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숲 해?” 요즘 대화에 빠질 수 없는 질문이다. <동물의 숲>은 현실을 닮은 가상 세계지만 사실은 무척 비현실적이다. <동물의 숲>에선 조금만 노력해도 내 집을 마련할 수 있고 노동에 대한 합리적인 보상도 이루어진다. 시장 경제는 예측 가능하게 작용하며, 무를 재배해 비싼 값에 되파는 것도 어렵지 않다. 동물의 숲에선 노동의 대가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동물의 숲>을 플레이하기 위해 웃돈 주고 닌텐도 스위치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이어지고 있다. 노동에 대한 보상, 가상 세계 안 커뮤니티, 희소성의 법칙까지. <동물의 숲> 중독 현상을 짚었다.
이젠 혼자 집에서 게임해도 은둔형 외톨이 취급을 받지 않는다. 한 해 전만 해도 게임중독에 질병 코드를 부여하려 한 세계보건기구(WHO)마저 게임을 권한다. 커뮤니티 기능을 담은 인터랙티브 게임을 활용하면 코로나19로 인한 단절감을 극복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다. 게임에 주홍글씨처럼 따라붙던 ‘중독’이 ‘힐링’으로 대체될 기세다. 이런 우호적 분위기에 실업과 자가격리로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그다지 달갑지 않은 요인이 합쳐져 게임 산업은 특수를 누리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20일 출시된 닌텐도의 <동물의 숲>은 발매 사흘 만에 1백88만 장이 판매되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코로나19로 부품 공급이 여의치 않아 비정기적으로 소량씩 입고되는 상황인데 판매가 공지되면 매장 앞엔 전날부터 긴 줄이 선다. 36만원인 게임기가 중고 거래 사이트에서 80만원대에 거래되기도 한다.
<동물의 숲>이 게임계의 ‘허니버터칩’ 같은 존재로 부상한 것이다. 희소성이 있다는 생각에 더 많은 사람이 구매 대열에 뛰어든다. 구하기 힘든 걸 즐긴다는 생각이 재미를 더한다. 그러나 한 번 먹고 나면 효용이 급격히 떨어지는 감자칩과 달리 <동물의 숲>은 그 재미가 강렬하게 이어진다. 누군가 끊임없이 먹을거리만 제공해준다면 영원히 이 세계를 벗어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든다. 코로나19 창궐이라는 시대를 잘 탄 측면이 있지만, 게임 콘텐츠도 잘 만들었다. 아기자기한 이벤트들은 코로나로 인한 불안감을 잊게 해주고, 안정감을 되찾아준다.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대리만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에선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갖기 힘들고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도 없다. 수렵·채집으로 생존은 가능하겠지만 그것을 문명의 삶으로 받아들이진 않는다. 하지만 <동물의 숲>에선 가능하다. 허름한 텐트에서 시작해 멋진 집을 만들 수 있다. 체리와 배, 사과, 복숭아 같은 열매를 따거나 낚시로 잡은 물고기를 교환하거나 판매할 수 있다.
나무는 바람에 사각대고, 낚싯대를 물에 던지면 ‘퐁’ 하는 소리가 난다. 바닷가에 의자를 놓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신선놀음하듯이 즐길 수 있다. 상상의 세계였던 무릉도원이 가상 세계로 내려온 것이다. 현실의 고난과 역경에 지친 이들은 자연 같은 이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일하지 않고 유유자적할 수 있지만 근면하다면 내가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장시간 노동에, 학창 시절은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경쟁의 굴레를 벗기 어려운 한국인에게 이보다 공정한 세상은 없을 것이다.
이용자들은 너구리가 주는 임무를 완수하면서 보상을 받는다. 일상에서 일을 통해 돈을 버는 것과 같다. 일과 보상은 소소하지만 이런 작은 성공의 경험이 기쁨을 준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고, 실패해도 탓할 사람이 없다.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무균의 삶’을 살 수 있다. 치유까지 가지 않더라도 현실의 상처가 곪아 터지지 않도록 하는 반창고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다. 특히나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감이 커지는 요즘엔 그 효과가 더할 수밖에 없다.
가상 세계에 몰입하는 정도는 게임의 섬세함에 달렸다. <동물의 숲>에선 계절별로 나오는 동물과 물고기의 종류가 달라진다. 계절에 따라 채집할 수 있는 열매가 다르고, 같은 계절에도 시간대별로 채집할 수 있는 종류가 달라진다. 그래서 24시간, 사계절 내내 질리지 않고 끊임없이 할 수 있다. 쌀 때 사서 비쌀 때 파는 경제 원리도 현실적이다. 한 유명 유튜버가 그랬듯이 91벨에 무를 사서, 다음 날 정오 143벨에 팔 수 있지만 더 큰 대박을 노리면서 판매를 미루는 식이다. 다만 캐릭터 개인화는 정교하지 않고, 자유도가 높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매력이다. 아기같이 포동포동 살이 오른 캐릭터들은 이 게임이 건강하고 무해하다고 말한다.
적절한 동기 부여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동물의 숲>은 그런 보상 체계가 잘 설계됐다. 어려워서 지치게 하지 않고, 너무 쉬워서 금방 질리게 하지도 않는다. ‘이게 뭐라고’ 하는 사이 정신을 차려보면 몇 시간씩 지나버린다. 지금의 즐거움과 미래의 기대감을 안기는 적절한 보상이다. 섬의 평판이 대표적인 예다. 섬에 꽃을 심고 의자와 장식물을 설치해 섬의 평판을 높이면 ‘케이케이(K.K.)’가 섬을 방문해 라이브 공연을 해준다. 그런 후 새 기능이 열려 섬을 자신의 구상대로 바꿀 수 있다. 절벽을 깎고 호수를 만들거나 폭포를 만들 수 있다.
<동물의 숲>은 가상 세계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 세계로 연장될 수 있다. 한 <동물의 숲> 이용자는 “왜 사람들이 귀농하고 싶다고 말하는지 이해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벌레를 싫어해 귀농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그가 게임 속에서나마 물고기를 잡고, 열매를 따고, 꽃을 심고 가꾸는 전원 생활을 맛보면서 실제 전원 생활에 대한 동경을 품게 된 것이다. 스마트폰 앱에서 여럿 ‘농장 게임’이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게임은 현실의 당의정인 셈이다.
필자도 과거 블리자드의 MMORPG ‘월드오브워크래프트’를 하면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확장팩에서 농장 기능이 추가된 후 씨를 뿌리고, 수확하고, 수확물을 팔거나 그걸로 요리까지 하는 일련의 과정이 재미있었다. 지금 베란다 텃밭을 가꾸고 주말농장을 분양받아 상추, 감자, 부추를 심은 것은 어쩌면 그때 느꼈던 즐거움이 알게 모르게 작용한 것은 아닐까.
<동물의 숲>은 게임에서 얻은 긍정적 경험이 현실에서도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사례가 될 수 있다. 힐링을 넘어서, 대안적인 삶을 모색할 수 있는 작은 실험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를 계기로 그간 자연을 파괴하며 개발의 한길로 달려온 세계 문명이 전염병을 불러왔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이후의 새로운 시대를 모색하는 데 게임이 작은 영감이 될까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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