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6일 U-23 대표팀이 AFC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3위까지 주어지는 올림픽 티켓에 우승이라는 최고의 결과로 9회 연속 진출이라는 대업을 장식했다. 이제 시선은 도쿄로 향한다. 2년 전 아시안게임까지 우승한 김학범 감독은 2012년 런던 이상의 성적을 이룰 수 있을까? 올림픽 본선은 아시아와는 차원이 다르다. 유럽과 남미의 강호와 겨루려면 더 강력한 무기가 필요한 법. 황금세대와 호흡을 맞추며 약점을 커버할 와일드카드로 누가 적합할까?
김학범을 ‘월드 타짜’로 만들 와일드카드는?
“지난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땄다. 그 기록을 깨고 싶다.” 김학범 감독은 만족을 모르는 무서운 사람이다.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챔피언십 우승컵을 들어 올리자마자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동메달 이상을 목표로 삼겠다고 말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무대 수준은 다를지라도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는 것은 월드컵 16강에 오르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기대는 된다. 감독이 김학범이기 때문이다. 그가 세계 최고 명장이라는 게 아니다. 대신 그는 단기전이라는 도박판에서 기적을 만드는 ‘타짜’다. ‘2018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앞서 와일드카드로 손흥민, 황의조, 조현우를 선택하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제자인 황의조를 선택한 게 “절대 인맥 축구는 아니다”라는 해명 기자회견까지 해야 했다. 공격수 두 명 뽑은 게 실책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결국 금메달을 따며 비난을 찬사로 바꿨다. 이번 AFC U-23 챔피언십에서도 골키퍼를 뺀 전원을 기용하고, 에이스를 조커로 쓰는 ‘도박’ 끝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는 단기전에서 성적을 내는 법을 확실히 아는 지도자다.
다음 판은 판돈도 크고 상대 수준도 엄청난 무대. 올림픽은 최종 엔트리 숫자도 18명에 불과하다. 다행히 김 감독은 조커 3장을 쓸 수 있다. 우승컵을 함께 들어 올린 선수들을 제외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경기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24세 이상 선수를 선발하는 것도 난제다. 올림픽 대표팀이 가장 취약한 부분을 보완하고 승리를 가져올 가능성도 늘려야 한다. 말은 쉽지만 정말 ‘미션 임파서블’이다. 김 감독이 우승컵을 들고 귀국하며 한 인터뷰에서 “대한민국 선수 모두가 와일드카드 대상자”라고 한 건 농담이 아니다. 김 감독의 속은 다 알 수 없어도 마음을 어느 정도 헤아려볼 수는 있다. 아마 키가 크고 발도 느리지 않으며 경험까지 두루 갖춘 센터백을 가장 먼저 찾고 있지 않을까? 아시안게임에서는 공격적인 경기를 했지만, 한국이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상대를 몰아붙이며 이기기는 어렵다.
김 감독은 이번 U-23 챔피언십에서 정태욱, 이상민, 김재우를 중앙수비수로 썼다. 이들은 능력이 좋은 유망주지만 실력과 경험에서 아쉬움이 있다. 리더 역할을 할 중앙 수비수가 필요하다.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울산 현대로 돌아온 정승현이 가장 눈에 뛴다. 정승현은 공중전과 육탄전에 모두 능한 국가대표급 수비수다. 수비형 미드필더로도 출전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이유로 A대표팀에서 활약하는 권경원(상주 상무)과 박지수(광저우 헝다)도 강력한 후보다. 김 감독은 유럽과 남미 선수들이 구사하는 색다른 크로스를 막으며 후배들의 뒷공간도 책임져줄 든든한 중앙수비수가 누구인지 따져보고 있을 것이다. 김감독이 중앙수비를 와일드카드로 선발하고도 불안감을 느낀다면 골키퍼를 쓸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는 이미 아시안게임에서 조현우를 쓰면서 효과를 톡톡히 봤다. 송범근은 국가대표에 선발될 실력을 지녔지만 경험이 아쉽다.
J리그 콘사도레 삿포로에서 활약하는 구성윤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구성윤은 김승규와 조현우에 가장 근접한 실력과 경험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 조커는 경기의 마침표를 찍어줄 공격수. 수비적인 경기를 하다가도 역습 한 방으로 골을 넣어줄 공격수를 선발할 가능성이 99.8%다.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골을 넣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이동경, 오세훈, 이동준, 조규성은 능력이 있지만 확실한 한 방을 해주기엔 덜 여물었다. 한 끗으로 땡을 잡는 게 타짜다.
김 감독은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한 권창훈(프라이부르크)을 주시하고 있다. 권창훈은 ‘2018 러시아 월드컵’ 직전에 부상당하며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 모두 결장했다. 권창훈은 과감한 돌파와 슈팅이 장점이다. 후배들이 넘겨준 공을 권창훈이 넣는 그림은 꽤 현실성이 있다. 권창훈이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내면 후배들도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미드필더 선발 가능성은 반반이다. 중원은 여러모로 미묘한 곳이다.
일단 이강인(발렌시아)을 선발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강인은 김학범 감독이 바라는 효율적인 경기를 할 수 있는 키플레이어다. 발이 빠르지 않고 수비력도 좋은 편은 아니지만 왼발 킥 하나로 흐름을 바꾸는 재주가 있다. 이강인 발밑으로 공이 들어가면 앞에 있는 공격수들이 지닌 능력은 최소 15% 이상 증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프리킥과 코너킥 능력은 A대표팀에서도 최상급이다. 이강인을 데려올 수 있다면, 김 감독은 공격과 수비에 와일드카드를 집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다만, 그렇지 못하다면 드리블 돌파가 좋은 한승규(서울)를 와일드카드로 쓰거나, 김학범호와 큰 인연이 없었던 백승호(다름슈타트) 선발을 고려할 수도 있다. 그도 아니면 중원을 수비적인 성향을 지닌 선수로 채우고 좀 더 단순하지만 효율적인 축구를 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올림픽 대표팀에 갈 수 있는 연령대 선수들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낄 가능성이 크다.
골키퍼 2명과 와일드카드 3명을 제외하면 필드 플레이어는 13명(혹은 14명)밖에 올림픽에 갈 수 없다. 출전권을 따고도 올림픽에 나가지 못하는 선수가 많을 수밖에. 와일드카드가 실패하면 그 상처를 봉합하는 게 아니라 덧낼 가능성도 있다. 김 감독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이유다. 그래도 너무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동메달을 따면 더욱 좋겠지만, 타짜가 세계적인 꾼들과 벌이는 대결 자체도 재미있으니. 김 감독은 전국구 타짜를 넘어 세계적인 타짜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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