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빛이 다하면 어떡하지? 전구처럼 갈아 끼울 수가 없는데. 글을 쓰다가, 연기를 하다가, 콧노래를 부르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창작물에는 내가 묻어난다. 정형화된 패턴이 보인다. 그러니까 콧노래를 부를 때 꼭 4분의 4 박자를 고수한다거나, 1999년 세기말 멜로디만 부르는 식이다. 새로운 나를 보여주고 싶은데, 나는 이미 나를 너무 많이 사용했다. 배우들도 비슷한 고민을 한다. 그래서 전작과는 다른 작품에 출연하고, 새로운 캐릭터에 도전한다. 변요한이 그렇다. 그는 매번 다른 캐릭터를 선보인다. 그래서 영화 속 변요한은 언제나 낯설다. 하나의 캐릭터를 띄우고, 또 다른 캐릭터를 띄우는 젊은 배우. 강아지를 사랑하고 미소가 청량한 그는 이따금 야밤에 뮤지션으로 분하고, 때로는 휘청거릴 때까지 링에서 스파링을 한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밤에 생각했다. 수명이 다한 별은 소멸하지만 우주의 검은 여백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탄생하고 또 반짝인다. 변요한의 우주처럼.
촬영 중 변요한의 인스타그램을 봤다. 지난밤에는 드럼 연주하는 영상을 올렸다. 왜 연주하는 모습도 멋있나?
악기를 잘 다루지는 못한다. 그냥 취미다. 주변에 음악 하는 형들이 많다. 자연스레 악기를 접하게 됐다. 레슨을 받기도 하고 즐기면서 배우고 있다.
음악 외 다른 취미는 무엇인가?
운동 좋아한다. 사실 취미 생활이라고 하면 영화 감상을 꼽을 수 있다. 하루 종일 영화를 본다. 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기도 한다. 다시 보다 보면 놓쳤던 부분을 발견한다. 때로는 놀라울 정도로 와닿는 부분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래서 영화를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영화를 공부하듯 보는 것 같다. 여러 번 본 영화 중 인생 영화가 있나?
맞다. 공부하는 거다. 영화 한두 편을 꼽는 건 어렵다. 다큐멘터리도 많이 보고, <왕좌의 게임> 같은 ‘미드’도 여러 번 반복해서 봤다. 인생 영화가 너무 많아서 특정 작품을 선정하는 것은 애매하다.
그럼 최근에 본 영화 중 인상적인 작품은 무엇이었나?
<서스페리아>를 세 번 봤다. 처음에는 단순한 공포 영화가 아니라 세계관이 엄청난 감독의 작품이어서 너무 놀라웠다. 두 번째는 틸다 스윈턴이 1인 3역을 했다는 게 믿기지 않아서 다시 봤다. 그녀의 연기만 봤다. 세 번째는 다시 집중해서 영화 전체를 봤다. 또 얼마 전에는 마크 월버그와 크리스천 베일이 형제로 나온 <파이터>를 다시 봤다. 몇 년 만에 다시 봤는데 너무 좋더라. <바디 오브 라이즈>도 좋았다. 그 영화를 보고 나서 리어나르도 디캐프리오 출연작들을 찾아 봤다. 또 호아킨 피닉스가 출연한 <마스터>도 좋았다. 영화는 좋아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몰아서 보는 편이다. <마스터>를 보고 <그녀>를 다시 봤다. 영화들을 다 보고 나서는 호아킨 피닉스가 연기를 너무 잘한다는 것을 떠나 대체 어떤 사람일까 궁금했다. 배우의 연기에 관심이 생겨 필모그래피를 훑다 보면 나중에는 그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한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조명하는, 그러니까 연기에 집중하는 감상법이 독특하게 느껴진다.
한 작품을 두세 번 보는 습관이 있다. 영화를 조금 더 순수하게 보려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영화를 순수하게 본다는 것은 비평하려 들지 않는 감상 태도를 뜻하는 것인가?
맞다. 영화를 재미있게 즐기면서 본다. 영화에 순식간에 빠져든다고 해야할까. 영화와 일정 거리를 두고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흠뻑 빠져서 보다 보니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보고 난 뒤에는 여운을 오래 느끼고. 그다음에는 공부하는 자세로 다시 본다.
연기자는 캐릭터에 빠져드는 습관이 있어서, 영화도 특정 캐릭터에 몰입된 상태로 보는 게 아닐까?
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언제였나?
중학생 때. 처음 연극을 했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연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 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중국에 유학 갔을 때에도 배우의 꿈은 놓지 않았다.
왜 연기가 좋았나? 어렸을 때 느꼈던 연기의 재미는 지금도 유효한가?
이제는 왜 재미있었는지 생각이 안 난다. 지금은 연기가 재미있다거나 행복하다는 표현을 못 하겠다. 그냥 연기가 좋다. 너무 좋다. 또 너무 어렵다. 내가 누군가를, 다른 인물을 표현한다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그 인물을 연기하면서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연기하는 과정을 통해 나를 탐구하고 싶다.
연기에 대한 진중한 태도가 느껴진다. 연기에 대해 책임감을 느낄 때도 있나?
영화와 같은 창작물은 자연스럽게 문화에 스며들고, 세상에 스며들 수 있는 것이기에 연기를 할 때는 깊게 고민하는 진중한 태도를 고수해야 한다.
변요한의 필모그래피도 이야기해보자. 독립 영화에만 30편 이상 출연했다고 들었다. 엄청난 양 아닌가?
많을 때는 한 달에 세 편씩 찍기도 했다. 당시에는 영화 촬영이 숨구멍과도 같았다. 그렇게 안 하면 연기를 포기할 것만 같았다.
쉼 없이 달린 당시의 경험이 자양분이 되었겠지?
그렇게 믿고 싶다. 영화 촬영을 쉬면 연기를 그만둘 것 같아서 미친 듯이 연기하려 노력했다. 연기에만 열중하다 보니 배우로서의 커리어를 제외한 내 삶은 별로였다. 연기에만 기울어진 삶이었다. 이제는 내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하게 생각된다. 삐걱거리지 않고 치우치지 않게 살려고 노력한다.
많은 작품을 했는데 배우로서 전환점이 되어준 작품이나 캐릭터가 있나?
연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내가 만난 모든 작품들은 다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무언가를 배웠다.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더라도 시간이 흘러 돌이켜보면 반드시 배운 것이 있더라. 연기는 내 삶에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우주라고 생각한다.
예술가, 그러니까 창작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꾸준히 정진하는 것. 어느 작가는 펜을 놓지 않고 계속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실력이 늘 것이라는 뜻인데, 연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글쎄, 나에게 연기는 계속 한다고 느는 것 같지 않다. 연기할 때마다 내가 조금씩 소비되어 없어진다. 내 캐릭터에는 나의 역량, 성격이 담긴다. 내가 맡은 배역들을 모으면 패턴이 보이고, 그렇게 내 바닥이 드러난다. 결국에는 그 패턴을 엎어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게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브랜딩의 시대 아닌가.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을 그 배우만의 브랜드라고도 한다.
나는 브랜드가 없고 싶다. 배우의 연기 성격, 브랜드가 정해지면 분명 이득이 있겠지만 또 그만큼 불행할 것 같다. 그냥 흘러가는 대로 시대에 맞게 또 나이에 맞게 연기하고 싶다.
순리에 맞게 연기하겠다는 건가?
그렇다. 브랜드도 순리는 못 이기겠지? 하하.
30대가 되고 변화가 있나?
음, 달라진 것은 별로 없다. 굳이 찾자면 연기와 삶의 균형을 맞춘 것 정도? 나이 들면서 예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조금씩 깨닫고 있다. 마음가짐, 책임감도 그렇고. 무의식중에 체감하는 것 같다.
30대의 급격한 변화 하면 추락하는 체력 아닌가?
체력 진짜 좋다. 운동을 엄청 좋아한다. 계속 복싱을 했는데 이제는 주짓수로 바꿔볼까 생각한다.
복싱이나 주짓수는 ‘사점’을 극복하는 운동 아닌가?
스파링을 하면 죽을 것 같을 때, 스치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을 때 꼭 벨이 울린다. 다음 라운드 시작하면 또 새로운 힘이 생긴다.
그 순간 희열을 느끼는 건가?
희열이라기보단 정신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몰두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복자. 복덩이 같아서 복자라고 지었다. 세련된 이름보다는 그런 이름이 좋더라.
촬영할 때 보니 복자가 애교가 많더라. 뛰어다니는 복덩이 같았다. 다른 고민은 없나?
아, 오늘 아침에 촬영 전까지 부기가 빠질까 고민했다. 내가 아침에 잘 붓거든.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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