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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리의 정원>
화가 모리는 울창한 정원이 있는 집에 산다. 매일 아침이면 출근하듯 정원에 나가 해가 지도록 개미 떼와 송사리, 수풀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게 그의 일상이다. 작은 생태계는 해가 뜨고 지듯 부지런히 돌아가고, 30년간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는 기인의 세계는 작지만 넓다. 어느 날 밤, 모리카즈는 아내 히데코에게 인생을 다시 한번 살 수 있으면 어떨지 묻는다. 싫다며 손사래 치는 히데코에게 모리카즈는 말한다. “나는 지금도 더 살고 싶은걸. 사는 게 좋아.” 노인은 죽음에 가까운 존재일까, 삶에 가까운 존재일까? 많은 작품에서 노인을 죽음에 가까운 초연한 존재로 그리지만 노인은 살아 있다. 그것만으로 삶에 가깝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어도 살아가는 건 여전히 아름답고, 그의 몸과 마음은 느리지만 소란히 움직인다. 노인은 사는 게 좋다. 기키 기린의 유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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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리저베이션홀 재즈밴드>
재즈의 고향, 뉴올리언스에 50년 이상 자리한 프리저베이션 홀에는 그 세월 동안 연주해온 연주자들이 있다. 색소폰 연주자 찰리 가브리엘도 그중 한 명이다. 노인의 거친 손엔 악기 자국이, 연주한 시간이 깊게 남았다. 밴드는 재즈의 뿌리를 찾아 쿠바로 떠나고, 아바나와 산티아고에서 공연하며 재즈의 기원에 접근한다. 이 음악 다큐멘터리가 노인에 관한 이야기인 까닭은 나이 때문만은 아니다. 영화는 과거 푸티지 영상과 현재 라이브 영상을 교차한다. ‘프리저베이션 홀’이라는 제목처럼 음악은 기록이고 보존이자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는 길이고, 어른 세대엔 후세대에 음악을 전달할 책임, 그리고 계속 배워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것, 더 신선한 것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한 장르의 기원에 대해 탐구하고 어른의 역할에 대해 말하는 고집스럽고 아름다운 다큐멘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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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레저 시커>
아무리 찬란했던 생이라도 죽음은 찾아온다. 끔찍이 사랑했고 행복한 가정을 이뤘지만, 나이가 들어 치매를 앓는 남편과 시한부 질환을 앓는 아내가 자식들 몰래 캠핑카를 타고 키웨스트로 여행을 떠난다. 멀쩡하게 대화하다가도 금세 자신의 이름마저 잊고 속옷에 실례를 하는 남편이지만, 그가 한때 멀끔한 신사이자 지성을 갖춘 교수였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잃지 않는 아내. 그녀는 정신이 희미해져가는 남편에게 자신이 사랑했던 그를 돌려내라고 하지만, 남편은 자신도 그를 빼앗겼다 말한다. 누가 남편에게서 그를 빼앗아간 걸까? 시한폭탄 같은 여행이지만 부부는 즐겁다. 어차피 삶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것. 죽음과 품위에 대해,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순간을 산뜻하게 그려낸 영화다. 헬렌 미렌과 도널드 서덜랜드의 연기가 사랑스럽다.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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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미스터 스마일>
원제는 <The Old Man and the Gun>으로 노인과 총이다. 수트를 갖춰 입고 중절모를 쓴 채 단정한 브리프케이스를 들고 품에서 총을 살며시 꺼낸다. “자, 현금으로 이 가방을 채워주세요.” 점잖은 노년의 은행털이범, 포레스트 터커는 즐거워서 이 일을 한다. 총은 장전된 적도 없다. 잡힐 때마다 도망가고, 수감될 때마다 탈옥하지만 체포될 때도 웃고 있는 비범한 노인은 “이건 생계의 문제가 아닌 삶의 문제”라 말한다. 일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는가? 남에게 정중하고 예의를 지키는가? 행복한가? 업종에 대한 문제만 떠나면, 일단 포레스트 터커는 단정하게 원칙을 지켜왔다. 캐릭터 무비로 일종의 제스처 같은 영화다. <내일을 향해 쏴라>의 ‘더 선댄스 키드’로 시작해 <미스터 스마일> 미소로 고별 인사를 보낸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의 유작이라는 점에서 더 그렇다. 왓챠플레이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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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선생님과 길고양이>
은퇴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교장선생이라 불리는 노인이 있다. 꼬장꼬장하고 괴팍한 성격에 고립된 노인을 누군가는 비웃고 누군가는 안쓰러워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후배가 소일거리나 하라며 준 문학 번역에 최선을 다하고, 자신의 문학적 견해에 대해 장광설을 늘어놓지만 후배의 전화는 끊겨버리기 일쑤. 죽은 아내가 사랑했던 길고양이가 사라지자, 노인은 고양이를 찾아다니며 사람들과 소통하고 가까워지는 법을 조금씩 배운다. 초고령화에 접어든 일본 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영화로, 실제 주변에서 한두 명은 봤을 법한 강팍한 노인 캐릭터를 온기 어린 시선으로 담아낸다. 귀여운 고양이로 얼버무리려는 ‘소품’에 그치는 작품일거라 생각했다면 오해다. 상실한 것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는 비애가 묻어 있는 일본 사회의 현주소 같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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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행복의 단추를 채우는 완벽한 방법>
괴짜 노인 아버지와 현실적인 아들의 불화는 늘 반복되어온 서사다. 아버지는 과거를 잊지 못하고 아들은 지긋지긋이 여긴다. 이 영화에서 과거는 오래전 실종된 큰 아들의 존재다. 테일러 숍을 운영하고 스크래블 게임을 좋아하는 아버지는 이상한 유머 감각과 아집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말쑥하고 태연한 얼굴 뒤엔 잃어버린 자식의 부재가 커다란 구멍처럼 뚫려 있다. 무엇을 찾고 있냐는 아들의 질문에 그는 답한다. “그 긴 세월 동안 뭘 찾고 있냐고? 난 긴 코트를 입고 걷고 걷고 걸었다. 내가 제일 두려운 게 뭔지 아니? 이걸 이해하지 못한 채로 죽는 거야.” 죽음보다 가까이에 상실과 알 수 없음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래서 노인은 두렵다. 영화는 스크래블 게임의 형식을 차용하며 팬시하게 신을 조립한다. 덕택에 무겁지 않다. 아버지를 연기한 빌 나이의 시치미 떼는 연기가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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