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골’, 이 고리타분한 이미지의 수식어가 이만큼 핫한 적이 있을까. 요즘 애들에게는 ‘리베카의 양준일’보다 ‘탑골 GD(지드래곤)’로 잘 알려진, 최근 우리 곁으로 ‘발굴’되어 돌아온 가수 양준일만큼이나 유튜브에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숨은 보석이 많다. 댄스 그룹 룰라, 디바, 걸프렌즈의 교집합인 가수 채리나도 그 보석 중 하나다. ‘원조 센 언니’ 채리나. 인기도 누릴 만큼 누렸고 연예계를 은퇴한 것도 아닌데 새롭게 알 부분이 있느냐고. 그렇다면 이 무대를 한 번 보자. 혼성 그룹 룰라가 1997년 선보인 5집 타이틀 곡 ‘연인’의 무대다. 5집은 룰라의 메인 보컬이던 김지현이 전격 그룹 탈퇴를 선언한 이후 발표한 처음이자 마지막 앨범이다. 김지현이 빠진 뒤 홍일점으로 노래와 춤을 소화하는 채리나를 집중해서 살펴보자. 당시 ‘김지현 없는 룰라=망했다’라는 세간의 여론을 말끔히 씻어내고 <가요톱텐>에서 1위를 함과 동시에 김지현 때문에 미처 몰랐던 채리나의 탄탄한 가창력과 매력적인 음색을 재발굴할 수 있었다. 최근 MBC <언니네 쌀롱>에 김지현과 함께 출연한 채리나는 ‘탑골 선미’에 도전해보겠다면서 한참 후배인 가수 선미가 무대에서 선보인 의상을 입어보고는 “선미한테 미안하다”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미안할 게 뭐 있는가. 격렬한 춤을 추면서도 흔들림 없이 라이브를 소화하는 채리나의 무대를 보면 오히려 선미가 ‘요즘 채리나’라는 소리를 들어야 맞는지도 모르겠다. 노래·춤·랩 다 되고 다들 섹시·청순 콘셉트 들고 나올 때 혼자 걸크러시 콘셉트를 완벽히 소화한 원조 사기캐, 그게 바로 채리나다. 그동안 너무 음악 방송 대기실의 센 언니 이미지에 갇혀 그녀의 진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 건 아닐까. 요즘도 이렇게 스탯 만렙인 사기캐, 만능캐는 흔치 않다. WORDS 구희언(<동아일보> 출판국 기자)
시작부터 그녀들의 등장은 뜨겁다. 언제 어디서 왜 모이는지 모르겠지만 다들 만나자마자 결의에 찬 모습으로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한다. 마치 <섹스 앤 더 시티>의 오프닝을 보는 듯하다. 그녀들의 매력은 이뿐만이 아니다. 파워풀한 음악적 재능을 갖춘 꽤나 매력적인 현대 여성들이다. 눈치 챘겠지만 이것은 단순한 영상이 아니다. 1980년대 한국의 성룡이라 불렸던 배우이자 가수 전영록 주연의 영화 <돌아이>다. 제목부터 화려하지 않은가? 돌아이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 주인공의 액션 영화 인트로지만 이 영상에서는 돌아이를 주목하지 않는다. 그가 매니징하는 여성 밴드의 멤버들을 주목한다. 1980년대는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향으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던 시기였고 트렌드를 이끄는 여피족의 영향이 반영된 한국 여성의 패션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모든 것을 감추려 했던 전과는 달리 과장된 실루엣의 파워 수트, 화려함의 끝을 보여주는 볼드한 액세서리, 그리고 과감한 컬러 매칭까지, 레트로를 넘어 뉴트로 트렌드까지 넘어온 현재 세대에게는 어색하지 않은 모습을 가감없이 드러낸다. 1980년대 영화이기에 전반적인 연출이 다소 촌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으나 그녀들의 패션만은 이 시대 여자 아이돌을 방불케 하는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시각적으로만 봤을 땐 JTBC 에 등장해 소위 말하는 ‘탑골 공원 트렌드’를 이끌어낸 가수 양준일만큼 인상적이다. 이 영화는 시즌6까지 제작된 꽤나 흥행을 이뤘던 전영록의 ‘액션’ 영화다. 분명 얘기하지만 전영록의 ‘액션’보다는 그녀들의 ‘패션’에 주목하길 바란다. WORDS 류용현(스타일리스트)
1990년생이 미처 <수학의 정석>을 펼치기도 전에 지갑을 탈탈 털어간 물건이 있다. 바로 미니카다. 당시 방송사는 단합이라도 한 듯 <달려라 부메랑> <우리는 챔피언> <스피드왕 번개> 등 미니카를 주제로 한 만화영화를 방영했다. 덕분에 동네 공터, 문구점은 아이스하키 채와 롤러블레이드를 신은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그 모습이 모터쇼를 방불케 했다. 각종 튜닝을 한 미니카를 꺼낼 때마다 “우와!” 탄성이 터졌으며 여기저기서 “한 번 만져봐도 돼?” 소리가 들렸다(좋은 차를 가진 놈들이 대우받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더러운 세상!). 그때는 어떤 모터를 장착했는지, 그래서 얼마나 빠른지가 중요했다. 처음엔 블랙 모터 하나면 충분했다. 동네를 휘어잡을 수도 있었다. 그 후에 슈퍼 블랙 모터, 슈퍼 울트라 블랙 모터, 골드 모터 등이 등장했다. 1만원부터 비싼 건 10만원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색깔만 달랐지 큰 차이도 없었던 것 같다. 차라리 그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살걸. 그래 봤자 동네 문방구 앞 트랙에서 굴리는 게 전부였는데. 우리는 손바닥만 한 미니카에 인생을 걸 만큼 순수했다. 공부를 못해도 상관없었다. 축구를 못해도 분위기 좋은 분식집을 몰라도 강남 8학군에 살지 않아도 좋은 미니카 한 대만 있으면 스타가 될 수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준중형차 한 대 뽑기도 버겁다. 타이어를 갈더라도 신발보다 싼 놈을 찾는다. 60개월 할부 노예 계약에 도장을 찍고 독일차 정도는 굴려야 “오, 한 번 타봐도 돼?” 소리를 들을 수 있다. 1만원에 내 차 한 대 가지고 맘껏 튜닝하던 그 시절이 그립다. 미니카는 힙 문화 그 자체였다. 동네 문구점 좀 다닌다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미니카를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요즘 출시된 콘셉트카를 봐도 부메랑만 한 디자인이 거의 없더라. WORDS 박한빛누리(프리랜스 에디터)
이 영상을 보고 춤추기 시작하면 도무지 멈출 수 없다. 신난다기보다 제멋대로, 맘대로 흔드는 사람들의 춤사위를 보면 음악에 맞춰 어떻게든 흔들어도 되겠구나, 안심된다. 팔다리를 저렇게 흔드는 것도 춤이라고 할 수 있나? 두 줄로 늘어선 멋쟁이들이 커플을 이루어 독특한 댄스를 선보인다. 주체할 수 없는 흥. 댄서들은 저마다의 춤이 있고, 그것대로 자연스럽다. 원제목은 <Soul Train>, 1971년부터 35년간 1천1백17편의 에피소드가 제작된 세계 최장수 댄스 쇼 프로그램이다. 영상은 그중에서도 1982년부터 1987년 사이 방영분 중 최고로 손꼽히는 멋진 장면만 모아 편집했다. 1980년대엔 한국에서도 주한미군 방송 AFKN을 통해 소개된 바 있으니, 익숙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간단하다. 진행자의 시작 멘트와 함께 신나는 음악이 흐르고, 둘씩 짝지은 댄서들의 생경한 춤판이 이어진다. 음악 장르는 소울, 팝, 힙합, 재즈 등 신나기만 하면 어떤 장르든 구분하지 않지만 주된 음악은 디스코. <Soul Train>은 1970년대 미국을 강타한 디스코 열풍이 고스란히 반영된 프로그램이기도 하다. 디스코가 단순히 음악 장르가 아니라 걸출한 문화이자 라이프스타일임을 보여주는 셈. 덕분에 요즘 힙스터들 사이에선 반드시 알아야 할 영상으로 꼽히고, 몇몇 국내 클럽에서 <Soul Train>을 모티브로 한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당시 미국 경제 호황기의 들뜬 정서가 사람들을 춤추게 한 걸까. ‘영혼을 싣고 달리는 열차’는 35년간 쉬지 않고 달렸고, 그들의 여정은 전설로 남았다. 삶에 지친 사람에게, 본격적으로 흔들고 싶은 사람에게, 맘을 환기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 영상을 추천한다. WORDS 양보연(<데이즈드 코리아> 피처 에디터)
이것은 프로레슬링이 아니다. 호랑이 가면을 쓴 형님이 맨몸으로 펼쳐 보이시는 예술이다. 30년 전 프로레슬링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무브먼트다. ‘The Best of Tiger Mask’는 80년대 초대 타이거 마스크의 활약상을 모아놓은 영상이다. 타이거 마스크 기술 모음이라고 하면 적절한 설명이 되겠다. 참고로 타이거 마스크는 60년대 만화 <타이거 마스크>의 주인공을 코스플레이한 선수다. 만화 보고 따라 한 셈. 사연이야 어쨌든 레슬링 실력은 만화보다 더 만화 같다. 중력을 다스리는 레슬러랄까. 로프 반동을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그만의 라운딩 보디프레스는 전위적이기까지 하다. 프로레슬링이 액션을 기반으로 한 연극이라면, 타이거 마스크의 공연은 ‘태양의 서커스’ 정도는 될 거다. 영상은 시작부터 심장을 쫄깃하게 만든다. 1980년대 전대물에 나올 법한 드라마틱한 음악을 배경으로 황금색 망토를 걸친 타이거 마스크가 링으로 달려온다. 경박과 긴박 사이의 배경음악이 참 힙하다. 타이거 마스크는 단숨에 링 포스트에 올라 팔을 들며 승리의 자신감을 내비치는데, 이때 심장이 두근거린다면 이미 반한 거다. 그는 예상 불가능한 스탭으로 링을 뛰어다니며 상대의 공격 시점을 빼앗는데, 혹여나 잡기에 걸리더라도 문제없다. 민첩하게 몸을 회전시켜 상대로부터 벗어나니까. 그리고 이어지는 연타. 이것이 가능한가 싶은 액션들은 집에서도 따라 할 엄두가 안 난다. 화려한 실력 외에 타이거 마스크를 완성시키는 건 비장함이다. 요즘은 보기 드문 성격이다. 프로레슬링에서도, 영화나 TV에서도 그런 캐릭터가 드물다. 비장미가 사라진 시대 타이거 마스크의 오래된 몸짓은 링 위의 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타이거 마스크의 상대 공격을 이용한 기술, 예측 불가능한 반격, 화려한 하이플라잉 액션을 보노라면 타이거 마스크가 사고 싶을 거다. 그래서 사봤다. WORDS 조진혁(<아레나> 피처 에디터)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그리고 말투는 스타일을 완성한다. 저 세상 힙으로 차려입고 필름 재질의 감성 사진을 SNS에 아무리 포스팅해도, 끝내 멋을 완성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말투 때문이다. 어린아이처럼 귀엽게 징징대거나, 말끝을 뭉개서 자신없어 보이거나. 본격적으로 2000년대에 접어들기 전까지, 서울 사투리라는 게 있었다. 주로 끝을 올려서 말하고, 당당한 말투가 특징. 몇 년 전 화제가 됐던 90년대 패션 인터뷰 중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조크든요”도 당시의 서울 힙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자료다. 90년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귀염뽀짝 전지현의 셀프 카메라도 시종일관 서울 사투리를 감상할 수 있다. “저는 지금 커피를 마시려고 해요”가 요즘 문장이라면 서울 사투리는 “제가요, 지금요, 커피를 마시려고 하거든요?”라는 식으로 짧게 분절하며 말끝을 올린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다. ‘요즘 것들’이 본인의 스타일과 상관없이 상냥하거나 귀여운 말투를 고수하는 것과 달리, 예전 서울 젊은이는 훨씬 더 깍쟁이 같다.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생각과 기분을 직선적으로 표현한다. 발음이나 어미를 뭉개며 ‘느낌적인 느낌’ ‘나른하고 몽롱한 힙’을 추구하려는 요즘 말투와는 사뭇 다르다. 패션이 돌고 돌면서 ‘뉴트로’가 대세로 자리 잡은 지 꽤 됐건만, 패션과는 전혀 결이 다른 말투가 항상 스타일의 걸림돌이 된다는 생각을 해왔다. ‘서울말의 변천사’는 예전의 힙한 서울 말투를 연구해보고 싶어 파고든 영상이다. 1977년부터 2017년까지 특히 젊은이의 말투를 한눈에 비교해볼 수 있다. 훨씬 더 카랑카랑하고, 또랑또랑한 느낌. 옷을 대충 입었다 하더라도 저런 말투라면 누구도 나를 만만하게 보지 않을 것 같달까. 이런 당당하고 단단한 말투가 당신의 힙을 완성해줄 거다. “레트로 패션만 열심히 볼 게 아니라요, 깍쟁이 서울 말투도 많이 봐주세요. 이렇게 말하면요, 기분이 조크든요.” WORDS 서동현(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서봉수는 경기 내내 나뭇가지처럼 파르르 떨고 있었다. 2인자 꼬리표를 떼어낼 유일한 기회였다. 제1회 응씨배에서 우승하고 광화문 거리에서 퍼레이드를 펼쳤던 조훈현 9단의 모습이 서봉수의 기억에서 잊히지 않았다. 서봉수는 누구보다 승부욕이 강한 선수였다. 조훈현의 저서 <고수의 생각법>에서 서봉수에 대해 묘사한 구절이 있다. “그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아무런 틀도 형식도 없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게릴라 같은 바둑을 구사한다. 일본에서 형식에 얽매인 바둑만 하다 흙탕물 뒤엉켜 싸워보니 짜릿했다. 다른 기사들은 나에게 지는 것에 익숙해졌지만, 서봉수만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조훈현-이창호-이세돌 세 천재만 기억하지만 프로 바둑 기사들은 조훈현이 국수를 차지한 1970년대부터 이창호가 데뷔한 1990년대 초까지를 조훈현과 서봉수의 양강 구도가 이어진 ‘조서시대’라고 말한다. 조훈현과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기사는 서봉수뿐이었으니까. 조훈현에게 가장 많은 패배를 안겨준 인물이기도 했다. 6세 때 바둑에 입문해 일본에서 유학하며 정통 바둑을 구사했던 조훈현과 아버지 어깨너머로 바둑을 배운 서봉수는 경기 스타일에서 성장 과정이 드러난다. 조훈현이 유려하게 놓인 돌의 미학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면, 서봉수에게 바둑은 이겨야 하는 것이었다. 화려하지 않았다. 때때로 처절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몇몇은 진흙탕 싸움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누구는 직설적이고 솔직한 스타일이라고도 말한다. 아직도 후배 기사들은 20여 년 전 서봉수의 경기를 복기한다. 벼랑 끝에서도 거침없이 승부수를 던지며 정신이 혼미한 상대의 대마를 꺾는 모습에서 힙을 배운다. WORDS 이석창(프리랜스 에디터)
드라마에서 하나의 장르가 된 ‘김수현 드라마’는 21세기 들어 점점 영향력이 흐려져, 장르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00년대와 2010년대에도 꾸준히 드라마를 내놓았지만 기대에 못 미쳤다고 봐야 한다. 1인 가구가 트렌드세터로, 시장을 흔드는 손으로 등장하는 시점에 3대는 물론 4대까지 이어지는 대가족이 등장하는 드라마는 모바일 세대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더불어 배우진을 가리키는 ‘김수현 사단’도 더 이상 20대 후계자를 내놓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김수현 드라마가 고리타분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얼마나 오해인가. 요즘은 어린 시절 금지된 80년대, 90년대 드라마를 유튜브로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드라마가 다시 보인다. 가부장제를 충실히 옹호하는 듯했던 작가는 또 그 부조리한 구조를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70년대에는 불륜, 혼전 임신을 다뤘다는 이유로 조기 종영도 당했다. 작가의 드라마에는 비록 조연일지라도 비혼자가 자주 등장했고, 버림받은 여성에게는 “당신, 부숴버릴 거야”라는 명대사와 함께 복수의 칼날을 쥐어주었다. 실제로 작가는 기회를 잃은 배우에게 복귀의 손을 내밀기도 했다. 요는, 김수현 드라마는 단편적으로 말하기엔 복잡했고, 때로 모순되었으며 그 또한 인간 세상을 충실히 닮아 있더라는 것이다. 등을 다시 보라. 그 어떤 드라마보다 몰입하게 될 테니까. “결혼하면 지 여자기만 하면 된다고 딴 남자 눈길 받는 거 싫다고 더듬이도 날개도 잘라 가둬놓고 20년! 화대 안 주는 잠자리 상대! 월급 안 주는 가정부! 게다가 유모! 그렇게 샅샅이 알뜰하게 파 먹고 뜯어 먹고 써먹더니 이제 와서 뭐?”라며 절규하는 김혜자 앞에서는, 먹지도 못하는 소주를 털어 먹은 것처럼 ‘크’도 아니고 ‘캬’도 아닌 소리가 목에서 절로 나온다. 지금은 이런 대사를 쓸 수 있는 작가도, 쓰고 싶어 하는 작가도 없다. 이게 힙이 아니라면 뭔가. WORDS 허윤선(〈얼루어〉 피처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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