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문보영
문보영은 1992년생으로 올해 28세다. 그녀는 손편지를 쓴다. 편지 내용은 그녀의 일기다. 힘주어 꾹꾹 눌러 쓴 글자들이 종이를 가득 메운다. 일기는 귀여운 스티커들이 붙은 봉투에 담겨 그녀의 소셜 미디어 팔로어들, 정확히는 구독자들에게 전달된다. 문보영은 느끼려고 하면 읽히는 것이 시라고 말했다.
왜 시를 썼어요?
일상어만으로는 완벽하게 내가 전달되지 않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대학생 때 시집을 읽었는데, 이해는 안 되지만 무슨 말인지는 알 것 같았어요. 그게 속 시원해서 그때부터 시가 쓰고 싶었어요.
어떤 시인은 그런 순간 귀신과 대화하는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시를 쓸 때 평소보다 10배는 더 제정신이에요. 현실을 더욱 진하게 바라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오히려 무슨 말인지 모를 수도 있어요. 시는 이해하려 하지 않고 느끼려고 하면 읽히는 것 같아요.
20대로서 겪는 고민이 있나요?
우선 먹고사는 문제가 있어요. 나이가 들면 편해지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아직 타인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룹 활동이나 친구를 사귀는 것도 그렇고 매번 새롭고 적응이 안 되고 혼란스럽고 그래요.
먹고사는 문제는 어때요?
저는 어떤 집단에도 속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조직 생활을 못 견디기에 프리랜서가 잘 맞아요. 원고료를 받고, 수업도 해요. 가장 좋은 건 일기 딜리버리예요. 일기를 써서 인스타그램과 블로그 독자에게 전하는 건데요. 지금 제 생계를 지탱하고 있어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이 일이 저에게 엄청 큰 재산이에요.
작가가 팔로어에게 직접 글을 전하는 방식은 기발해요. 출판사가 없는 유통 과정이잖아요. 소셜 미디어 세대답다고 느꼈어요.
이메일로 글을 보내는 서비스가 유행해요. 저는 속이 오래된 사람이라 그런지 텍스트를 읽을 때 전자책보다는 만질 수 있는 게 필요한 사람이에요. 독자에게도 제 글을 이메일이 아닌 우편으로도 보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과 마지막 원고는 우편 봉투에 넣어 보냈어요. 글도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편지를 포장하는 반복 작업은 정신노동이 아니어서 오히려 머리를 맑게 해줘요.
시를 발표하는 곳이 왜 문예지여야만 할까요?
확고한 무대가 있는 건 좋아요. 만약 문예지가 없으면 다 뿔뿔이 흩어져서 개인 SNS를 하거나 아니면 작가가 세상에 소개되지 못할 텐데, 문예지라는 건 기회잖아요. 신인에게 발표 무대가 있다는 건 소중해요. 등단하지 않은 작가들이 폐쇄적으로 배제되는 건 문제죠. 그래서 비등단 작가도 자기 글을 발표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랫폼이 있어야 해요. 저 역시 문예지에만 의존하니까 언제 발표를 못하게 될지 불안한 마음이 있어서 독자들과 직접 만나는 개인 플랫폼을 만들었어요.
작가의 개인 플랫폼은 굉장히 신선한 시도예요.
처음에는 고민했어요. 작가들은 골방에 틀어박혀 신비주의를 유지하는데, 쟤는 왜 저렇게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줄 알았어요. 막상 시작해보니 그냥 특이한 걸 한다고 생각해주고, 문예지에서도 관심을 보여요. 예전에는 나서는 걸 싫어하고 작가는 글로만 보여줘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다 보니 글도 폐쇄적으로 되는 것 같았어요. 골방에 틀어박힌 예술가가 아닌 문을 열고 평범한 사람처럼 살고 싶었어요.
운동 열심히 하는 시인들도 많던데요?
저는 힙합을 좋아해서 춤을 춰요. 크루도 있어요. 친구들이 무대에도 서고 홍대에서 거리 공연도 해요. 시 쓸 때는 간헐적으로 행복한데 춤출 때는 항상 행복해요.
시는 나를 파는 일 같아요. 나를 깊이 파 먹다 마주하게 되는 나는 그러니까 깊은 내면은 어두울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마냥 밝기만 한 시는 독자들이 좋아하지 않죠.
맞아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시는 안 읽고 소설이나 비문학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과학이나 철학 서적을 읽고 그다음이 외국 소설, 그다음이 시예요. 제 시에는 나라는 화자보다 인물이 세 명 등장해요. 저를 팔아먹다 보면 어두워지고 불행을 호소하게 되고 슬픔을 끌어당기려고 해요. 타인에 대해서 말하고, 타인을 관찰한다고 생각하면서 소설처럼 시를 쓰고 있어요.
우주나 철학 서적에는 시를 쓸 때 도움이 될 용어나 개념이 많죠.
일단 똑똑해지고요. 문학에서는 접하지 못한 문체로 서술돼 있어요. 설명 문체인데도 문학과는 다르죠. 또 너무 어려워서 이해가 안 가요. 그래서 상상할 여지가 많아요. 계속 생각이 다른 데로 튀는데 잘못 이해해서 그걸로 뭔가를 만들어내게 돼요.
동세대의 화두를 시에 사용하기도 하나요?
신문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며칠 전에 했어요. 사회 문제들을 주제로 뉴스 같은 시를 쓰고 싶어요. 대상에 대해서 제가 가치 판단을 하는 정치적인 시가 아니라 그 현상에 대해 긍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는 시요.
지금 20대의 화두는 뭐라고 생각해요?
불안이요. 불안과 우울.
불안과 우울은 다른 시대 20대에게도 해당되지 않을까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책이 발간된 후로 우울증이 화두가 된 것 같아요. 정신과에 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뀐 거죠. 정신과에 다닌다고 해서 낙인 찍지 않고 불안장애나 공황에 대해 열린 사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가는 거 같아요.
시는 언제 어디서 써요?
예전에는 거의 매일 썼는데 너무 정신을 갉아먹어서 요즘은 바짝 쓰고 휴식기를 가져요. 곧 <배틀 그라운드>라는 시집이 나와요. 동명의 게임을 소재로 2~3개월 동안 썼는데, 그 게임은 안 해봤어요. 안 해본 사람도 읽을 수 있으려면 제가 경험해선 안 될 것 같았어요. 오빠가 게임할 때 관찰하고 물어보고 조사해서 썼죠. 그 게임은 너무 재밌어요. 동그란 원이 언제 어딘가에 생길지 모르는데, 절대 내가 있는 곳에는 안 생겨요. 그 원 안에 들어가는 게 문제인데 들어가도 다른 적이 있어요. 한 명이 남을 때까지 전투를 하는 게 고통스러운데 여러 가지로 비유할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요.
의식적으로 안 쓰는 시어가 있나요?
자연물이나 우리 고유어, 아무도 모르는 옛날 말, 나도 모르는 말. 제가 안 쓰는 말은 시에 쓰지 않으려고 하죠. 초등학생들이 사용하는 국어사전을 봐요. 가장 쉬운 말인데 막상 쓸 때 안 나오는 말을 알고 싶었어요. 어려운 단어는 나도 모르고 아무도 모르니까.
왜 20대가 본인의 시를 읽는다고 생각해요?
우스꽝스러워서 읽는 것 아닐까요. 예전에 박상순 시인이 어두운 시를 쓰더라도 자기는 항상 우스꽝스러운 탈출구를 만들어놓는다고 했어요. 저도 그런 기질이 있어요. 절망스러운 순간에 몸 개그를 해서라도 웃고 싶어 하는 절박한 유머 본능이 있거든요. 그게 너무 우울해지는 걸 방지해요. 그래서 제가 저에게 계속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20대들도 그 유머를 공감해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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