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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삼인삼색

그야말로 트로트 열풍이다. 아이돌 천지 음악 방송까지 점령한 트로트는 지금 코로나19 다음가는 화젯거리다. 트로트 열풍을 이끄는 <미스터트롯>의 진선미, 세 남자에 대한 세 가지 시선이다.

UpdatedOn April 29,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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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웅의 영웅 서사
<내일은 미스터트롯>(이하 <미스터트롯>)은 매주, 매회 뜨거웠다. 안 그래도 흥이 많은 민족인데, 구성진 트로트 가락에 빠져들기 시작하니까 도무지 멈출 수 없는 현상이 됐다. 결국 이 뜨거운 경연의 우승자는 임영웅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연령을 가리지 않는다. 엄마와 딸이 BTS를 함께 좋아하는 건 종종 본 적 있지만 손녀와 할머니가 트로트 아이돌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는 건 2020년의 새로운 팬 문화다.

<미스트롯>의 우승자 송가인이 대한민국에 트로트 불을 지폈다면, <미스터트롯>의 우승자 임영웅은 팬들의 세대를 통합하는 것을 넘어 어머니들의 적극적이고 열렬한 지지를 끌어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미스터트롯>을 열심히 챙겨 보던 어머니들이 어느 순간부터 진지하게 팬으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팬 카페를 가입하고, 아침 일찍 눈을 뜨자마자 유튜브에서 임영웅 무대 영상을 찾아 보는 것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어머니들의 시간은 임영웅으로 채워졌다. 보통 아무리 팬이 되었다 한들, “아들 삼고 싶다”거나 딸이 있다면 “저런 사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에 그치기 마련인데, 유독 임영웅한테만큼은 달랐다. 잠이 많아서 밤 11시 이후 드라마를 보지 못했던 어머니들도 임영웅에게 문자 투표하기 위해 자정까지 깨어 있었고, 음악 방송 활동을 시작한 덕분에 <쇼! 음악중심> 등도 챙겨 봐야 한다.

임영웅은 어떻게 ‘내 엄마의 남자’가 된 것일까? 물론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외모에 겸손하며, 친절한 태도까지 누가 봐도 ‘상견례 프리 패스 상’이긴 하다. 그 치열한 경연의 우승자인데 겉모습만 훈훈할 리 없다. 조영수 프로듀서가 언급했듯 “음정 하나하나에 강약을 주는 섬세한 기교를 갖춘” 실력파이기도 하다. 하지만 훤칠하고 노래 잘하는 가수가 한둘인가. 어머니들을 이토록 매료시킨 건, 임영웅만의 서사 때문이다. 방송 첫 회부터 우승을 거머쥔 마지막 순간까지,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가 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했다. 털어서 사연 하나 없다면 <미스터트롯>에 나올 수 없었을 거다. 하다 못해 최연소 참가자 아홉 살 홍잠언마저 <전국노래자랑> <아침마당 작곡가 베테랑 편> 등에 출연한 과거가 있지 않은가. 임영웅에게 <미스터트롯>은 가족, 특히나 부모님에 대한 애틋한 마음과 절절한 사랑 그 자체였다. 오래 살아보지 못하고 남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고, 포천 송우리에서 미용실을 하며 아들을 키워온 임영웅 어머니의 사연은 방송 내내 화제였다. 현역 A조 예선전에서 그는 어머니에게 헌정하는 노래인 노사연의 ‘바램’을 온 마음으로 불렀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겁니다”라는 가사에서 눈시울을 붉히지 않기란, 매우 어렵다.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는 가수들은 많지만 삶의 아픔을 이토록 진실되게 부르는 가수를 만나기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거친 손마디, 주름 하나하나를 사랑과 존경의 눈길로 어루만지며 노래하는 임영웅은 예선 첫 방송부터 진한 감동을 안겨줬다. 그래서 이 땅의 많은 어머니들은 그를 ‘노래 잘하는 반듯한 청년’에서 ‘아낌없이 사랑을 주고 싶은 내 가수’로 마주하기 시작했다.

결승전에 올라간 그는 인생 곡 미션에서 도성의 ‘배신자’를 택했다. 다섯 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불러준 노래여서다. 워낙 사연이 많은 노래라 한 소절만 불러도 눈물이 날 것 같아 엄두를 내지 못하다가 결승전에서 꺼내 불렀다. 갈색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입고 “내 청춘 내 순정을 뺏어버리고 얄밉게 떠난 님아”를 부르는 임영웅에게서 시청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그의 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스물아홉 살 청년에게서 어느 봄날 기약 없이 떠난 야속한 님의 모습이 보였다. 마치 아버지를 불러낸 듯, 묵직한 전율을 안겨준 무대를 마치고 그는 이렇게 소감을 전했다. “12일 결승전 날이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엄마를 홀로 두고 가신 것이 너무 미안해 아버지가 선물을 주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넉넉지 못한 형편 때문에 어린 시절 넘어져 다친 얼굴의 상처도, 이제 임영웅에게는 노래의 감동을 더욱 증폭시키는 서사가 된다. <전국노래자랑>부터 노래 교실까지 노래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던 그의 과거도, <쇼! 음악중심> 무대 영상으로 1백30만 뷰를 기록한 그의 현재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된다.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영탁이란 사내의 맛
TV조선의 ‘트로트’ 시리즈는 구시대의 유물인 미스코리아대회, 사기 행각을 끝으로 파국을 맞이한 서바이벌 쇼, 가요계의 가장 변두리인 성인 가요 시장 등 기존 관점에서 관심받기 힘든 척박한 땅에 좌표를 그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한물간’ 꼭짓점 사이에서 완벽하게 새로운 별들이 탄생했다. 시청자는 열렬한 팬덤으로 새로운 신화를 써내려갔다. 이름과 딱 붙는 ‘막걸리 한잔’으로 강렬하게 각인된 영탁은 평소 절친한 임영웅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미스터트롯>의 팬덤을 이끌어간 주인공이자, 서바이벌 쇼 특유의 절절한 사연과 매력 사이의 황금 비율을 찾아낸 눈금이었다.

영탁의 프로필은 다른 출연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2007년부터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해 <스타킹>에서 우승도 하고, 발라드 가수로 음반도 취입하고, <히든싱어>에서 잠깐 화제가 되는 등 이런저런 활동을 한다. 하지만 유명세를 얻지 못하고 여섯 차례나 소속사를 전전하다가 결국 트로트 가수로 전향하는 전형적인 스토리다. 현역 트로트 가수로 활동하며 <아침마당>에도 나가고 나름 업계에선 알아주는 히트 곡도 있고 가창력도 나무랄 데 없는 실력이지만 여전히 기회와 운을 만나지 못한 무명 가수의 흔한 이야기. 여기에 안타까운 가족사, 오랜 무명 생활의 궁핍과 부침을 버티며 간직한 꿈과 절실함이 더해진 그야말로 ‘트로트 한(恨)’의 스테레오 타입이다. 그런데 밝다. 자신의 삶이나 절실함을 사연이나 포부로 풀어내지 않는다. 대신 한 편의 뮤지컬처럼 지금까지 영탁이란 사람이 지나온 삶과 색깔을 리듬과 노랫말에 싣는다.

예선전에선 나훈아의 ‘사내’로 출사표를 낸 뒤, 팀 미션까지 모두 올 하트 받고 진출한 본선 2차전 1:1 데스매치에서 강진의 ‘막걸리 한잔’으로 사내의 울림을 전하며 가수 영탁의 명함이 됐다. <미스터트롯>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 이 무대는 ‘우리 엄마 고생시키는 아버지 원망했어요. 아빠처럼 살긴 싫다며 가슴에 대못을 박던 못난 아들을 달래주시며 따라주던 막걸리 한잔’이란 노랫말에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애틋함을 담아내면서 데스매치의 첫 무대 출연자임에도 진으로 뽑힘과 동시에 강력한 우승 후보가 됐다. 영탁은 무대를 통해 자신의 매력을 드러내는 선곡의 묘를 선보였다. ‘사내’부터 ‘막걸리 한잔’까지 영탁의 캐릭터와 딱 붙는 확실한 카드가 있지만 준결승 레전드 미션에서는 ‘리듬 탁’이 된 주현미의 ‘추억으로 가는 당신’으로 변주를 준 다음, 결승 1차전에선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유쾌 발랄한 댄스 넘버 ‘찐이야’로 대박을 쳤다.

그리고 2라운드에서 이미자의 대표적인 후기 명곡 ‘내 삶의 이유 있음은’을 꺼내 들어 간드러짐, 애절함, 기교, 여유까지 고루 선보이며 정통 트로트를 완벽하게 구사했다. 조영수 프로듀서가 말한 “반주와 곡이 가장 잘 붙는, 곱게 다져서 내놓은 도자기처럼 선명”한 가창 능력에 완벽한 트로트 밸런스가 조화를 이뤄 영탁의 노랫말은 귀에 쨍하게 들리고 가슴에 머물며 찡하게 만들어 시청자의 큰 사랑을 받았다.

흥미롭게도 영탁의 진짜 매력은 무대 밖에서 더욱 구수해지는 인간미에 있다. 항상 웃는 얼굴로 동료를 열렬히 응원하고 경연과 미션을 즐긴다. 라이벌 구도를 이룬 친한 동생 임영웅에게 시종일관 당하는 콘셉트고, 경연을 즐기며 다른 출연자를 배려하고 진심으로 축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극적으로 싸움 붙이는 1:1 데스매치에서는 동생을 지목할 수 없다며 유일한 연장자인 천명훈을 선택했고, 팀 미션인 트롯에이드에서는 ‘막걸리 한잔’으로 진을 받아 가장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패자부활전을 통해 올라온 동생들과 팀을 결성했다. 특히 무대에서 영향력이 있을 때 오히려 뒤로 물러서서 힘을 실어주려는 배려심이 돋보였다. 이런 행보는 처절함과 절실함으로 점점 더 센 자극점을 찾던 기존 경연의 피로를 말끔히 녹여냈다. 물론, 그라고 왜 왕관이 절박하지 않았겠는가. 그럼에도 절실한 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고 주변을 둘러볼 줄 아는 배포와 양보의 미덕에서 사내의 맛이 느껴진다. 트롯쾌남 영탁은 모처럼 잡은 일생일대의 기회, 같이 선 무대 위에서 피아가 식별되고, 당락이 인생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서바이벌 쇼에 등장한 최초의 어른이다.
WORDS 김교석(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이찬원은 어떻게 누나 마음에 딱 들어갔나?
1996년생, 스물다섯이다. 군대도 다녀왔다. 그런데 노래하는 목소리만 들으면 원숙함이 뚝뚝 떨어진다. 화려한 듯 촌스러운 ‘트로트 스타일’의 의상을 입었어도 양 볼은 젖살이 채 빠지지 않았다. <미스터트롯> 무대에서 이찬원은 노래할 때는 무척 자연스러운 표정이었지만 노래가 끝나면 곧바로 어색한 미소와 눈웃음이 교차했다. 그의 얼굴에는 건실한 알바 청년, 귀여운 교회 오빠, 순둥순둥한 막내아들, 명절 때 한두 번 만날지라도 싹싹하게 인사하는 조카 표정이 모두 담겨 있다. 이른바 ‘갭 모에’, 이찬원에 대한 폭넓은 지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24년 트로트 외길 인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찬원은 말 그대로 트로트 ‘신동’으로 불렸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트로트 특유의 ‘꺾기’를 습득한 그는 2008년, 2009년, 2013년, 2019년에 <스타킹>과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하며 뛰어난 실력을 알렸다. 고등학생 때부터 행사를 다닐 정도였다고 하니 <미스터트롯>에서 첫 곡으로 ‘진또배기’를 불러 ‘찬또배기’ 혹은 ‘찬또’라는 별명을 얻은 그는 오히려 ‘준비된 신인’이었다. 이 실력에 훈훈한 인상과 겸손함까지 겸비했으니 인기가 높지 않을 수 없다.

학창 시절의 이력도 흥미롭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학생회장이었고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대학 선거운동원이자 농활대장, 학생회 기획차장, 기획국장, 집행국장, 부학생회장까지 섭렵했다. 군대는? 육군 제25보병사단 병장 만기 전역. 그야말로 성실함의 표본 같은 이력이다. 그 와중에 축제 때마다 무대에서 트로트를 부르고, 대학에서도 행사의 MC를 도맡아 했다(뭐야 이거 그냥 ‘엄마 친구 아들’이네). 오디션 프로그램은 출연자들에게 고유한 스토리와 캐릭터를 만들어준다.

하지만 이찬원은 <미스터트롯>의 시청자가 만든 스타다. 첫 출연 후 형성된 이찬원의 팬덤은 그의 콘텐츠를 발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스타킹> <전국노래자랑>의 영상 자료뿐 아니라 고교 동창의 응원글, 학창 시절의 후일담, 인스타그램의 포스팅과 댓글들이 2차 가공되며 ‘혜성같이 등장한’ 이 신인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대표적으로 그의 패션에 대한 일화가 유명하다. 이찬원은 보기와 달리 옷이 거의 없어서 늘 동생에게 빌려 입는다. 친동생과 인스타그램 댓글로 나눈 대화나 일상 컷 등을 통해 이찬원은 ‘세상 물정 모르고 트로트만 아는 바보’ 이미지를 얻었다. 조금 어리숙한 남자/소년의 이미지가 그대로 팬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것은 순수함이나 순박함이라는 트로트 남자 가수의 스테레오 타입이면서 자기를 꾸미는 데 탁월하고 세련된 도시 남자 같은 아이돌과도 차별화된 지점이다. 새삼 트로트는 ‘지방’ 음악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런데 이찬원은 음악도 잘한다.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성량 자체가 뛰어나고 피아노 연주도 잘하고, 발라드도 잘 부른다. 특히 음정이 거의 완벽할 정도로 정확한데, 이것은 일상적으로 대화할 때에도 드러난다. 그는 의외로 중저음이 매력적인데 발음도 정확하다. 팬들은 그의 인스타그램 글도 띄어쓰기가 완벽하다고 칭찬하는데, 그는 사실 글 쓰는 것처럼 말하고 띄어쓰기 하듯 대화한다. 이 말투와 음성이 결합될 때 트로트 가수 이찬원은 아름다운 청년 이찬원으로 인식된다. 누나 혹은 이모들이 좋아할 만한 착하고 귀여운 남자다.

사실 아무리 반짝이는 의상을 입고 압도적인 성량과 구수한 바이브레이션으로 트로트 명곡을 불러도, 이찬원은 영락없이 스물다섯 살 남자애다. 첫 예능 출연으로 <라디오스타>에 등장한 이찬원은 다른 출연자들이 스웨터나 재킷을 걸친 것과 달리 흰색 민무늬 티셔츠에 물 빠진 청 재킷을 입었다. 20세기 청춘 영화에 나올 법한 의상이라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지만, 역시 젊음만으로도 분위기를 압도한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이찬원은 앳된 얼굴로 선 무대에서는 노련한 꺾기와 구성진 리듬감을 자유롭게 구사하면서도 무대 밖에서는 배우 같은 묵직한 목소리로 정확하게 발음하는 ‘갭’을 보여준다. 10대부터 6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찬또’의 팬덤은 여기서 시작되고 더 깊어진다. 팬 카페뿐 아니라 유튜브, 네이버, 인스타그램, 트위터,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디시인사이드까지 팬덤이 폭넓게 걸쳐 있는 것도 그 까닭이다. 트로트의 뉴웨이브는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게 아닐까.
WORDS 차우진(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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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INFO

EDITOR 조진혁
ILLUSTRATION Heyhoney

2020년 0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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