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집 프로젝트 시작은 3년 전이다. 연희동 셰어 하우스에서 남자 셋이 동고동락했다. 거실은 낯선 손님으로 북적였고,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친분을 쌓는 게 즐거움인 시절이었다. 당시 공유 경제와 O2O 서비스업에 종사하던 김성용은 회사에서 배운 공유 서비스를 현실에 적용해보기로 했다.
가설 증명하기 모르는 사람 집에 돈을 내고 놀러 갈 사람이 있을까? 김성용 대표는 자신의 셰어 하우스에서 가설을 실험했고,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돈을 내고 와 책을 읽고, 쉬어 갔다. 손님 중에는 이 프로젝트를 자신의 집에서 할 생각이 없냐는 역제안을 하기도 했다. 가설은 증명됐고 모임 횟수가 늘수록 남의 집 프로젝트의 성과도 차곡차곡 쌓였다.
미지의 공간 ‘퇴근 후 여행한 기분이었어요.’ 모임 참가자는 남의 집을 다녀오는 것이 여행과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여행하는 이유에는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이나 앙코르 와트는 입장료만 내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타인의 집은 초대받지 않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남의 집이야말로 미지의 영역이다. 퇴근 후 미지의 영역을 경험하는 것은 일상을 벗어나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취향을 중심으로 남의 집은 취향을 중심으로 모인다. 취미는 비슷하고, 두 번 다시 볼지 모르는 사람들과 미지의 공간에서 서너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다. 이 모임은 퇴근 후 경험하는 짧고 강렬한 여행이 된다. 가성비 높은 여행인 셈. 문지기 김성용은 세상의 집 하나하나가 모두 여행 상품이라고 한다.
호스트의 역할 모임을 주최하는, 그러니까 집주인이 모임 호스트를 맡는다. 하지만 호스트가 모임을 이끄는 주체는 아니다. 대화의 주제를 꺼내고, 마실 것을 준비하는 역할을 한다. 거기까지다. 공통 주제 아래 손님들은 자기 이야기를 하느라 바쁘다. 남의 집은 대화를 중심으로 여는 모임이다. 모임의 주된 재화가 대화다. 모르는 사람들과 모였을 때 자연스레 대화가 이루어져야 하기에, 미리 손님에게 말하고 싶은 이야기를 준비해오길 권한다.
집의 힘 집이 주는 힘이 있다. 신발을 벗고 양말만 신은 채 온돌 바닥에 철푸덕 앉으면, 몸도 마음도 무장 해제되는 기분이다.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선 타인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진다. 자연스레 말이 쏟아져 나온다.
방문 신청서 손님은 남의 집에 놀러 가기 전에 방문 신청서를 작성한다. 집주인은 손님들의 글을 읽고 초대할 사람을 선별한다. 이야기가 잘 통할 사람을 찾는 것이다. 모임의 재화가 대화이기 때문에 서비스 만족도는 대화 매칭율에 좌우된다. 손님은 최소 3명에서 최대 8명까지로 제한한다. 한 주제로 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적정 인원이 8명인 것이다.
시시콜콜한 대화 최대한 시시콜콜하고, 시덥지 않으며, 어깨 힘 빼고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내용을 모임의 주제로 삼는다. 한없이 가벼운 내용이기 때문에 성공 스토리를 가진 사업가나, 특별한 경험을 한 연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호스트가 될 수 있다.
이런 호스트 저런 호스트 ‘남의 집 모임’은 대화가 주된 재화라면, ‘남의 집 서재’는 말을 아낀다. 손님은 책장의 책을 읽거나 자신의 책을 가져와 읽는 등 남의 집을 카페처럼 이용한다. 호스트는 공간을 소개하기만 하면 된다.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 모임 참가자들은 지금의 나로서 대화할 기회를 찾는다. 지금 자신의 관심사, 좋아하는 주제 아래 모인 사람들을 만난다. 이전에도 몰랐고, 앞으로도 서로 알고 지낼 필요 없는, 이해관계 없는 사람들과 몇 시간 동안 자신의 관심사로 소통한다는 점에 참가자들은 의의를 둔다.
남의 집이라는 콘텐츠 남의 집은 익명성과 단발성 모임을 지향한다. 이름을 안 밝힌다는 뜻은 아니다. 동호회처럼 차수가 있는 모임은 자연스레 권력이 생기곤 한다. 운영자가 있고, 팔로어와 팔로잉 관계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만난 시점에는 모두가 평등하다.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면 대화권이 공평하게 주어진다. 또 단발성 모임이라 대화의 자유도가 높다. 사회생활하며 얽힐 사이가 아니니 솔직하게 된다. 오프라인 대나무숲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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