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에서 밀키트(Meal Kit) 열풍이 한창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더욱 탄력을 받았다. 유통업체에서 내놓은 밀키트 상품은 연일 품귀 현상을 이룬다. 그로 인해 대형마트 오너와 기업 CEO가 간편식 개발을 진두지휘하며 제품의 다양화에 큰 투자를 하고 있다. 좋은 재료 상태와 맛, 그리고 가격은 외식 업계마저 위협하고 있다. 점점 진화하고 있는 밀키트로 인해 변화하는 외식 업계의 뒷사정을 알아본다.
좀비 영화의 첫 장면처럼 거리는 한산했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영향으로 사람이 사라졌다. 도로를 무심히 달리는 자동차 행렬, 그 사이를 쏜살같이 가로지르는 오토바이와 박스를 나르는 택배 기사만 눈에 띄었다. 간간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게 전부였다. 뚝섬한강공원 인근에서 프랑스 음식점이자 카페를 운영한 지 5개월 만에 맛보게 된 쓰라린 풍경이다. 정오를 한참 넘긴 오후가 되어서야 첫 손님이 들어왔다. 10여 명의 단체 손님이었다. 주최자가 입을 뗐다. “지난번에 말한 것처럼 시범 삼아 마스크를 1백 장씩 나눠줄 거니 스마트 스토어에서 팔아보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연일 주요 뉴스로 보도되고 장당 3천원을 넘어 4천원으로 넘어가던 시기였다. 정부 규제로 판로가 사라지자 점조직으로 판매할 모양이었다. 누가 이걸로 얼마를 벌었다느니, 그 돈으로 수입차를 샀다느니 이런 바람몰이식 설명이 뒤를 이었다. 코로나19가 몰고 온 또 다른 풍경이다.
이들은 며칠 뒤 다시 카페로 모였다. “자, 어쨌든 마스크는 이제 물 건너갔으니 다른 걸 팔아봅시다. 음식이 아이템이에요. 조리는 필요 없어요. 간편식이라고 집에서 해 먹을 수 있게 다 포장되어 있습니다. 받아온 물건을 파는 거예요. 사진 같은 건 알아서 찍어서….” 공적 마스크 공급이 시행된 직후였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경기가 침체되는 와중에 시중의 돈은 마스크에서 배달 음식과 가정간편식(HMR)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가정간편식은 최근 몇 년 동안 외식업계의 중요한 화두다. 1인 가구 증가와 라이프스타일 변화에 따라 식문화가 다양해지면서 장을 보거나 조리를 위해 재료를 손질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식재료의 낭비도 없는 가정간편식을 찾는 이들이 늘어났다. 기름 없이 조리가 가능한 에어프라이어의 출시도 한몫했다. 가격도 매장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고 신선도도 나쁘지 않다. 일반 택배 배송에서 새벽 배송으로 배달 시장이 이동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는 2016년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를 조사했다. 당시 가정간편식 시장은 약 2조3천억원 규모로 나타났고, 올해 6조7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19를 기폭제로 올해 가정간편식 시장 규모는 이를 훨씬 웃돌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보다 전 세계 경기가 더 위축되어 수출 부진과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경제성장률이 IMF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에서 돈이 몰리고 성장이 점쳐지는 시장을 기업 입장에서는 절대 놓칠 수가 없다. 롯데마트가 가정간편식과 즉석조리식품을 연구하는 ‘푸드이노베이션센터’를 신설하고 롯데마트 문영표 대표가 일주일에 사흘은 점심으로 개발 메뉴를 시식하고,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비밀연구소’의 피코크 진진 멘보샤를 시식하는 사진을 업로드하며 열을 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몇 년간 CJ 푸드빌 지분 매각과 보유 부동산 정리를 통해 재무 구조를 개선하던 CJ제일제당이 유동성을 확보하고 지난해 연 매출 20조원을 첫 돌파하며 올해 반등에 성공한 것도 가정간편식 소비가 늘어난 덕분이다. 3분 카레나 냉동 피자 같은 즉석조리식품은 이전부터 있었지만 지금 가정간편식을 이끌고 있는 건 손질된 재료와 육수, 레시피 등이 포함된 반조리 제품 즉 밀키트(Meal Kit)다. 2012년 미국에서 가정식 밀키트 배송을 시작한 블루에이프런부터 시작됐다. 국내에도 블루에이프런을 벤치마킹한 밀키트 배송 업체들이 생겨났는데 대기업보다 스타트업 업체가 주를 이뤘다. 대기업도 주목은 하고 있었지만 섣불리 접근하기보다 이런 스타트업 업체를 인수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동원이 2016년 온라인 간편식 1위 사이트인 ‘더반찬’을 인수한 것도, 마켓컬리가 지난해 1천3백5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은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직접 투자 후 실패하는 것보다 유망한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정간편식 시장은 또 다른 전환점을 맞고 있다. 지난해 한 식재료 가공업체가 밀키트 사업의 콘텐츠 제작을 준비한 적이 있는데 이들은 신선한 식재료와 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건강한 요리를 콘셉트로 잡았다. 정용진 부회장이 비밀연구소에서 김치찌개나 갈비찜이 아니라 진진의 멘보샤를 시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진진이 어디인가? 중식 대가 왕육성 셰프가 운영하는 중식당이고, 멘보샤는 진진의 시그너처 메뉴다. 시장이 성장하고, 찾는 이들이 늘어나면 시장은 제품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연유는 명료하다. 매일 같은 밥을 먹으면 입에 물리고, 소득이나 취향에 따라 만족하는 음식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산 셀렉트 등급을 사용한 갈비찜과 한우 1++을 사용한 갈비찜은 가격과 구매층이 다르다. 그건 동네 무한 뷔페 고깃집과 청담동 한우 오마카세 전문점의 차이와 같다.
앞서 언급한 카페를 찾아온 단체 손님이 어떤 밀키트를 판매할지는 몰라도 아마 편의점 도시락 수준이지만 높은 유통 마진으로 가격은 그보다 훨씬 비쌀 확률이 높다. 당장은 팔릴지 몰라도 소비자가 이런 제품을 재구매할 확률은 낮다. 밀키트도 결국 식재료의 신선도와 음식의 다양성, 미식 경험의 수준에 따라 구매하는 층이 달라지게 될 것이다. 최근 한 지인이 한산한 카페에 놀러 와서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코로나19 때문에 외식이 너무 두려운데 소곱창이 정말 먹고 싶어서 개인이 스마트 스토어로 판매하는 가정간편식 제품을 구매해서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깜짝 놀란 것이 강남의 유명 소곱창집에서 먹는 것보다 더 좋은 재료 상태와 맛, 그리고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앞으로 곱창은 모두 집에서 먹을 거라고 했다. 가정간편식이 외식 업계의 위기이자 외식의 전환점을 이루고 있는 뒷사정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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