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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말이야

늦은 만큼 더 빨리 뛰려고 했다. 연극에서 영화로, 방송으로 영역을 옮긴 조성하의 마음이었다. 그렇게 10여 년이 지났다. 이제 누구나 조성하를 안다. 그 순간, 그는 조금 다른 가치에 집중하기로 했다.

UpdatedOn March 1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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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치코트는 브룩스 브라더스, 터틀넥 니트 톱은 맨온더분 제품.

트렌치코트는 브룩스 브라더스, 터틀넥 니트 톱은 맨온더분 제품.

오랜만에 하는 촬영이라고 들었다. 원래 사진 촬영을 잘 안 하나?
연극 하다가 건너온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 게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직은 한 장에 담기는 모습이 어떻게 나올지 감이 오진 않는다. 오늘, 빨리 끝나서 다행이다, 하하.

지금처럼 작품과 작품 사이 공백이 배우에게는 휴식기이자 자유 시간이겠다.
이제는 한 작품이 끝나면 쉬고 싶기도 하다. 난 늦게 데뷔했다. 공백기가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일하고 싶은 욕망이 굉장히 컸다. 쉬지 않고 겹쳐서 일했다. 중독자처럼 일해오다 보니 어느 순간 다시 한번 정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더라. 굶다가 밥을 보면 허겁지겁 먹게 되잖나. 예전에는 급체할 정도로 밥 먹는 시간을 보냈다면 지금은 한 끼라도 제대로 먹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어떻게 가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 시점이다.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다는 욕구가 강해졌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나?
나이가 들어간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이가 50 전후가 되면서 나를 돌아봐야 할 시간이 온 거 같다. 40대까지만 해도 난 20, 30대처럼 달릴 수 있는 에너지가 가득한 사람이라고 여기며 무조건 뛰기만 했다. 이젠 20, 30대 젊은 배우들과 똑같이 달리려는 건 과한 용기다. 이제는 전체를 바라보고 뛰어야 하는, 어떻게 보면 즐기면서 걸어도 되는 시기가 아닐까. 하나를 하더라도 차분하게 만끽하면서 작업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30대의 허기가 쉬지 않고 달려 나간 원동력이었겠다.
불러만 주면 큰 역할, 작은 역할 가리지 않고 막 했으니까.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지금도 많은 분이 불러주시고 좋은 작품을 청해주시는 경우가 많아서 감사하긴 한데, 이젠 좀 더 내실 있게 하고 싶다. 나이를 먹어도 공부하면서 새로운 배우가 되어야겠다고 꾸준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새롭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고. 오랜만에 사진 작업을 하는 이 순간에도 내가 보지 못한 디테일을 찾을 수 있으니까. 좋은 시간이었다.

열심히 달렸기 때문에 돌아볼 마음도 생겼을 거다.
너무 많은 걸 몰아서 하다 보니 안타까울 때가 있다. 하면서도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 좀 더 선별해서 질적으로 상승할 수 있는 흐름을 만들어야 하는데 때로 정에 이끌려서 할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약간씩 소모된다는 느낌도 들었다. 제일 안타까운 점이다. 사람이 결국 혼자 살아갈 수 없지만, 주변을 섭섭하지 않게 하면서도 내가 잘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되더라. 거절을 잘하는 것도 기술이라고 하잖나. 연극배우로만 살다 보니까 거래 같은 걸 해본 적이 없다. 거절의 기술이 부족했다. 아니다 싶을 때 그냥 끌려가기보다는 함께 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고 나서 시작하는 기술이 이젠 좀 생기지 않았을까. 조금 성장했다.

방향성을 고민한 시기를 맞아 어떤 그림을 그리려고 하나?
큰 그림은 없다. 다만 질적으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작품을 만나고 싶다. 그동안 못 본 다른 색이나 모양을 새롭게 한 계단씩 진열하고 싶다. 조성하라는 배우가 나이를 먹지만 계속 성장하는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배우로서 소박한 꿈이다.

그러기 위해서 어떤 방식으로 노력하려 하나?
내 나이대 배우를 보면 베테랑이 많다. 다 잘하고 최고의 실력자로 인정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안주하기보다는 새롭게 자극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한다. 나도 자극하고 다른 배우에게 자극받기도 하면서 서로 성장하니까. 그런 부분을 염두에 두고 다양하게 접근하려고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한 작품에서 같이 연기하는 배우들 나이 차이가 점점 벌어진다. 예전에는 열 살 차이가 이제는 스무 살이 됐다. 그런 차이에서 오는 변화를 어떻게 느끼나?
많은 작품에 참여해 많은 배우를 만났다. 그런데도 그동안 감독, 작가, 배우를 반복해서 만난 경우가 별로 없다. 계속 새로운 작가, 새로운 감독, 새로운 배우를 만나왔다. 어느 날 돌아보니 난 너무 인간관계에 깊이가 없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하하. 10년, 20년 같이한 사단 같은 게 없다. 10여 년이 흘렀는데도 늘 신인 배우 같은 마음이다.

 

“끌려가기보다는 함께 뛸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고 나서
시작하는 기술이 이젠 좀 생기지 않았을까.”

 

신인 같은 마음이 장점이면서 단점일 수도 있다.
늘 새롭게 호흡을 맞추는 점은 감사한 일이다. 익숙해지면 노련함은 있겠지만, 안주하는 위험성도 있다. 스스로 최면에 걸리기 쉬운 위치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새로 호흡 맞추는 상황이 나한테는 조금 더 열심히 하라는 뜻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방송, 영화에 데뷔한 지 고작 10여 년 지났을 뿐이다. 이제 겨우 이 세계를 아는 수준이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주변에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할 연차라고 생각한다. 배우로서 기본 출발선에 섰다고 할까. 이제부터 제대로 해볼 수 있는 위치다. 신인 배우라는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만, 그런 점에서 나 스스로 다잡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후배들이 들으면 굉장히 불편해하지만, 하하.

조성하라는 배우를 칭할 때 ‘꽃중년’이란 단어를 많이 쓰더라.
운이 좋은 경우다. 방송 데뷔할 때 <황진이>에서 하지원 아버지로 나왔다. 그때 홍보팀에서 대한민국에서 한 번도 없던 ‘꽃중년’이란 수식어를 만들어서 붙여줬다. 내게서 그 꽃중년이란 말이 시작된 거다. 상표 등록을 해야 하는데, 하하.

그때 이후로 여전히 들리는 걸 보면 잘 관리해왔다.
그 수식어를 달고 출발한 건 참 감사한 일이다. 어디서 꽃중년이라고 불러주면 감사하다. 하지만 꽃중년이라는 수식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하진 못했다. 그 단어에 어울리는 멋진 역할만 맡아야 했는데, 악역도 많이 하고 별별 역할을 맡았다.

오히려 잘 이어왔다고 생각한다. 악역이더라도 중년의 멋을 풍겼다.
긍정정으로 봐주시니 감사장이라도, 하하. 얼굴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염두에 두고 캐스팅하는 듯하다. 무게감 같은 여러 가지 장점을 보여줄 역할을 제안해주셔서 감사하다. 실제는 편하고 털털하고 많이 웃고 수다 좋아하고, 하하. 그야말로 공부해서 변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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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색 수트는 코스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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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와 이너 톱은 모두 자라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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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색 셔츠는 에스.티. 듀퐁 파리, 안경은 키블리 제품.

그 풍기는 느낌이 다 노력한 결과였단 말인가.
방송, 영화에 출연하기 전에 오디션을 보러 가면 악역을 많이 제안받았다.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었다. 난 악역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선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으니까. 그런데 왜 나한테 악역을 주지? 난 악역 맡을 사람이 아닌데? 이런 생각에 부담스럽고 연기하기 싫어졌다. 그러니 일이 안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 왜 사람들이 내게 악역을 줄까, 생각하면서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내게 그런 이미지가 있나? 봤는데 나 스스로 품평을 못 하겠더라. 그 이후로 만나는 사람마다 앙케트를 하기 시작했다.

앙케트?
나를 처음 봤을 때 이미지부터, 나와 만나면서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 여러 가지 조항을 만들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에 대해 물어봤다. 겉으로 풍기는 외면부터 만나면서 느껴지는 내면까지. 그러면서 내가 대중 매체로 진출했을 때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만들어야겠다고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내 자료를 만들어서 오디션 때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내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역할을 맡기 시작했고, 영화에서 방송 쪽으로도 넘어가게 됐다. 방송에서는 내 착한 면을 봐줘서, 착한 쪽으로 보여줄 수 있는 최대치가 뭔지 다시 공부했다.

제대로 만들었고, 그 전략이 성공했다.
난 남보다 잘난 게 없다.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아주 잘생긴 것도 아니고, 또 반대로 아주 못생긴 것도 아니고. 오디션 보러 다닐 때 이런 말을 제일 많이 들었다. 너한테 무슨 역할을 줘야 하나. 어중간하다는 얘기다. 너무 평범하다는 거다. 그런데 나중에 열심히 해서 배역을 따기 시작하니까 이렇게 말이 바뀌었다. 넌 무슨 역할을 해도 돼. 악역도, 선한 역도, 부자도, 거지도 어울려서 얼굴이 진짜 좋다고, 하하. 생긴 걸로 좌절해서 도전을 미뤘다면 이런 말을 못 들었을 거 아닌가.

곧 방영할 드라마 <메모리스트>에 출연한다. 그 드라마에서도 새롭게 할 부분을 찾아냈나?
경찰 2인자 역할이다. 위치가 위치니만큼 권력자인데 다른 면모를 찾으려고 노력한다. 이 사람은 뭐다, 규정 짓는 캐릭터는 재미없다. 계속 이 인물에 궁금증이 생길 수 있도록 많이 공부하고 있다. 연기가 하루아침에 확 바뀌진 않지만, 계속 새로움을 찾는 과정을 통해 조성하가 조금 달라진 거 같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아스달 연대기> 이후에 살도 9kg 뺐고, 앞으로 더 빼고 싶다. 외적인 부분부터 내적인 부분, 약간의 표현법도 달라졌다는 느낌을 주고 싶다.

<아레나>는 멋진 남자를 다룬다. 멋진 남자가 생각하는 멋진 남자란?
내 또래에서 멋진 남자라면…. 나도 그런 고민을 많이 한다. 어떻게 늙어갈 것인가. 나이 먹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제일 중요한 건, 어른 말씀대로,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 하하. 실천하려고 노력하는데, 난 지갑은 열지만 말도 많이 하는 거 같다. 나이 먹을수록 경청이 큰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경청하기 전 단계로 바라보려고 한다. 듣는 것 이전에 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봐야 하잖나. 그동안 나 살기 바빠서, 내 걸 해내기 바빠서 전력으로 질주했다면 이제는 눈가리개를 풀고 주변을 좀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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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CREDIT INFO

CONTRIBUTING EDITOR 김종훈
PHOTOGRAPHY 레스
STYLIST 배보영
HAIR 한수화(제니하우스)
MAKE-UP 조혜민(제니하우스)

2020년 0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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