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서윤후
서윤후는 1990년생이다. 그는 종종 이 땅을 벗어나 다른 땅에 간다. 그에게 여행은 자신의 어느 구석을 말끔히 씻는 일이다. 여행 후에는 다시 더러워지는 일을 자처할 수 있도록 자신을 잘 정돈하며 지낸다. 서윤후는 시 쓰기를 ‘더욱 미세하게 틈입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시를 쓰며 세상의 틈새를 유유히 질주한다.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두 권의 시집과 산문집 하나를 준비 중이에요. 시 문예지 만드는 회사에서 일하고 있고요. 종종 시 쓰기 수업도 진행합니다.
다양한 일을 동시에 하고 있네요.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어떤 것은 거절해야 했어요. 거절하면 다시 찾아주지 않을 것 같아 그럴 수 없었어요.
시 쓰기 수업은 어떤 식으로 진행하나요?
수강생들과의 거리를 좁히려고 노력해요. 혼자 떠들지 않고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그려보죠. 글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외롭기 때문에 외로운 지점을 읽어주려고 해요.
시 쓰기가 먹고사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나요?
육체와 정신으로 저 자신을 구분해요. 두 개의 호주머니처럼 간편하게 생각하고 싶어서요. 먹고사는 일은 회사를 다니는 왼손이 하고, 정신적인 해갈은 오른손이 한다고 생각해요. 먹고사는 일에 큰 도움이 필요했다면 당연히 시는 안 썼을 거예요. 언제부터인가 저를 지배하는 의식에 대해 예의를 갖추고 싶었어요. 편의점이나 약국에서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시가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먹고사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 같네요.
최근의 화두는 무엇인가요?
서른입니다.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20대와 30대의 경계에서 잘 다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생각보다 제가 많이 변해서, 20대 동안 관측하고 방어해온 제 자신이 다시 새로운 사람이 된 것만 같아요.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서른을 기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사회적인 이슈 중에 생각해본다면요?
페미니즘이요. 아직 여전히 부족해서 자기 검열을 자주 해요. 주변을 돌아보기도 하고요. 한 번은 여성 혐오적인 농담이나 여성 비하적인 이야길 자주 하는 친구들과 절교를 했습니다. 제가 잘났고,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것은 아니고요. 그냥 제가 너무 불편해서요. 불편한 일이 급격히 많아진 때가 서른인 것 같아요. 그중 하나가 여성 인권에 대한 문제예요.
가장 고민하고 있는 것은 뭐예요?
보수요.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했던 제게도 제 안의 전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생기더라고요. 새로움만 추구하지 않는 저를 발견하기도 하고요. 그것들을 내심 지켜내고 싶어 하는 악력이 새로운 것을 은근히 밀어낼 때는 당황스러워요. 제 안의 질서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요. 그것이 무엇으로부터 생겨났고, 또 그것을 어떻게 허물 수 있을지 고민해요.
언제, 무엇을 통해 자신 안에 있던 보수를 마주했나요?
텀블벅이라는 플랫폼을 좋아했거든요. ‘진취적이고 아방가르드한 것들이 다 모여 있구나!’ 하면서 많이 소비했어요. 그런데 텀블벅 후원을 통해 제작된 것을 실제로 받아보면 실망하게 되는 경우가 있었어요. 새로운 것이 무엇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러면서 텀블벅을 끊어버렸죠. 혼란스러웠어요. 예전에는 새로운 시도라면 무작정 응원했을 텐데. 나이가 들어 그런가? 하는 거죠. 독립 문예지가 많이 나오잖아요. 저변을 넓히는 데 좋은 역할을 하죠. 그런데 결과물도 좋은가 하면 모두 그렇지는 않아요. 새로운 시도를 응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만들 바에야 안 만드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양가적인 거죠.
최근 지인에게 링크를 보낸 뉴스가 있어요?
‘몰래 의자 뒤로 빼 동료 엉덩방아 찧게 한 60대 벌금형’이라는 기사요. 그 기사 링크를 친한 친구에게 보냈거든요. 답장이 ‘ㅋㅋㅋ’라고 왔어요. 그때의 오묘함, 이 기사가 시사하는 이상한 느낌이 기억에 오래 남아요. 제가 관심 있는 뉴스는 대부분 랭킹에서 20위권 정도에 있어요.
큰 사건이 아닌,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는 이슈들인 거죠?
맞아요. 그런데 최근에는 조국 뉴스가 1위부터 30위까지를 차지하고 있더라고요.
왜 시를 쓰나요?
꽉 막혀 움직이지 않는 도로 위에 있을 때 자동차 사이를 유유히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보면서 약간의 쾌감을 느껴요. 시도 그런 쾌감이 있는 것 같아요. 더 미세하게 틈입하는 것. 장황하지 않게 그 틈을 질주하는 것. 아마도 거기에 매력을 느낀 것 같아요. 태초에 시는 제게 ‘백일장에서 빨리 쓰고 집에 가기 좋은 장르’였어요. 백일장에서 처음 시를 썼는데 1등을 했어요. 시를 쓰니 사람들이 좋아해주더라고요. 잘하는 걸 해보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어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그런 외로움이 있었어요. 시를 쓴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결심을 하지는 않았고요.
동세대의 어떤 것을 시로 쓰기도 하나요?
분노요. 분노한 뒤에 시가 잘 써지는 편이에요. 근 몇 년간 분노할 일이 많아 시를 많이 썼죠. 상대가 불분명한 싸움이어서 분노의 영역이 제 영역을 무례하게 침범해요. 그때 잠들어 있던 언어들이 많이 깨어나는 편이죠. 감정적인 분노보다 분노라는 자세를 갖기 위해 노력해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를 써요?
마감이 바쁠 때는 퇴근 후 회사 앞 카페로 다시 출근을 해요. 배고파질 때까지만 쓰는 것이 규칙이에요. 글 쓸 때의 체력과 컨디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서 평소에는 주말에 집에서 주로 써요. 마음먹은 날엔 요리를 하다가, 배드민턴을 치다가, 분리수거를 하다가도 계속 시 쓰고 있는 제 모습을 생각해요. 그러면 뭔가 떠오르고요.
시를 쓰기 전 상상했던 시인의 삶은 어땠나요? 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 상상했던 사회인의 삶은요?
제 머릿속 시인은 이미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시인의 삶은 상상이 되지 않았어요. 잘 상상이 되지 않아서 시인이 된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기대할 수 없었고, 실망할 일도 별로 없어요. 시도 쓰고 회사도 다니는 근면 성실한 사람을 사회인으로 생각했는데, 정말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서 아쉬워요. 그래도 제가 재미있거나 돌변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시에게 달려 있을 것 같아요. 사회인으로서는 절대 불가능이라서요.
20대 독자들이 왜 서윤후의 시를 읽을까요?
동시대의 호흡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같은 공기를 마시고, 같이 온도를 실감하는 사이랄까요. 오래 잠영하다 동시에 수면 위로 튀어오르고, 다시 약속한 것처럼 호흡을 참으며 깊은 심해로 들어가는 것. 시를 통해 그런 것을 나눈다고 생각해요. 그 호흡이 갑갑하면 나이를 떠나서 자신에게 맞는 호흡을 찾는 것이고요. 호흡을 통해 다양한 리듬을 갖는 것이, 우리가 문학을 향유하며 만나는 이유 중에 하나라는 생각도 해요.
이제는 쓰지 않으려고 하는 시어가 있나요?
‘마음’과 ‘우리’요. 이제 마음을, 우리를 가볍게 부르는 일은 그만하고 싶어요.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