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의 오스카 수상은 한국 영화 탄생 101년을 맞는 해에 일어난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아카데미 어워드는 미국의 시대정신을 대표해왔던 시상식이자 미디어 플랫폼의 역할을 해왔다. 일각에서는 <기생충>의 수상 레이스를 보고 할리우드에서 펼쳐지고 있는 다양성 운동을 거론하기도 한다. 어떤 이유든 갖다 붙일 수는 있다. 누구도 상상 못한 획기적인 사건이니까. <기생충>으로 인해 달라지고 있는 할리우드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생충>은 외국어 영화에 대한 미국인의 가치관이 달라진 계기이자, 할리우드 영화 산업 변화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인터내셔널 산업으로 변화하는 아카데미
<기생충>은 한국 영화가 할리우드와 일군 ‘상징적인’ 역사다. 무엇보다, 진행형의 역사다. ‘계획에 없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과 국제영화상과 각본상의 수상 효과는 ‘참으로 시의적절하’게 미국 박스오피스 수치로 나타났다.
아카데미 시상식 당일 <기생충>의 박스오피스 순위는 12위였다. 오스카 4관왕 ‘실전의 기세’를 몰아 그다음 날인 2월 10일에는 4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박스오피스 10위권 영화들의 스크린 수가 2천에서 4천 개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리스펙트’! <기생충>은 1천60개로 놀라운 상승률을 보였다.
이 글을 쓰는 2월 둘째 주 주말부터 2천 플러스 알파로 스크린 수가 늘어난다고 하니, <기생충>이 미국 시장에서 벌어들일 수익은… ‘Do you know what I mean?’ 할리우드 입장에서도 <기생충>은 미국 시장의 변화를 견인할 만한 기념비적인 영화다. 비영어권 작품에 대해서는 ‘외국어영화상’으로 ‘선’을 가르고 (올해부터 국제영화상으로 바뀌었다) 시상과 후보의 기준을 ‘그냥 심플하’게 미국 백인 남성의 가치와 동일시했던 아카데미의 그간의 보수적인 관행을 깨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이에 관해서는 반지하에 넘치는 빗물처럼 많은 분석이 있으니 언급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아카데미의 변화와 맞물려 할리우드 또한 <기생충>을 이례적인 케이스로 소비하지 않으려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우선, 자막이 있다는 이유로 비영어권 영화를 향한 미국 관객의 외면을 ‘다리미로 쫙쫙 펴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의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소감에 화답하듯 미국의 문화 웹진 ‘<메리 수( The Mary Sue)>’는 아카데미 다음 날 <기생충> 스틸과 함께 ‘자막은 위대하다.’ ‘단순히 외국 영화만을 위한 게 아니다’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자막 보기 힘들다고? 더빙이 낫다고? 틀렸다’로 시작하는 칼럼은 자막으로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역설한다. ‘더빙은 성대모사를 하듯 배우의 연기를 지우는 행위다. 자막은 배우의 연기뿐 아니라 영화를 온전히 이해하게 한다.’ 더빙으로 영화를 보게 될 경우, 배우가 실제로 연기한 대사의 뉘앙스를 살릴 수 없어 자막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이 칼럼의 주장이다.
자막의 필요성을 역설한 칼럼이 미국에서 나왔다는 것, 이제 미국인이 ‘일종의 뭐랄까, 믿음의 벨트?’ 자막 달린 작품에 대한 거부감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아시아 영화라고 해서 이안 감독과 액션물만 있는 건 아니더라’ 하는 아시아 영화를 향한 편견을 깰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역대 북미 비영어권 영화 흥행 10위권에 올라 있는 아시아 영화는 1위 <와호장룡>, 3위 <영웅>, 7위 <무인 곽원갑> 중화권의 무협 영화 일색이다(박스오피스 모조 참조).
액션 비중이 커 상대적으로 자막을 덜 봐도 되는 무협 영화는 미국 관객에게 아시아 영화가 어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였다. 지상의 코미디로 시작해 반지하의 스릴러를 거쳐 지하의 비극으로 끝맺음되는 <기생충>의 아카데미 쾌거는 ‘그 검은 상자를 저와 함께 열어보시겠어요?’ 액션물 외에 다양한 아시아 영화, 그중 한국 영화를 소개하는 영미 언론의 보도로 이어졌다. <가디언>은 ‘한국 영화가 세계 최고인 이유: 재밌고 정치적이고 폭력적’이라는 기사를 통해 박찬욱, 이창동, 강제규, 연상호, 나홍진 감독 등의 영화를 조망했고, ‘한국 영화의 모던 클래식 순위’로 1위부터 20위까지 주목해야 할 한국 영화를 순위로 매겨 소개했다.
<기생충>이 불러일으킨 한국 영화에 대한 관심은 감독과 영화에만 한정하지 않아서 주요 영화에 참여했던 스태프에 대한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기생충>의 공동 각본가는 어떻게 아카데미 후보에 올랐나’로 한진원 작가를, <인디와이어>는 ‘봉준호와 <기생충> 미술팀은 어떻게 올해의 세트를 만들었나’로 이하준 미술감독을 주목했다.
<인디와이어>는 지난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 요르고스 란티모스(<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등이 <기생충>의 저택 세트를 보고 진짜 집으로 알았다며 감탄했다는 반응을 전했다. 이들 감독이 할리우드에서 활동하는 것을 고려하면 <기생충>의 주요 스태프가 할리우드에서 활동할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상하게 한다.
<BBC 한국어판>은 ‘아카데미 작품상 <기생충> 아시아 영화에 새 길을 열다’ 기사에서 더 많은 아시아 영화인을 아카데미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예측했다. <기생충>의 2020년 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은 얼마나 많은 아시아 영화와 영화인의 아카데미 진출을 견인할까. 아카데미가 <기생충>을 계기로 좀 더 인터내셔널한 산업으로 변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