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말 김윤석(한국미술경영연구소 소장) Editor 이민정
‘베이징의 소호’라 불리는 798거리는 원래 군수 산업 기지였다. 이곳에서 중국의 첫 원자탄 부품이 탄생했고 인공위성을 연구했지만(798이라는 숫자는 이곳에 있던 한 공장의 번호), 5년 전부터 이 동네 시멘트 벽은 아티스트의 스케치북이 되었고 ‘팩토리’라는 간판은 어느 순간 ‘갤러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어버렸다. 이 거리에 똬리를 튼 갤러리 숫자만 무려 2백30여 개. 상하이 쑤저우허 인근의 신텐디, 광저우의 예술 거리 등도 조금씩 꿈틀대지만 크기로 보나 명성으로 보나 798 앞에서는 무릎을 꿇는다. 뉴욕의 돈 없는 예술가들이 맨해튼의 비싼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윌리엄스버그나 덤보(Dumbo)에 둥지를 튼 것에 비해, 나랏일하는 어르신들이 진두지휘했다는 게 다르지만 어쨌거나 반가운 건 전 세계 미술계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이 거리에 한국 미술이 대거 칩거 중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베이징에는 아라리오 갤러리를 비롯해 이음, 표화랑, 공화랑, 문갤러리가 포진해 있고 최근 아트사이드와 pkm 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금산갤러리도 뒤늦게 합세했다. 오픈과 동시에 한국 작가들의 전시회가 잇달아 열리고 있는데 회화를 중심으로 전시하는 중국 화랑에 비해 한국 갤러리는 비디오나 설치 작품으로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베이징 아트사이드는 설치 조각가 박선기 씨의 숯을 활용한 작품으로 오픈전을 준비했고, pkm 갤러리 베이징은 플라잉시티, 함진 등 14명의 젊은 작가들이 참여하는 <패스트 브레이크> 전을 시작으로 오픈 소식을 알렸다. 아라리오 베이징 갤러리는 한국에서도 유명세를 치른 권오상과 김한나 작가를 선두로 전시를 준비 중이다. 문갤러리는 지난해 이길우 작품으로, 표화랑은 이용덕 작품으로 중국 미술계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전통 화법을 현대화한 중견 작가 이길우의 작품들이 상당수 비싼 가격에 팔렸다는 소식도 들린다. 게다가 이들의 작품으로 수첩, 가방, 그릇, 티셔츠 등의 아트 상품을 만들어 판매한다고 하니, 중국인들이 한국 작가를 ‘블루칩’으로 부르는 건 과장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들은 도대체 누가 사들이는 걸까. “중국에 지사를 낸 다국적 기업과 6천만 명으로 추산되는 중국 컬렉터들이 주 구매자입니다. 얼마 전 인민회의에서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법안이 통과되면서 신흥 부호들이 그림 투자에 목숨을 걸기 시작했는데, 유태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부자가 가장 많은 세력인 화교들의 경쟁력은 상상을 초월하지요. 경매 시장에서 작품 하나 가격이 조 단위를 넘어서기도 하니까요. 가치에 비해 작품 값이 턱없이 높다거나 호황에 그대로 묻어가는 작가들도 많지만 내년 북경 올림픽을 치르고 나면 거품이 빠지면서 안정되지 않을까요?” 한국미술경영연구소 김윤석 소장의 얘기다. 여기저기서 돈으로 뒤범벅된 중국 미술계를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다. 하지만 그림이 마음의 울림을 주는 오브제가 되든, 8학군 아파트가 되든 무슨 상관인가. 798거리에 서 있는 한국 갤러리가 ‘브랜드’가 된다는 사실은 가뭄의 단비처럼 기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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