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송새벽은 침착하다. 진중하다. 그래서 가끔은 질문을 되물었다. 대답이 늦게 이어지는 건 그 시간만큼 고민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나눌수록 대화가 정돈되는 느낌을 받았다. 꼭 한 발짝 뒤에 서서 말하는 사람 같았다. 그런 송새벽이 영화 <진범>에서는 긴장감 높은 연기를 선보인다. 때로는 치열하게 대립하고, 때로는 처절하게 고뇌하는 캐릭터 ‘영훈’을 연기한다. 담백하게 인터뷰를 이어가는 그를 앞에 두고, 머릿속으로는 슬쩍 감정을 요동치며 연기했을 ‘영훈’을 겹쳐 그려봤다. 어떤 모습일까? 어차피 상상이니까. 내 마음대로 그려보면 될 일인데, 쉬이 송새벽표 스릴러가 예상되지 않았다. 기대는 대부분 익숙하지 않은 것에서 온다. 송새벽이 기대됐다.
요즘 많이 바쁘겠다.
아무래도. 오늘 이야기 나눌 영화 <진범> 개봉도 앞두고 있고. 얼마 있으면 새 영화도 들어갈 예정이고. 그런데 뭐, 다들 바쁘게 살지 않나. 하하.
영화 <해피 투게더>가 작년에 개봉했으니까. 영화로 만나는 건 1년 만이다. 드라마로는 <나의 아저씨>부터 <빙의>까지. 몇 년 동안은 꾸준히 배우 송새벽을 만날 수 있어 좋았다. 연기 잘하는 배우를 자주 볼 수 있는 건 드문 일 아니겠나.
배우가 관객한테 얼굴 많이 보이면 당연히 좋은 거지. 이보다 더 좋은 시간이 어디 있을까 싶다. 그만큼 작품에도 많이 시달렸지만…. 하하.
좀 쉬었나?
나는 쉬엄쉬엄하면서 작업한다. 아, 영화 개봉이나 드라마 방영 시기로 보면 계속 일하는 것같이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촬영은 오래전부터 시작하기도 하니까.
영화 <진범>은 어떤 작품인가?
스릴러다. 엄밀히는 추적 스릴러 쪽인데, 피해자의 남편 ‘영훈’이라는 인물과 용의자의 아내 ‘다연’, 두 사람이 마지막 공판을 앞두고 진실을 찾기 위한 공조를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내용이다.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빙의>도 추적 스릴러였다. 같은 장르를 연이어 만났다.
장르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작품이다. 그러니까 캔버스는 같은데, 칠하려고 하는 색은 완전히 다른 느낌.
영화 <진범>의 인물 관계가 흥미롭다.
매우 사실적인 영화다. 두 인물의 목적이 같으니까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더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더는 이야기할 수 없고.
‘영훈’의 대본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음…. 사실 나는 ‘영훈’이라는 캐릭터보다 <진범>이 가진 이야기에 더 많은 감정을 느꼈다. 아내가 살해당했고, 모든 것을 잃다시피 했고. 그렇지만 진실을 위해 처절하게 움직이는 캐릭터인 ‘영훈’도 물론 궁금했지만, 시나리오를 볼수록 <진범>이 그려낸 사실적인 감정이나 전개, 이야기 구성에 더 몰입하게 됐다. 꼭 일기장을 보는 것같이. 그만큼 묘사도 너무 잘됐고.
일기장을 보는 것 같다는 건, 꼭 어제오늘 일처럼 생생하다는 뜻인가?
맞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자주 들었거든. 어떻게 이렇게 사실적으로 썼을까. 대사든 상황이든 전부. 그래서 일기장 보는 느낌으로 시나리오를 읽어 내려갔던 기억이다. 이런 부분이 <진범>의 매력인 것 같고.
그렇게 생생하게 묘사된 캐릭터라면, 배우로서 ‘영훈’의 연기를 예상하기가 더 쉬웠을까?
예상…. 전혀 그럴 수 없었다. 겸손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사실이다. 오히려 끝나봐야 내가 ‘영훈’을 잘 이해했구나, 연기가 나쁘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지, 시나리오 보고 아! 이런 캐릭터라면 내가 잘할 수 있겠다 싶은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감독님과 이야기하면서 내가 연기하면 어떤 인물로 다듬어질까 하는 기대감은 있지만, 이렇게 하면 되겠다, 잘할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은…, 글쎄 시간이 지나도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왜 그럴까?
나는 작품이 가진 이야기에 먼저 반응하는 편이다. 장르를 떠나서 관객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마땅하고, 재밌을 것 같고 그런 것에 흥미를 느끼니까. 캐릭터에 대한 기대나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은 그다음. 다음에 다음이고. 이건 아마 다른 배우 분들도 비슷할 거다.
촬영하면서 고정욱 감독과는 어떤 이야기를 많이 나눴나?
감독님이 연출도 하고 시나리오도 직접 썼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고 내용이 굉장히 디테일해서 놀랐다. 작은 부분까지 정교하고 세밀하게 짜여진 느낌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래서 오히려 감독님과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 것 같다. 그만큼 대본이 완벽했으니까. 서로 눈빛만 보고도 아는 느낌? 그랬던 것 같다. 근데 뭐 감독님은 다르게 이야기하실 수도 있지…. 하하.
배우 유선 씨와도 역시 눈빛만 보고도 알 정도였나.
하하. 아니, 정말 그랬다. 열 작품 정도는 같이 한 느낌이었다. 그 정도로 편했다. 처음 뵀는데 그랬다. 초반부터 호흡이 맞아들어가는 게 느껴졌으니까. 촬영할 당시에는 그 이상 좋은 게 없더라고. 정말. 편하다는 게 현장 안팎으로 친하다는 느낌도 있지만, 주고받는 연기가 딱딱 맞아떨어지니까 신기하고, 연기할 때 더 신난다.
조용한 송새벽은 또 언제 신날까. 궁금하다.
신이 난다기보다 연기하면서 좋아하는 순간이 있는데, 내가 연기를 해놓고 그다음 아무 기억이 없을 때가 종종 있다. 그때 좋더라. 모니터 앞에 섰는데 내가 연기한 기억이 없을 때.
왜? 어떨 때 그럴까. 몰입 정도겠지?
그렇겠지. 근데 또 그럴 때 감독님들이 오케이하시더라. 그래서 내가 그 순간을 더 좋아하는 거 아닐까 싶고. 감독님께 저 방금 어떻게 했죠? 하면, 오케이! 하고 넘어가시니까. 하하. 아주 좋지!
배우 송새벽의 힘 뺀 연기를 좋아한다. 힘을 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 아니까. 이제 연기가 꼭 생활처럼 익숙한 사람 같기도 하다.
아니, 익숙함은 1도 없다, 정말. 이야기가 다르고, 캐릭터가 다른데 어떻게 연기가 익숙해질 수 있을까. 다만, 이런 고민은 내가 소화해야 하는 부분이고, 그것과는 별개로 관객들이 내가 하는 연기를 편하게 느끼시면 그것만큼 감사한 건 더 없지. 또 언제나 나는 그런 배우가 되고 싶고.
아직은 그런 배우가 안 된 것 같고?
지금은 그냥 마흔한 살 남자 배우지 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고.
평가가 너무 박한 거 아닌가?
예전에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스스로에게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일까.’ 그때 내 나이가 서른다섯이었나? 그래서 내가 35점이라고 이야기했다. 나잇값 한다면 35점도 나쁜 점수는 아닌 것 같아서. 뭐 지금 41점도 나잇값만큼 연기하고 있는 거니까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점수가 오르기도 했고. 하하.
나잇값이라는 게 참 애매하다.
그때 그랬거든. 나중에 여든 돼서도 배우 하고 있으면, 80점 받을 수 있도록 잘해야 된다고. 책임감이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나잇값이 참 애매하고 어려운 부분인데, 아마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그렇다.
쉬운 게 없다.
익숙한 게 없으니까. 익숙해질 수도 없고. 근데 익숙하면 재미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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