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싸웠다. 입에 담을 수 없는 험한 욕을 주고받았다. 당황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싸운 거니까. 인터넷 게시판이라는 게 21세기 콜로세움 아니겠나. 검투사 대신 키보드 워리어들이 별것도 아닌 주제로 목숨 걸고 싸우는 곳. 처벌은 황제 대신 사이버 수사대에서 담당하고 있다. 어쨌든 문제의 발단은 이렇다. 누가 박지성을 평가절하한 것이다. 그게 아니라 뭔가 좀 오해가 있나 본데. 흥민이도 잘하지만 지성이 형은 말이야 당시 아시아 최고였고, 어쩌고 하며 의견을 주고받다 보니 험한 말이 오갔다. 한참이나 화를 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30대 후반에 이르렀는데도 왜 아직 인내력은 늘지 않은 걸까. 반성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성욕을 떨치려는 중세 수도승처럼 당분간 금욕 모드에 돌입하기로 했다. 30대가 금욕하면 반칙이라고? 나이 들면 성욕이 줄어든다는 속설이 있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그런 말 한 사람은 좀 맞을 필요가 있다. 경험에 따르면 30대 후반이 되어도 욕구는 전과 다름없다. 단지 배 나온 아저씨가 성욕에 현혹된 모습을 징그러워하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숨기게 되고. 참고로 나는 20대 때 노인의 성욕을 이해하자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징그러워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냥 좀 우스웠을 뿐이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금욕을 통해 인내력을 키우는 것이다. 욕구를 자제할 줄 아는, 넓게는 이해심 넓은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뿐이다. 옛말에 ‘1일1딸’이라는 말이 있다. 없나? 어쨌든 젊고 건강한 남성이라면 매일 성욕이 충전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성욕이란 무엇인가. 정의하고 갈 필요가 있다. 성욕은 생물의 신성한 본능이자 번식이라는 의무를 집행할 수단이며, 인류의 위대한 여정을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하는 숭고한 가치다.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 아니겠나. 어머니 대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것은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하지만 모든 개체가 번식 가능한 것은 아니다. 짝이 없어 번식에 실패하는 것은 생태계에서 흔한 일이다. 그러니 지금 내가 도전하려는 금욕 챌린지란 유전자를 남기고자 하는 본능과 40만 년 인류 여정에 반하는 반자연주의적 행위이자 거대한 도전이 아닐 수 없다. 설명이 좀 거창한데, 그냥 ‘노딸데이’를 갖겠다는 거다.
금욕 다이어리를 공개하고 싶지만 2일 차까지는 별다른 특이 사항이 기록되지 않았다. 3일 차부터의 기록을 복기해본다. 3일 차 아침부터 발기 강직도가 향상됐다. 아침에 개운한 것은 아니었다. 피로는 여전했다. 오후가 되자 미묘한 징후들이 나타났다. 집중력이 떨어졌고, 잡생각이 늘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실시간 뉴스를 보는 시간이 늘었다. 평소보다 다리를 더 자주 떨게 됐다. 다음 날에는 눈에 띄는 변화가 있었다. 식욕이 줄었다. 피자 세 조각은 거뜬한데, 두 조각 먹다 말고 손을 털었다. 감정 기복도 커졌다. 별일 아닌데 짜증이 났다. 다리를 너무 떨어서 무릎에 통증이 왔다. 살이 쪄서 그런가? 어쨌든 산만해졌다. 5일 차에는 운동을 시도했다. 성욕을 떨치는 방법 중에는 격렬한 운동으로 체력을 방전시키는 방법이 있다. 고전적인 기술인데, 요즘도 통할지 미지수였다. 운동화를 신고 달리기를 했다. 1킬로미터 조금 넘게 뛰었을 때, 더 뛰면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그래서 몇 미터 더 가서 포기했다. 땀을 너무 많이 흘렸고, 샤워하고 개운한 상태로 침대에 눕자 잠이 오질 않았다. 잡생각이 늘었는데, 무슨 생각했겠나? 야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밤에 운동하면 심장에 무리가 간다. 심장이 활발히 뛰고 혈액순환이 잘되니 잠이 오질 않는다. 잠이 안 오니 딴 생각만 하게 된다. 다음 날 다시 금욕 1일 차가 시작됐다.
그래도 5일간 버틴 내 자신이 대견했다. 약 1백 시간 참았다. 금욕하며 발견한 것은 나이가 들면 성욕이 주는 게 아니라 성욕을 발휘할 여유가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심신이 지친다. 스트레스 받지 않는 날이 없으며, 걷기조차 힘들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운동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운동할 시간이 부족하다.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눈 붙이는 게 낫다. 그리고 하나 더. 금욕한다고 인내심이 늘진 않는다. 짜증이 는다. 금욕 생활 이전보다 더 활발한 성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자랑 같은 고백으로 글을 마친다. 모두 ‘건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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