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산업이 활기를 띠기 시작하면 기존 산업은 축소되게 마련이다. 전기차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제조사들의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다. 생존해보고자 전기차 시장에서 나름 돌파구를 찾기도 했다. 국내 도입이 불가능했던 클래식카 및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를 전기차로 개조하는 사업이 주목받고 있다. 올드카의 형체에 엔진 대신 모터를 얹는 것이다. 전기차는 비교적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1970년대 디자인을 뽐내는 클래식 쿠페 전기차가 모기 소리를 내며 달리는 상상을 해본다.
EDITOR 조진혁
전기차의 확장 가능성
개인이 복제한 차에 관한 뉴스를 종종 본다. 슈퍼카를 따라 만들었는데 파워트레인은 따라 할 수 없었는지, 성능은 소형차 수준에 그친다. 심지어 어떤 차는 껍데기만 갖추고 구동은 자전거처럼 사람이 페달을 밟아 겨우 굴러간다. 굴러갈 수만 있다면 동력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전기차는 내연기관 자동차와 비교해서 간단한 구조가 장점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수는 대략 3만 개 정도인데 전기차는 2만 개가 채 되지 않는다. 어림잡아 내연기관 자동차의 60% 정도로 본다. 눈여겨볼 부분은 엔진이다. 엔진 부품 수는 자동차 전체의 5분의 1이 넘는다. 전기차는 이 부분이 빠진다. 그렇다고 전기모터 부품이 엔진만큼 들어가지는 않는다.
엔진 비중이 큰 만큼 문제가 생기는 비율도 높다. 계속 쓰면 성능이 떨어지고, 오래되면 환경 규제를 못 맞추고, 연비도 나빠지고, 부품 구하기도 어렵고, 고장 났는데 부품이나 대체할 엔진을 구하지 못하면 차 전체를 못 쓰게 된다. 적당한 때 폐차한다면 큰 문제는 안 되지만, 차를 오래 타고 싶다거나 클래식카로 보존하고 싶다면 엔진이 큰 걸림돌이 된다.
엔진을 전기모터로 바꾸면 어떻게 될까? 이런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된다. 전기차 산업이 새로운 전기차를 내놓는 데 국한되지 않고, 이전에 있던 차를 전기로 바꾸는 분야까지 넓어진다. 엔진 개조는 예전부터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우리 주변만 봐도 가솔린을 LPG로 개조하는 사례는 낯설지 않다. 더 큰 성능을 얻기 위해 아예 다른 엔진으로 갈아 끼우기도 한다. 전기차 시대가 오면 아예 엔진을 전기모터로 바꾼다. 먼 미래 일이 아니다. 현실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다.
옛날 차를 전기차로 바꿔주는 업체가 늘고 있다. 오래된 차 또는 클래식카의 엔진을 들어내고 전기모터를 넣어 전기차로 개조한다. 기본적으로 어떤 브랜드의 어떤 차든 전기차로 개조할 수 있다. 개조에 특화된 군소업체가 주로 작업하는데, 양산차 업체가 직접 나서기도 한다. 애스턴마틴은 헤리티지 EV 서비스를 운영해 고객이 소유한 클래식카를 전기차로 바꿔준다. 폭스바겐은 외주 업체와 손잡고 올드 비틀을 전기차로 바꾸는 사업을 벌인다. 올드 비틀 소유자는 비용을 지불하고 전기차로 바꿀 수 있다. 클래식카 형태를 띤 전기차도 나온다. 양산차 업체가 자사 클래식 모델을 전기차로 다시 만들어낸다. 모양은 클래식카지만 요즘 시대에 새로 만들어낸 차다. 재규어는 아름다운 클래식카로 인정받는 E-타입을 전기차로 만들었다. 미니는 오리지널 미니를 전기차로 만든 클래식 미니 일렉트릭을 소개했다. 정식 양산 전기차보다는 특별 모델 성격이 강하지만 클래식 전기차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인기가 많은 클래식카라면 전기차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기 유리하다. 미니가 선보인 클래식 미니 일렉트릭은 한 대만 만든 ‘쇼카’이지만, 스윈든이라는 회사가 내놓은 E 클래식 미니는 판매용이다. 오리지널 미니 복원 차체를 기반으로 전기차로 만들었다.
클래식카를 전기차로 바꾸면 원형이 훼손된다는 점에서 가치가 떨어질지 모르지만, 실사용 측면에서는 장점이 더 많다. 클래식카는 관리가 힘들다. 파워트레인이 오래되면 낡아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비슷한 엔진으로 갈아 끼우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엔진을 들어내고 전기모터를 집어넣으면 성능이나 관리 측면에서 제약이 없어진다. 무엇보다 환경 문제에 걸리지 않는다. 클래식카의 엔진이 제 성능을 내도 환경 규제에 걸리면 차고에 처박아둬야 한다. 전기모터를 넣으면 환경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에 마음껏 타고 다녀도 된다.
이 밖에도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다. 파워트레인만 제 성능을 낸다고 끝은 아니다. 오래된 차는 구조나 장비 등이 요즘 안전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전체를 다 손봐야 한다. 그렇지만 정말 오래된 골동품 수준 클래식카라면 모를까, 20~30년 정도 된 모던 클래식카 또는 ‘영타이머’는 요즘 시대에 맞게 개선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다. 전기차로 개조하는 작업은 단순히 동력원만 갈아 끼우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 개조 전반에 관련된 산업이 커지는 효과를 낳는다.
우리나라도 클래식카를 찾는 수요가 있지만 아주 활발하지는 않다. 차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구한다 해도 관리하기 힘들다. 일상에서 타기는 더 어려워서, 복원에 초점을 맞추고 상태 유지를 위해 가끔 운행하는 식으로 차를 관리한다. 소유자가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차의 가치도 달라지겠지만, 보관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용 차로도 무리 없이 탈 수 있다면 차의 가치는 높아진다. 전기차로 개조하는 길은 열려 있다. 다만 비용이 많이 들고 인증 과정이 만만치 않아서 시도하는 사례가 거의 없다. 전기차 개조 업체가 생겨나는 상황이라 시장이 열릴 기미는 보인다. 언젠가는 국내에서 만든 전기 클래식카를 볼 날이 올지도 모른다.
전기차는 이제 시작 단계다. 내연기관 자동차가 1백50여 년 역사를 이어오며 다양하게 발전했듯이, 전기차도 여러 형태로 발전할 것이다. 지금은 실용적인 대중차가 대부분이고 럭셔리와 스포츠 전기차가 서서히 시장을 넓히려 시도한다. 전기차가 퍼져 나갈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요즘 나오는 전기차는 대부분 미래 시대 차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첨단을 앞세운다. 심지어 디자인에도 미래지향적 요소를 불어넣는다. 미래 시대를 주도하는 차는 맞지만, 전기차가 곧 미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전기차는 간단한 구조 덕분에 과거와 현재 자동차의 전동화를 이루기 쉽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아우르는 차가 전기차다.
희귀한 차, 희소한 차를 찾는 수요는 늘 있다. 클래식카를 타고 싶어 하는 수요가 클래식 전기차 발전으로 이어진다. 전기차 시장이 커지면 클래식 전기차 수요도 늘어나고 자동차 시장에서 한 자리 차지하는 분야로 성장한다. 주변에서 소리 없이 달려가는 클래식카, 충전선을 길게 늘어뜨리고 충전하는 클래식카를 볼 날이 언젠가는 꼭 온다.
WORDS 임유신(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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