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1월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국제전자제품 박람회, CES가 개최된다. 기업들이 주로 참가하던 박람회인데, 올해는 서울시에서 지원 스타트업들을 데리고 서울시장이 참가했다. 서울시는 미래 먹거리, 성장 동력을 스타트업에서 찾고자 하는 눈치다. 서울시 외에도 정·재계 인사들이 대거 박람회에 참가하는 추세다. CES가 정치인의 필수 코스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규제가 많은 국내 스타트업 환경에 숨통이 트이게 될까.
EDITOR 조진혁
CES에서 본 서울시장
정치인이나 기관장이 CES를 찾는 것은 흔한 일이다. 저마다 이유는 있을 게다. 하지만 우리가 ‘어르신들의 방문’에 기대하는 것은 달라지는 세상에 대한 ‘결제 도장’을 갖고 있다는 부분이다. 기술이 세상을 바꾸어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이를 받아들이고 우리 삶에 적용하는 열쇠를 바로 자치단체장, 정치인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CES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단순히 인공지능 기술, 스마트 가전, 자율주행 차량처럼 단편적으로 해석할 수 없다. 이 기술이 바라보는 것은 결국 우리 삶의 변화이고, 그 변화를 위해 기술이 자동차, 집, 더 나아가 도시의 옷을 입게 된다. 사실상 우리 삶의 모든 분야를 기술이라는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집약된 경험의 공간이 바로 CES다. 그래서 장관, 시장 등 기관장을 비롯해 정치인의 CES 행보는 중요하다. 물론 그저 큰 박람회에 다녀갔다는 의미, 혹은 기술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힙’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전시회가 될 수도 있다. CES 자체가 쉽지 않은 박람회일 뿐 아니라 자칫 그 먼 라스베이거스에서 국내 기업의 화려한 업적만 보고 올 수도 있다. 어르신들의 박람회 방문이 마냥 아름답게만 보이지 않는 이유는 이외에도 셀 수 없이 많다.
서울시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을 갖고 라스베이거스를 찾았다. 하나는 서울의 스타트업을 알리기 위해서다. 서울산업진흥원이나 창업진흥센터 등의 이름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이름 아래 적지 않은 스타트업이 라스베이거스에 모였다. 조금은 급하게 모인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탄탄한 스타트업들은 전 세계 창업자들이 기술을 자랑하고 세일즈에 나서는 ‘유레카관’의 한가운데서 꽤 큰 존재감을 보였다. 물론 카이스트, 경기콘텐츠진흥원 등 그동안 CES 유레카관의 터줏대감들도 여전히 눈에 띄는 기술을 선보였다. 하지만 단체장이 움직이는 것은 달랐다. 박원순 시장은 다소 어색한 영어 실력으로 기조 연설을 했고, 전시장에서 직접 서울시의 스마트시티 전략을 소개하면서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다.
또 다른 이유는 스마트시티에 대한 고민으로 보인다. 박원순 시장은 7일 네트워크 파티 형태의 ‘이노베이션 나이트’ 행사를 열고 CES 참석자, 그리고 캐럴 굿맨 라스베이거스 시장을 초대했다. 박원순 시장은 이 자리에서 상대적으로 낙후된 라스베이거스 외곽 지역 개발을 언급하면서 인공지능, 모빌리티, 5G 등의 기술을 통해 도시를 스마트화하는 데 노력을 쏟고, 라스베이거스의 경험도 귀담아듣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CES에서 박원순 시장의 행보는 흠잡을 데 없다. 중요한 것은 이후 서울시의 정책 변화에 있을 것이다. CES에서 단순히 기술을 구경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스마트시티, 그리고 스마트 시정을 강조한 박원순 시장, 그리고 함께 참석한 공무원들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비단 서울시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지원부 등 정부 부처와 여러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기술에서 주도권을 갖는 것이 아니다. 기술이 왜 필요하고, 그것을 어디에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기술의 목표는 ‘갖는 것’이 아니라 ‘활용하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여러 네트워킹 자리에서 공통적으로 언급된 것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이 기술이 우리 도시에, 사회에 어떻게 자리 잡을 수 있느냐는 고민이었다. 당장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이용했을 우버, 리프트 등 승차 공유 서비스만 해도 라스베이거스 현지와 서울 사이의 온도 차는 극심하다. 연결, 데이터, 운영 등 기술 문제를 떠나 사회가 택시를 비롯한 기존 인프라 사이의 갈등을 어떻게 풀어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도시의 인프라에 스마트를 접목하는 것은 오랜 숙제였다. 그 과정에서 데이터 수집, 프라이버시 등 다양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하다. CES 기간 동안 통과된 ‘데이터 3법’ 역시 데이터의 활용과 사생활 보호의 양극화된 고민이 여전히 남아 있다. 사회적 인프라와 서비스의 진화를 위해서는 구성원의 데이터가 필수적이지만 동시에 원치 않는 개인 정보가 너무나도 투명하게 공유되는 데서 오는 부작용도 따져야 한다.
중요한 것은 정책의 방향성이다. 데이터의 공유, 승차 공유 서비스의 확대 등 필요성과 우려 사이에서 뚜렷한 방향성을 세워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한다, 안 한다’가 확실해야 한다. CES를 비롯한 해외 대규모 박람회는 이를 국내와 다른 관점에서 확인하기에 좋은 기회임에 분명하다. 앞으로 기술에 대한 사회적 갈등은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생각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패스트푸드점을 채우고 있는 주문 키오스크는 매장 운영 측면에서도, 이용자 편의성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 기술이 접목되어 매끄럽게 운영되기 시작하면 완벽히 사람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일자리라는 사회적 측면의 갈등이 아주 기본적인 예다. 당장 삼성전자가 ‘인공인간’을 표방하며 전시한 ‘네온’(NEON)만 해도 여러 분야에서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서비스를 대체할 것이다.
기술적으로는 이미 인공지능, 자율주행, 가상현실 등 CES를 수놓았던 다양한 아이디어가 현실화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기술을 고민해온 기업들도 이제는 ‘사회적 합의’를 마지막 과제로 놓고 있다. 이를 효과적으로 풀어내기 위해서는 결국 기술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정책의 전문성이 필요하다. 우리에게 인공지능이, 에어택시가, 승차 공유가 왜 필요하고 어떻게 쓰일지, 아니 필요하기는 한 건지에 대해 활발한 논의와 결단력이 있어야 한다. CES는 이제 기술 구경의 장이 아니다. 기술은 금세 평준화되고 보편화된다. 현장에서 우리나라 기업의 전시관을 보고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놀라는 것도 이제 식상하다. 단체장, 정치인에게 감히 한마디 하며 마무리 지을까 한다. CES에 꼭 가보시라. 그리고 기술을 보지 말고 그 기술이 미국에서, 또 다른 곳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봐달라.
WORDS 김정철(IT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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