꽝시 폭포에서 만난 여름 동화
한국의 습한 여름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 나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젊은 여행자들의 나라, 라오스로 향했다. 꾸불꾸불 비포장도로를 각국 여행자들과 섞인 채로 몇 시간을 달려 도착한 루앙프라방의 시골 냄새는꼭 내가 여기에 와 있는 이유를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다. 당시 여행 목적은 아무것도 안 하기. 잠자고, 책 읽고, 먹고, 산책하는 것이 전부였다. 잔잔하고, 평온하던 루앙프라방에서 보낸 며칠 후, 나는 문득 더 깊이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그렇게 찾아간 곳이 바로 사진 속 꽝시 폭포다. 나무와 공기, 바람, 해 등 사람의 힘으로 거스를 수 없는 자연의 존재가 제일 소중하다고 여기는 나에겐, 당시 꽝시 폭포를 감싸고 있던 온도와 색은 마치 동화 같은 느낌이었다. 라오스로 떠나오기 전, 머릿속을 빙빙 맴돌던 많은 고민은 마치 잘 왔다며 인사해주는 꽝시 폭포 앞에서 눈 녹듯 사라졌던 기억이 난다. 사진 속 예쁜 친구들마저도 동화 속 등장인물들 같았던 그해 여름의 꽝시 폭포.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Words 손동주(포토그래퍼)
한여름의 페스티벌
불과 5년 전만 해도 페스티벌의 ‘ㅍ’조차 모르던 완벽한 ‘페알못’이 여기 있었다. 더위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내게 한여름의 페스티벌은 비유하자면, 호랑이 굴에 제 발로 들어가는 느낌일 정도. 하지만 지금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어느 날 불현듯 찾아간 ‘2015 인천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의 첫 경험을 계기로 여름은 단연코 페스티벌의 계절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후로 나는 매년 여름이면 각종 페스티벌 소식에 혈안이 된다. 사진은 최애하는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불볕더위 속 어딘가에서 홀린 듯 페스티벌을 즐기던 그때의 내가, 그해의 뜨거웠던 여름이 조각조각 퍼즐처럼 떠오른다. 5년 전부터 지금껏, 한여름의 페스티벌을 놓지 못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아직 내 청춘이 남아 있음을 고하는 유일한 곳이니까.
Words 김보라(디지털 에디터)
서핑에 눈뜬 그해 여름
5년 전, 선배들과 함께 양양으로 서핑을 배우러 갔다. 처음 입어보는 낯선 소재의 불편한 웨트수트와 초보자용 두꺼운 롱보드를 어색하게 챙겼다. 수영을 할 줄 모르던 나는 얇은 리시코드를 보며 이게 생명줄일 리는 없다며 낮게 중얼거리기도 했다. 그렇게 불안함 반, 기대 반 첫 서핑을 시작했던 기억이다. 사진은 웨트수트를 입고 선글라스까지 써보며 한껏 멋을 부려보던 서핑 입문 첫날의 나. 놀랍게도 나는 이날 이후 서핑에 빠졌고, 당시 서핑을 배우던 서핑 숍에서 직원으로 근무까지 하며 몇 달을 양양에서 살기도 했다. 지금은 바쁜 일상에 치여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마음속 한편에서는 늘 파도에 대한 갈증을 느끼며 또 사진 속 당시의 여름을 추억하면서 배시시 웃곤 한다.
Words 이석영(포토그래퍼)
뜨거웠던 프러포즈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여자친구에게 평생 잊지 못할 특별한 이벤트를 해주고 싶었다. 위험하다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무작정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벤트를 위해 도전한 ‘배너 스카이다이빙(Banner Skydiving)’은 그동안 내가 즐겼던 스카이다이빙과는 달라 몇 주간의 고된 훈련을 받아야 했다. 남들은 뜨거운 여름을 피해 바다로, 산으로 떠났지만, 나는 사막과 인접한 캘리포니아 인근 외곽에서 40℃를 웃도는 날씨 속에서 두꺼운 점프수트를 입고 연습에 매진했다. 살이 접히는 부분은 전부 짓무르고, 피부는 땀띠로 엉망이 됐지만, 이곳에 온 이유를 떠올리며 교육과정을 전부 수료했다. 이벤트 결과? 그날의 뜨거웠던 프러포즈 덕분에 결혼에 골인해서 지금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Words 박수민(음악 교사)
엄마와의 첫 여행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지로 오스트리아를 택했다. 이유는 시시하게도 오스트리아 수도인 빈을 배경으로 한 영화 <비포 선라이즈(Before Sunrise)> 를 보고 반했기 때문. 그렇게 시작한 엄마와의 첫 해외여행. ‘여행’이라는 두 글자를 평생 가슴에 품고만 살아온 엄마를 위해 나는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려 했는데, 아차, 그게 엄마를 힘들게 할 줄 몰랐다. 오스트리아의 여름은 예상보다 매우 뜨거웠고, 나도 모르게 뾰족해진 마음은 쉽게 짜증을 불러와 그럴 때면 이유 없이 엄마에게 투덜대기 일쑤였다. 이따금 사진들을 꺼내 볼 때면, 엄마에게 날을 세우던 그때의 못된 내가 생각나 얼굴이 붉어진다. 물론 빈 시청 앞에서 마신 맥주 한잔, 반짝이는 호수를 따라 탔던 자전거, 붉게 물든 저녁놀을 바라보던 엄마의 모습 등 좋은 기억도 많지만, 잘못했던 기억은 후회로 남아서인지 여전히 마음이 아프다. 그리고 6년이 지난 올여름, 엄마는 아빠와 유럽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두 분은 꼭 행복한 기억만 갖고 돌아오시기를 못난 딸은 바랄 뿐이다.
Words 박진명(<고아웃 코리아> 에디터)
‘상아유치원’ 여름 원복을 입은 25년 전의 나
뜨거웠던 여름날, 유치원에서 1박 2일 캠프를 갔다. 나는 초등학교 1학년 때 잘못된 수영 강습법으로 인해 물 공포증이 생겼고, 여태껏 극복하지 못한 난제로 남아 있는데, 아마도 사진속 나는 미취학 아동일 때라 물에서 아주 신나게 놀았던 것 같다. 계곡은 아니었고, 캠핑장에 딸려 있던 염소 맛이 나는 야외 수영장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진을 보니, 예나 지금이나 꼬맹이들의 하의 실종 코디는 매년 돌아오는 여름 스타일링이 아닐는지. 수영복 위에 후드 달린 흰색 ‘상아유치원’ 여름 원복을 시크하게 툭 걸쳐서 센스 있는 코디를 완성했고, 머리는 올백으로 질끈 묶어 시원하게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꺼내 본 사진인데 내가 봐도 썩 귀엽다.
Words 이수연(CJ ENM PD)
산이 전부였던 뜨거운 내 젊은 날
10년 전이다. 대학 산악부 시절 선후배들과 함께 인천에서 첫차를 타고 북한산에 도착했다. 우리의 목적지는 북한산 인수봉 코스 중 가장 긴 구간을 자랑하는 ‘인수봉 크로니 길’. 뜨거운 태양을 머리 위에 두고 한참을 오르던 기억이 있다. 그늘 하나 없는 바위를 한여름에 오르는 일은 훈련을 넘어 고행이요, 피할 곳 없는 외길이다. 사진은 로프에 의지한 채 잠시 쉬는 시간에 찍었다. 당시 산은 내게 전부였고, 그래서 더 즐겁게 등반할수 있었던 시절이다. 사진을 보고 있으니, 등반을 마치고 다시 인천으로 돌아가는 그때의 지하철 안 풍경이 스친다. 선후배들과 함께여서 더 좋았던 뜨거운 내 젊은 날!
Words 정민수(ABC-MART 마케터)
여름, 계곡
지금도 여름을 떠올리면 당시의 시원했던 계곡이 오버랩될 정도로 사진 속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백패킹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그해 여름. 나는 친구들과 산 사진 한 장만 보고 재밌겠다며 호기롭게 강원도의 한 계곡으로 여행을 떠났다. 모두 초행길이었던 탓에 반나절이 넘게 산길을 헤매야 했지만, 힘들다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이, 모두 깔깔깔 웃으며 목적지를 향해 소란스럽게 걷던 추억이 있다. 결국에는 목적지와는 정반대 장소에서 캠핑을 해야 했지만, 지금도 그때를 떠올려보면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우리끼리 즐거웠으면 되지 않았나 싶은, 젊고 행복했던 여름날로 기억된다.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나의 여름이었던 그들과 시원한 맥주 한잔이 간절하다!
Words 이수현(여행 작가)
우연히 만난 여름 바다
3년 전 여름이다. 여름 한복판 8월에 6일간 휴가를 떠났다. 계획은 낙동정맥 트레일 1·2·3구간 트레킹. 강원도 태백시 구봉산에서 부산 다대포 몰운대로 이어지는 정맥을 따라 걷는 코스다. 우리는 당시 석포역에서부터 걷기 시작해 승부역에서 1박 야영을 하고, 이튿날에는 승부역에서 분천역까지 걸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는 3구간으로 이동 중에 예고 없는 강릉행 기차를 탔다. 계획에 없는 여행은 늘 설레는 법이다. 우리는 괘방산에서 정동진까지 히치하이킹을 했고, 정동진에 도착해서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사진은 정동진에서 강릉으로 떠나기 전염전 해변에 잠시 들렀을 때다. 계획에 없던 여행이라 수영복을 챙기지 못한 나는 팬티 차림으로 빌린 튜브를 타고 지금의 아내와 물놀이를 실컷 즐겼다. 꽤 강했던 바닷바람과 그 바람에 떠내려온 돌고래 튜브. 뜨거웠던 해변, 알록달록한 파라솔이 기억에 남는다. 올해 여름에는 일본 남알프스로 떠날 계획이다.
Words 오진곤(CORNER TRIP 제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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