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드라마 <저스티스> 촬영을 하고 곧장 스튜디오로 넘어온 최진혁과 마주 앉았다. 당연히 피곤할 테니까 물을 것만 묻고 얼른 보내줘야지 했는데, 다짐과는 다르게 이야기는 1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준비한 질문 사이사이 나눈 그의 일상 이야기가 꽤 재밌었고, ‘솔직히’로 시작하는 그의 ‘솔직한’ 말들이 대화를 술술 이끌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가 정말 걱정돼서 피곤하지 않느냐고 다시 물었다. 최진혁은 ‘재밌으니까 괜찮다’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는 인터뷰 내내 재밌다고 말했던 것 같다. 시나리오가 재밌고, 연기가 재밌고, ‘나이 때문인가’ 하고 중간에 능청스러운 농담도 잠깐 섞었지만, 그만큼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밤새 <저스티스> 촬영을 했다던데.
현재 대본이 7부까지 나온 상태다. 극의 긴장감도 그렇고, 한참 분주하게 작업하고 있다. 나도, 다른 배우들도 아주 열심히. 불붙었다고 하나? 하하.
드라마 <저스티스>는 장호 작가의 웹 소설이 원작이지? 인기가 상당히 많았던 작품이다.
시나리오를 굉장히 재밌게 읽었다. 또 스릴러 장르 아닌가. 전개가 흥미진진해서 한자리에서 붙들고 앉아 읽었다. 거기에 작가님께서 대사까지 워낙 잘 쓰셔서 대본이 정말 휙휙 넘어갔다.
어떤 내용인가?
‘이태경’의 동생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때 송회장이 나타나서 제안을 하나 한다. ‘동생의 복수를 해줄 테니, 너는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겠느냐’고. 그렇게 송회장의 도움으로 ‘이태경’은 승률 높은 천재 변호사가 되는데, 우연히 7년 전 동생 사건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극이 팽팽하게 전개된다.
공개된 프리뷰를 보면 진혁 씨가 맡은 ‘이태경’ 역 앞에 ‘타락한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붙던데.
그 표현이 맞다. 나쁜 일만 도맡아 하는 변호사다. 아무리 악마와 손을 잡았다지만 사람이 저렇게까지 변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아무튼 내가 봐도 되게 별로다. 하하. 그렇다고 ‘이태경’이 본질이 악한 사람은 아닌데,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되니까. 결국 인물의 변화라든지, 인물 간의 관계가 드라마를 보는 데 굉장히 재밌는 요소로 작용한다.
배우 손현주와 나나가 함께한다.
든든할 수밖에 없다. 특히 손현주 선배님과 가깝게 마주 서서 상대역으로 연기를 한다는 것 자체가 영광이다. 드라마 <첫사랑> 때부터 팬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많이 긴장된다.
배우들과 많이 가까워졌겠다.
손현주 선배님은 워낙 대선배니까. 내가 좀 꼰대 같은 구석이 있어서 나이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나이 차이가 조금 난다 싶으면 쉽게 다가가지 못하겠다. 시간도 한참 걸리고. 하하. 그래도 처음보다는 많이 친해졌다. 초반에 촬영한 내용들이 아쉬울 정도로. 최근 컷들 보면 어색하지 않고 편하게 느껴지니까.
인터뷰 전에 진혁 씨가 그동안 맡았던 배역들을 쭉 봤다. 하나같이 다르던데.
맞다.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한 적이 없었다. 내가 캐릭터보다는 대본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대본이 재밌으면, 그다음 캐릭터가 보인다. 내 배역이 좋다고 작품을 결정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재밌어야 하는 게 작품을 고르는 기준인 건가?
그렇지. 무조건. 내가 재미없으면 촬영하는 4~5개월이 엄청 힘들다. 드라마는 유기적인 작업이어서 그러면 내 연기를 보는 시청자도 재미없을 거고. 내가 재밌게 연기해야 시청자들도 재밌게 봐주신다고 생각한다.
‘안목 있다’라는 말 들어봤나? 그렇게 고른 작품들 대부분이 흥행했다.
몇 안 되는 내 장점이다. 하하. 감사하지. 아니 근데 모르겠다. 내 시선이 지극히 대중적이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무엇보다 먼저 재밌어야 하니까. 그래서 사실 작품 들어갔을 때 조금 혼란스러운 경우도 종종 있다. 관객 입장에서 작품을 봤을 땐 너무 재밌고, 흥미로운데 막상 내가 연기하고, 표현하려면 ‘아 어렵네’ 이렇게 되는 거지. 이번 ‘이태경’ 역이 그렇고.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땐 잘할 수 있겠다, 재밌겠다, 생각했는데 연기를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고.
어떤 부분이 특히 그럴까?
‘이태경’은 감정 표현을 많이 하면 안 되는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시청자 입장에서 보면 지루할 것 같은 거지. 그러다 보니까 더 고민하게 되고, 연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더라. 거기에 회를 거듭하면서 감정이 하나둘 축적되는데, 언제까지 이 감정을 끌어안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쉽지 않았다.
본인의 연기를 관객의 시선, 3자의 입장에서 경계하는 편인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도 그랬고 좀 전 이야기도 그렇고.
나 혼자 연기하는 게 아니니까. 작품이나 내 연기를 보고 느끼는 대중의 시선을 늘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오래전 인터뷰에서 남성미 물씬 나는 역할에 슬쩍 욕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영화 <강남 1970>의 김래원이 연기한 ‘용기’ 역을 이야기했었다.
누아르 액션이나 ‘용기’ 같은 역할을 해보고 싶었다. 꼭 캐릭터가 ‘남자다워서’라기보다는 잘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이제는 하고 싶은 걸 도전해보고 싶다.
잘할 수 있는 역할과 해보고 싶은 역할. 지금까진 어느 쪽을 더 많이 해왔나?
정말 반반인 것 같다. 아까 말했듯이 작품이 재밌으면 어떤 역할이든 도전했던 것 같다. 드라마 <응급남녀>의 ‘오창민’ 역이 그랬다. 철부지에, 까불이에 바보처럼 긍정적인. 한 번도 본 적 없는 캐릭터였는데 무조건 해보고 싶었다. <응급남녀> 전작이 <상속자들>이었는데, 물론 반대되는 캐릭터에 대한 호기심도 어느 정도 있었지만, 커다란 이유는 전자였다.
최진혁은 자신의 역량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다.
예전에는 대답하기 엄청 부끄러웠는데 이제는 나이가 든 건지 곧잘 한다. 하하. 너무 겸손하게만 대답하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내가 어떤 역량을 가졌는지 아는 것. 배우에게는 중요하지 않나?
맞다. 어느 순간, 그걸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음, 내가 잘할 수 있는 거라면 남들보다 조금 더 진중해 보일 수 있는 거. 과묵해 보일 수 있는 분위기인데, 문제는 이게 조금만 과하면 무거워 보이는 역효과가 있다. 그 균형을 잘 맞추는 게 과제다. 그런데 <응급남녀>보다 더 밝고, 장난기 있게 까부는 역할도 되게 잘할 수 있다! 하하하.
그러니까. 아까 촬영 중에 장난을 많이 치던데?
그게 내 이미지 때문에 그런 것 같다. 다들 내가 장난치면 의외라는 반응이다. 나는 전혀 과묵하거나 진중하지 않은데…. 하하.
어느새 13년 차 배우다. 몇 년 전 인터뷰에서는 ‘연기를 못해서 그만두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랬었다. 다행히 시간이 해결해줬다. 그런 걱정에 뒷걸음치거나 함몰되지 않고 연기를 계속하면서 도전했던 게 큰 선물이 됐다. 아주 작지만 노하우도 생겼고. 그래도 아직 멀었다는 생각은 여전히 많다. 공부처럼 하면 할수록 어렵더라. 그런데 어떤 영역에서든 누구나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만족하는 사람…, 드물지 않나.
여전히 연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조금 수월해진 게 있다면?
연기가 좀 편해진 느낌이다. 예전에는 내가 상대 배우와 대사를 주고받았다면 지금은 말을 하고 대화를 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랬다. 그때부터 감정이입도 잘되고, 점점 연기하는 게 재밌어졌다.
즐거워 보인다.
캐릭터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때부터는 불이 붙는다. 하하. 잠을 세 시간 정도 잘 수 있는데, 소파에서 대본 보다 다시 나온다. 이럴 때는 ‘아, 내가 끓어올랐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때 재밌다. 즐겁고 보람 있다.
최진혁의 연기가 그렇게 성장하는 거 아닐까.
음, 성장보다 이런 느낌이다. ‘아, 이제 나도 나이가 들었구나’ 하는. 하하. 여유가 생긴 느낌인데, 예전에 형들이 ‘남자는 서른 넘어야 돼’라고 했던 말을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20대 최진혁은 어땠을까?
그땐 되게 성실했다. 아무것도 모르니까 무조건 열심히, 들이받는 스타일이었지 뭐. 하하. 근데 누구나 겪는 과정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태도로 연기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내가 있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30대에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을 것 같은데. 배우로서든, 사람 최진혁으로서든.
인정받는 연기자가 되는 거. 대표작도 갖고 싶고. 그러면서 배우로서 천천히 대중과 신뢰를 쌓아가는 게 목표다.
믿고 보는 배우.
‘저 배우 나온다. 봐야겠네!’ 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최고의 칭찬 아니겠나. 아, 그런데 이번에 정말 기분이 좋았던 게 작품 들어가기 전에 손현주 선배님께 슬쩍 여쭤봤다. “선배님 대본 보고 작품 결정하셨죠?” 이렇게. 그런데 “너 한다고 해서 했어” 하시는데 표현은 안 했지만 정말 뭉클했다. 소름 돋았을 정도로.
최고의 칭찬 아닌가?
아휴, 그럼! 당시에는 티 안 냈었는데 정말 너무 좋았다. 하하. 물론 그래서 더 열심히,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다행히 선배님께서 어디 인터뷰하신 것 보니까 또 칭찬해주셨더라고. 하하하!
요즘 최진혁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건 뭘까?
요즘? 음 그냥 <저스티스> 촬영하는 게 좋다. 즐겁고. 인터뷰하는 지금 시점에서 보면 꼭 일주일 남았는데, 정말 이번 드라마는 이상하게 많이 긴장된다. 재밌게 봐주셔야 하는데… 하는 걱정들. 이렇게 연기하는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게 큰 행복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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