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은 상품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최소한의 것만 남기는 미니멀리즘 라이프 또한 유행이었다. 인테리어, 라이프스타일, 패션 등 2010년대는 간결한 생활 양식이 지배적이었다. 국민 감성이라 불리던 미니멀리즘도 이제는 끝을 향해 가고 있다. 그럼 이쯤에서 미니멀리즘 이후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봐야겠다. 미니멀리즘 이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EDITOR 조진혁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기
예술, 디자인, 건축 등 창의적인 활동과 관계된 단어는 전문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괜스레 겁먹는 경향이 있다. 지금 바로 생각나는 예를 꼽자면 ‘뒤샹(Duchamp)’이 있다. 올해 초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마르셀 뒤샹 The Essential Duchamp> 전이 열렸는데, 다다이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은 현대 미술에서 굉장한 위치를 차지하는 최초의 레디메이드 작품 ‘샘’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뒤샹’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불안해 어쩔 줄 몰라 한다. 내가 뒤샹이란 말로 대화를 할라치면 손사래부터 치는데, 마치 기본적인 교양을 제대로 몰라 창피함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모양새다. 정작 ‘뒤샹’이란 이름의 베이커리는 나보다 훨씬 자주 갔을 거면서.
이렇듯 창조 산업 쪽의 단어는 이미 자주 쓰이면서도 분위기를 싸하게 만드는 위력이 있는데, 이런 슬픈 법칙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단어가 있으니 가장 대표적인 예를 꼽는다면 ‘피카소’와 ‘미니멀리즘’이 아닌가 싶다. 이 세상에 피카소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모텔 이름도 피카소인 세상에서 피카소는 아무에게나 들이대도 눈 한번 꿈쩍하지 않고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마력을 지닌다.
그렇다면 미니멀리즘은 어떤가. 미니멀리즘 예술, 미니멀리즘 디자인, 미니멀리즘 건축부터 미니멀리즘 패션, 미니멀리즘 인테리어, 미니멀리즘 마인드, 미니멀리즘 라이프 등등 어디에 붙여도 말이 되고 대화 상대와 서로 느낌이 ‘팍’ 오는 기적의 단어 아니던가.
다만 피카소와 미니멀리즘 사이에 가장 큰 차이가 있다면, 피카소는 사람들이 동일한 것을 지칭할 수 있는 실체가 존재하지만, 미니멀리즘은 그 범위와 명확한 의미를 파악하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남용되고 확장됐다는 데 있다. 본디 예술 사조의 명칭인 미니멀리즘을 단어 그대로 직역하면 ‘최소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예술가들이 추구하던 요체는 아주 전문적인 영역 속으로 사라지고 겉모습이 본진을 차지하면서 사람들에게 애용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에서 회자되는 미니멀리즘은 ‘멋진 인공미’에 가깝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은 기능에 비해 과한 장식적인 요소를 철저히 배제하고 최소한의 기하학적 형태의 조합만으로 구현하는 방식을 일컬었다. 지금은 벡터 값으로 이루어진 직선, 원, 삼각형, 사각형 등 기본 도형을 사용하면 일단 미니멀리즘 단어가 튀어나오고 우아하게 나풀대는 비정형, 곧 자연에서 따왔을 자유롭고 예측 불가능한 형태라도 기계 문명이 이룩한 인공적인 맛이 느껴지면 그것도 미니멀리즘이라고 한다. 미니멀리즘 디자인의 거장으로 현재 90세를 바라보는 독일의 산업 디자이너 디터 람스가 들으면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부고 기사가 날 판이다.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핵심으로 부상한 북유럽 가구의 상당수가 손으로 하나하나 만든 장인 정신의 산물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이미 땅에 묻힌 거장들 또한 한 많은 유령으로 출몰할지도 모르겠다.
미니멀리즘은 디자인 분야를 넘어 삶에도 굉장히 깊게 침투했다.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고, 가장 간결한 사고방식으로 살아가는 미니멀리즘 라이프가 유행한지 벌써 몇 년째인가. 그런데 ‘미니멀리즘 라이프’를 유지하기 위한 경제적 지출과 심리적 여건이 최소주의와 차이를 보이는 현상이 유독 우리나라에서 강하게 나타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미니멀 라이프의 여사제’인 곤도 마리에를 예로 들어볼까. 곤도 마리에는 정리정돈 컨설턴트로 일본에서 시작해 미국을 점령하며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핫한 미니멀리즘 인플루언서로 활동 중이다. 그가 외치는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는 슬로건은 너무 많은 것을 부둥켜안고 있어서 정작 소중한 것을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을 정신적으로 치유하며 ‘정리정돈’ 태풍을 만들어냈다. 그 태풍은 우리나라에도 당연히 상륙했는데,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감화받은 사람도 많고 실제로 적용한 사람도 많지만, 곤도 마리에로 인해 삶이 변한 다른 나라 사람들의 소비 패턴이나 심리적 태도와 이질적인 경우를 자주 목격한다. ‘간단히’ 말하면 이런 거다. 설레지 않는 것은 다 버렸다. 그리고 단순하게 살아가기로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근데 이제 집에 놓아야 하는 물건이 적어야 하는데 대체 무엇을 가져다놔야 제일 좋을지 온갖 정보를 뒤지며 고민에 빠진다. 그리곤 ‘미니멀 라이프에는 역시 미니멀리즘 아이템이 제격이지’ 하며 미니멀리즘 디자인으로 무장한 고가의 해외 명품으로 채워 넣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마음은 한 가지 목표로 수렴되며 아주 ‘간단’해진다. “돈 벌자!” 물질주의의 폐해에서 벗어나 심리적 안식을 찾아주는 ‘정리정돈’ 태풍의 기묘한 한국식 변형이다.
결국 미니멀리즘은 우리나라에서 다음과 같은 식으로 소비된다. 잘 모르면 가장 단순하게 행동해서 내 치부를 들키지 말아야지. 인공적인 맛이 주는 비현실적인 광고 이미지를 꿈꾸며 구질구질하게 몇 개 갖느니 새끈하고 단순하게 비싼 것들로 집 안을 간략하게 채워야지. 삶을 단순하게 바라보고 적은 것에 만족하라고 했으니 현대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돈’, 하나에 집중해야지. 결국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눈치 보기’에서 파생한 온갖 현상들이 미니멀리즘 열광의 어두운 면에 자리 잡은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 감성’이던 미니멀리즘이 끝을 향해 달려간다는 트렌드 리포트의 말은 다 거짓이다. 한국식 미니멀리즘은 언제나 깊게 내재되어 다른 트렌드와 어떻게 엮일지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까. 패션 브랜드가 ‘맥시멀리즘’을 외치고, 세상이 ‘뉴트로’가 대세라고 말해도 그 점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므로 감히 제안한다. 미니멀리즘에서 벗어나자. 단순함으로 공허함을 가리고, 어설픈 화려함이 부끄러워 우리 삶의 겉면에 ‘완벽한 단순함’이란 새까만 선팅 필름을 붙이지 말자. 사회가 개인화, 파편화되는 상황에서 구성원의 삶은 그 숫자만큼 다양하게 존재한다. 미니멀리즘이란 단어가 삶의 태도에까지 쓰이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니멀리즘의 완벽한 몰락이다. 미니멀리즘 이후에 무엇이 새롭게 회자될지 모르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 불변의 진리다.
WORDS 전종현(디자인·건축 저널리스트, <PaTI>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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