무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는 거다. 용서하라는 말이 있잖아. 보복은 더 큰 보복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몸을 키우나?
맞다. 훈련사는 반응성이 빨라야 한다. 운동을 꼭 해야지. 나도 오래오래 훈련하고 싶어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
당신의 영상에 가장 많이 달리는 댓글은 ‘강형욱은 이쯤되면 개 훈련사가 아니라 인간 훈련사다’ ‘상담사를 했어도 잘했을 거다’라는 글들이더라.
이네이블러(Enabler)라는 말이 있다. 조장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측은지심이 많다. 누구를 가엾이 여기고, 누가 힘든 꼴을 못 본다. 내가 도와주고 대신해야 하고. 조장자들은 곤경에 빠진 사람을 찾아다닌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줄 때 살아 있다고 느끼고, 자존감이 상승하니까. 어쩌면 내게도 그런 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람도 좋아하나?
돕고 싶은 마음은 진심이지. 그런데 보호자보다 반려견을 도와주고 싶어서 보호자를 설득하는 거다. 이 개는 내가 기르지 못하니, 개를 위해 최선을 다해 설득할 뿐이다. 동물을 대하는 직종을 가진 사람들 일부는 인간을 싫어하는 것 같다. 하하하. 나도 개인적이고 내향적인 성향이고, 집에서 가족, 개들과 함께 충전해야 그 힘으로 방송도 하고 교육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훈련사로서, 인간으로서 지향하는 인격 사이 갭이 생길 때 어렵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 중 나쁜 사람은 없다는 말은 맞을까?
그렇지 않다.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타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자신을 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감정쓰레기통으로 키우는 거지. 정말 뭘 모르고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 강형욱은 어떤가?
사람들은 나의 반려견 교육을 보고 강형욱은 인격적으로도 우수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나 자신은 내 훈련 영상을 보면서 사람에게도 저렇게 해야지, 반성한다. 하하하. 난 그저 단련된 반려견 훈련사다.
개는 인간이 줄 수 없는 애정을 준다. 개는 도대체 어떻게 인간을 그토록 사랑할 수 있는 걸까?
진화론적으로 보면 명확하다. 서로를 취함으로써 이득이 된 거다. 사람은 치아가 약하기에 음식을 섭취한 뒤 뼈와 찌꺼기를 남기고, 개과 동물은 단독 사냥을 못했다. 그런데 사람 주변에 갔더니 잔여 음식이 있는 거지. 사람도 개를 통해 가축을 지킬 수 있으니 호의적 관계를 맺기 시작한 거다. 사실, 돼지가 우리에게 식량이 되려고 오진 않았다. 그런데 개는 인간을 선택했다. 개도 우리가 있어서 좋았고 우리도 개가 있어 좋았던 거지. 흥미로운 건 제2차 세계대전 후에 인간이 개에 대한 애착이 깊어졌다는 거다. 산업화 전에는 개에게 받는 위로가 중요하지 않았지. 하지만 산업화, 도시화가 된 후 먹고 자고 입는 문제가 해결된 다음, 우리에게 생각지도 못한 약한 마음이 있다는 걸 발견한 거다. 그 약한 마음을 위로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반려동물이었지. 인간이 채울 수 없는 결핍을 이 친구들이 채워주니 행복했던 거다. 이 친구들은 우리를 판단하지 않잖아. 단지 우리를 항상 기다려주고 좋아해줄 뿐. 그러니 우리도 개를 사랑하게 된 거다.
당신은 왜 그렇게 개를 사랑하나?
열심히 살아야 하고, 스스로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은 항상 긴장한다. 누구에게도 상처 받고 싶지 않고, 스스로 방어하고, 포장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은 어딘가에 가서 고개를 처박고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건 반려동물뿐이다. 이를테면 우리 아내는 내가 10년 째 입는 빨간 바지를 항상 내다버리라고 하는데, 우리 다올이나 바로는 그런 말 안 하거든. 하하하. 물론 아내가 날 사랑해서 그런 말을 한다는 건 알지. 하지만 개는 우리를 채점하지도 판단하지도 않는다.
지금 인터뷰 중인 보듬센터 사무실에 걸린 표어 ‘개 잘 키우는 사회 만들기’가 인상적이다.
누구도 돌보지 않는 개가 있으면 누구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여러 나라를 다니며 경험한 건데, 길거리에 개가 누워 있으면 길거리에 누워 있는 사람도 있더라. 한국에서도 외진 곳에 개가 묶여 있다면, 그곳엔 방치된 노인, 장애인, 잠긴 문 안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이 분명 있다. 드러나지 않을 뿐. 교외로만 나가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텔방에 네다섯 명씩 숙식하며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을 한다. 장애인 비율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장애인이 안 보이지 않나? 하루에 한 명도 보지 못한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나오기 어렵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업을 하니 이번 정부가 세금을 많이 가져간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속에선 ‘이게 나라’라는 생각이 든다. 절대 정치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하하. 단지 내 아이는 사회적 약자들이 잘살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으면 좋겠다. 약자가 받는 대우와 처한 환경이 그 나라의 지표나 다름없다. 내게는 개 잘 키우는 사회 만들기가 목표다. 거기서부터 시작해 나가는 거다.
동감한다.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과 사회적 약자를 생각하는 마음은 닿아 있을 것이다.
아동, 노인, 나아가면 외국인 노동자나 장애인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없는 이들 말이다. 민식이법에 대한 반응도 안타깝다. 너무 당연한 건데, 한국에선 약자에 대한 보호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일인 거다. 제인 구달의 책에서 봤는데, 콩고의 고릴라를 살리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원주민의 생활을 안정시켰다고 한다. 각국의 부자들이 트로피 삼아 고릴라를 사냥하는데, 브로커를 통해 원주민에게 고릴라가 있는 곳을 안내하게 시켰거든. 그런데 원주민의 생활을 안정시켜주고 교육 환경을 제공하니, 검은 돈에 현혹되지 않게 됐다더라. 개를 잘 키우려면 사람도 잘살아야 한다.
스피치 실력이 뛰어나다. 목사로 설교를 했어도 잘했겠다.
잘 때도 꿈에서 누군가를 설득하고 있다. 하하. 강박 같다. 사실 내가 하는 말들을 타이핑하면 문장이 이상하다. 내 유튜브를 직접 리뷰해보니 그렇더라고. 그런데 영상을 보면 나쁘지 않다. 목소리의 높낮이, 톤이나 속도, 제스처, 표정, 모든 비언어적 표현을 동원해서 누군가를 설득하려는 마음이 그렇게 만드는 거겠지.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미래통합당 입당 제안을 단칼에 거절했다. 왜인가? 정치도 잘할 것 같은데?
정치는 절대로 안 할 거다. 바보들이 모여 희희낙락하는 게 싫다. 나는 술자리에도 안 나간다. 조직 문화도 싫어해서 개와 관련된 어떤 협회나 단체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다.
한 업계의 입지적 인물인데, 욕심 내볼 법하지 않나?
나는 그냥 훈련사다. 인격적으로나 도덕적으로도 바른 사람일 거라고 기대하시는데, 전혀 아니다. 완전 꼰대다. 욜로 문화도 싫다. 사람은 열심히 살아야지. 하하하. 훈련사로 성장하며 나 자신도 성장할 수 있는 게 감사하고 행운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인간 강형욱은 훈련사 강형욱보다 한참 미진하니까. 훈련이 빠진 강형욱? 그냥 가평에 사는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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