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리자드 이슈는 현재진행형이다. 10월 7일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 블리츠청은 ‘하스스톤 그랜드마스터즈’에서 ‘광복홍콩 시대혁명’이라는 발언으로 홍콩 시위를 지지했다. 그로 인해 상금 전액 몰수, 출전 정지 1년, ‘그랜드마스터’ 자격 박탈 처분을 받았다. 블리자드 측은 11월 1일 열린 블리즈컨 개막식에서 블리츠청 사건을 공식 사과했지만 징계는 철회하지 않았다. 정치적 중립성과 자유를 강조해온 블리자드가 반중국 시위에 대해서는 엄중한 태도를 보여 게이머들의 불매 운동을 촉진시켰다. NBA에서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 벌어져 논란이 된 바 있다. 게이머의 정치적 발언은 무엇이 문제인가.
EDITOR 조진혁
접힌 자유의 날개
“신념을 위한 싸움을 멈추지 마라.” 블리자드의 인기 게임 ‘오버워치’ 캐릭터 ‘아나’의 대사다. 이 대사가 무색하게 블리자드의 게임 대회에서 게이머가 신념을 드러냈다가 봉변을 당한 사건이 있었다.
10월 7일 블리자드의 TCG 게임 하스스톤의 국제대회 ‘하스스톤 마스터즈’에 출전해 DawN 선수를 상대로 승리한 홍콩 출신 프로게이머 블리츠청(Blitzchung)의 이야기다. 승자 인터뷰에서 그는 ‘광복홍콩 시대혁명’을 외쳤다. 이 발언의 여파로 블리자드는 그의 상금을 전액 몰수하고 출전 정지 1년에 ‘그랜드마스터’ 자격 박탈이라는 처분을 내렸다. 게임 대회에서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을 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자격이 박탈되면 프로 대회 참가가 어려워진다. 사실상 하스스톤 프로 게이머로 더 이상 활동할 수 없게 되는 셈이다.
블리자드의 행보에 게임 팬들은 분노했다. 그간 블리자드는 자사의 게임을 통해 ‘자유’라는 가치를 강조해왔다. 하지만 홍콩 시위 문제에 관해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 게다가 해당 게임 대회는 정치적 발언 관련 규정이 없다. 하지만 블리자드는 ‘다수를 불쾌하게 하면 안 된다’는 규정을 이용해 정치적 발언을 제재했다. 때문에 항간에서는 ‘게이머의 정치적 발언 자체가 금지된 것이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스포츠 선수가 경기 중에 정치적 발언을 하는 것은 금기다. 스포츠가 정치적 선전 도구로 악용되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경기장 내에서는 어떤 가치도 강조할 수 없다.
국제대회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도 내부 규정을 통해 경기장 내에서 정치적 행동을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제재를 받은 사례도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축구 동메달 결정전인 한국 대 일본전에서 한국 대표팀의 박종우 선수가 승리 세리머니로 웃옷을 벗고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쓰인 종이를 들어 보이며 그라운드를 돌았다. 이 일 때문에 박종우는 경기 뒤 시상식 참가 자격을 잃었다. 이외에도 FIFA로부터 두 경기 출장 정지에 벌금 2천5백 스위스 프랑(한화 약 4백10만원)가량의 벌금 처분을 받았다. 규정을 따르면 동메달도 받지 못할 뻔했으나 대한축구협회의 변호로 메달은 받을 수 있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박종우의 행동이 우발적이었음을 강조했다. 관중석에서 던진 종이를 들고 뛴 것일 뿐, 계획된 정치적 행동이 아니었다는 주장이다.
블리츠청도 자신이 홍콩 시위 관련 발언을 하면 징계를 받을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개인 방송에서 “그랜드마스터즈 계약을 할 때 이러한 것들(정치 관련 이슈)을 말하지 않는다는 계약서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감안하더라도 처벌 수위가 너무 높았다. 물론 이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게임 업계에서 가장 많은 사용자를 보유한 중국 시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사건이 NBA에서도 있었다. 대릴 모레이 NBA 휴스턴 로케츠(이하 휴스턴) 단장은 10월 4일 트위터에 홍콩 시위를 지지하는 내용의 게시글을 올렸다. 이 트윗 한 번에 휴스턴은 물론 NBA까지 중국 측 스폰서들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선수와 구단주까지 나서서 사과를 했으나 분노의 불길은 더 커지기만 했다. 하지만 모레이 단장이 해임당하거나 처벌받는 일은 없었다. NBA에서는 구단의 단장이 홍콩 시위 지지 발언을 해도 징계하지 않았으나, 블리자드 하스스톤 대회에서는 달랐다. 일개 선수, 그것도 대회 우승자가 아닌 7위 정도의 성과를 올린 선수는 인터뷰 한마디에 상금을 전부 잃고, 출전 정지 처분까지 받았다. 게임은 E-스포츠 종목이기 이전에 하나의 문화 콘텐츠다. 특히 블리자드는 그간 자사 게임 내 스토리에 자유와 이를 위한 투쟁의 이야기를 계속 집어넣어왔다.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는 “자유를 위해 싸워라”라는 슬로건을 내세운 ‘레이너 특공대’가 등장한다. ‘오버워치’에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시위를 주도하는 사회운동가 ‘루시우’가 있다. 이 같은 설정에 공감해 블리자드 게임을 시작한 게이머들도 적잖다.
그만큼 게이머와 관련 업계는 블리자드의 정치 발언 제재에 실망이 컸다. 블리자드 게임 단체 환불 사태는 물론, 블리자드의 신작 게임 발표회인 ‘2019 블리즈컨’에서는 일부 게이머들이 홍콩 민주화 지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포트나이트 개발사 에픽게임즈의 CEO 팀 스위니는 “포트나이트의 선수든 유명 스트리머든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해도 처벌은 없다”며 블리자드의 행보를 비판했다. 게다가 E-스포츠는 다른 스포츠 종목에 비해 정치적 발언이 허용되는 폭이 큰 편이다. 정치적 표현을 금지하는 규정이 없기 때문. 일반적으로 차별 및 폄하 발언만 금지돼 있다. 일례로 다른 TCG 게임인 ‘매직 더 개더링’의 대회 현장에서도 블리츠청 사건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그러나 제재는 없었다.
올해 대회에서 홍콩 선수 ‘리 쉬 티안(Lee Shi Tian)’이 복면을 쓰고 입장했다. 입장 도중에 홍콩 경찰이 시위대를 향해 발포해 부상을 입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승리 후에는 복면을 쓰고 홍콩의 상황과 민주화 시위에 대한 인터뷰를 했지만 처벌은 없었다. 이 사례를 보면 아직 게이머에게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있다. 대회를 진행하는 회사가 게이머의 입을 막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블리자드도 비판을 일부 수용하고 블리츠청에 대한 징계 수위를 낮췄다. 상금 몰수 조치를 취소하고 출전 정지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였다. 하지만 정치적 발언 금지 조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블리자드 CEO 제이 앨런 브랙이 10월 12일 올린 공지에는 ‘앞으로 공식 방송이 사회적 또는 정치적 견해를 나누는 플랫폼이 되지 않도록 규칙을 유지할 것’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아무래도 블리자드의 자유의 날개는 어른의 사정 때문에 당분간 접혀 있을 듯싶다.
WORDS 박세준(<주간동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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