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IT 기업들의 변화가 일어났다. 영원히 잘 팔릴 것만 같은 제품도 매장 문을 못 여니 팔래야 팔 수가 없다. 공장이 폐쇄된 것도 타격이 크다. 제품을 팔려고 해도 만들 수가 없다. 문제는 이 상황이 언제쯤 개선될지 예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제조사가 손발을 못 쓰는 사이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기업은 일이 늘었다. 클라우드 서버 회사들도 늘어나는 데이터를 감당하지 못해 서버를 증설하고 있다. 사라진 줄 알았던 화상캠이 다시 인기를 끌고, 온라인 협업 툴이 기업의 필수 앱으로 자리했다.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해야 한다. 글로벌 공룡 기업들은 더 이상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를 순 없다.
오산이었다. 2020년이 오면 자동차가 날아다닐 줄 알았는데, 현실은 집 밖에 나가려면 통행증이라도 발부받아야 한다. 시간이 거꾸로 가는 듯하다. 2020년대는 전염병으로 시작됐다. 지난 2010년대에는 ‘혁신’을 중심 과제로 삼은 글로벌 IT 기업들이 기술 각축전을 펼쳤다면, 2020년대는 당장 새로운 무언가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 해 모바일 시장을 예측할 수 있는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가(MWC)가 33년 만에 취소됐다. 스마트폰을 찍어내던 공장들은 가동을 멈췄고, 제품 생산에 필요한 소재를 조달하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다. 새로운 디바이스와 신기한 앱이 유행해야 하는데, 정작 팔리는 것은 화상 채팅 앱과 노트북이다. 채팅용 캠도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새로운 무언가가 아니라 일상의 편리를 조금이나마 유지할 수 있는 값싸고 구하기 쉬운 물건이다. 신제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니 신제품 출시는 기약 없고, 줄줄이 취소된 박람회는 말할 것도 없다.
공장들은 마스크 제조와 같이 방역 제품들을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HP는 3D 프린터로 의료용 안면 보호대와 면봉을 생산하고 있다. 다이슨도 인공호흡기 생산에 들어갔다. 기업들은 전시체제로 돌아섰다. 글로벌 시대의 기업들은 전 세계 각국과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으니, 세계가 전반적인 안정을 취하기 전까지는 기업 활동도 기대하기 어렵다.
전시 상황에서 군수업체 주식이 상한가를 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도 수혜를 본 기업이 있다. 아마존이다.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손 세정제를 비롯한 방역 물품들이 엄청나게 팔렸다. 비접촉 문화는 오프라인에 익숙한 세대까지 온라인 배송을 이용하게 만든다. 아마존과 같은 전자상거래 업체는 ‘언택트 서비스’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게 될 수도 있다. 전자상거래 업체는 생필품과 재난 물품을 배송하며 적십자의 역할을 일부 수행하기도 한다. 아마존은 배송만이 아니다. 웹 서비스도 성황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줌과 슬랙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기업은 줌을 이용해 화상회의를 하고, 슬랙으로 업무를 한다. 참고로 줌은 화상 채팅 앱이고, 슬랙은 클라우드 기반의 협업 툴이다. 이 둘은 아마존 클라우드를 사용한다.
업무를 논할 때 마이크로소프트가 빠질 수는 없다. 워드나 엑셀 같은 툴 외에도 마이크로소프트는 원격 근무를 위한 서비스를 꾸준히 지원해왔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화상 회의 툴 팀즈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사용량이 1000% 증가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비대면 업무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기능을 더욱 다양화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에선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활약을 기대해봄 직하다. 삼성전자가 발표한 1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년보다 매출액이 증가했고 영업이익도 6조4천억원이나 기록했다. LG전자의 성적표도 흑자였다. 하지만 우려는 있다. 1분기에는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지 않았다. 중국에만 집중되었고, 중국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 삼성전자와 LG전자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문제는 북미와 유럽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이다. 2분기부터는 북미와 유럽에 코로나19가 확산되었기에 매출 하락은 불가피하다. 오프라인 매장이 문을 닫은 상태에서 제품이 팔리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또 언제 다시 매장이 영업을 시작할지, 사람들이 새로운 가전제품을 필요로 할지도 미지수다.
그나마 삼성전자는 반도체로 만회할 기회를 잡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반도체는 스마트폰에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고가 서버의 수요도 급증하리라 기대된다. 고가 서버 반도체 수요가 늘면 삼성전자는 숨을 쉴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가전제품 의존도가 높은 LG전자로서는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을 것이다. LG디스플레이가 TV용 OLED 패널을 생산하고는 있지만 수요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중국의 코로나 상황이 잠잠해지면 승부를 걸어봄 직하다.
당장 문제를 겪고 있는 것은 디바이스 위주의 기업들이다. 판매도 공급도 난항이다. 제품 출시 일정을 뒤로 미룰 수밖에 없다. 애플은 올해 초 중국의 아이폰 생산 공장을 폐쇄한 경험이 있다. 말레이시아와 베트남의 애플 생산 라인도 이동 제한 조치에 따라 생산이 멈춘 상태다. 중국이 생산을 재개하더라도 이번에는 미국이 문제다. 생산된 제품을 테스트해야 하는데, 물류 배송이나 검사 기관이나 당장 업무를 시행할 수 없다. 따라서 아이폰12 출시일이 한 달가량 늦춰질 것으로 전망된다. 올 가을께나 가능하다는 것인데,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 출시가 연말에 이루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순 없다. 기업들은 코로나 사태 해결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애플은 구글과 손잡고 스마트폰 이용자의 접촉자 정보를 수집하는 시스템을 구축하기로 협의했다. 기본적으로 블루투스 신호를 활용하며, iOS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가리지 않는다. 스마트폰들이 서로 접촉하면 일정한 신호를 주고받는데, 이 신호는 익명 처리된 뒤 데이터베이스로 전송된다. 스마트폰 사용자 중 코로나19 감염자가 있으면 앱에 이 감염 사실을 입력한다. 그럼 접촉한 이들에게 알림이 전해진다. 감염자 추적으로 코로나19 확산을 막겠다는 의지이며 이 기능은 5월 중에나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또 이 시스템은 앞으로 iOS와 안드로이드에 기본 기능으로 적용된다.
4월 중순 현재 전 세계 코로나19의 확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 종식 시점을 예상하던 언론들도 더 이상 종식을 언급하지 않는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의 세상은 오지 않는다고 질병관리본부가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일상에 집중하는 것만이 다시 혁신의 시대를 불러오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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