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 조진혁
상대 공격을 흔드는 ‘헤비메탈’
큰 나무를 흔들려면 가지나 줄기와 상대해선 안 된다. 뿌리를 흔들든 땅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공략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위르겐 클롭이 구사한 ‘헤비메탈’ 축구도 이와 같다고 보면 된다. 공격에서 아무리 상대를 괴롭혀도 팀 전체를 흔들기는 어렵다. 상대가 공격하는 순간부터 압박을 해야 상대 정신까지 뒤틀어버릴 수 있다. 현학적인 말장난이 아니다. 2018-19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30라운드 현재 리버풀은 최소 실점 부문 1위다. 30경기에서 17골밖에 내주지 않았다. 최소 실점 부문 2위 맨체스터시티(이하 맨시티)는 21골을 내줬다. 리버풀은 순위는 2위지만 단 1패밖에 하지 않았다. 맨시티는 4패를 했다. 클롭 감독은 2015년 부임 이후 공격적인 부분에서도 보강을 해왔지만 수비를 더 적극적으로 보수했다.사우샘프턴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중앙 수비수 피르힐 판 다이크를 데려왔고, ‘2018 러시아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는 브라질 대표팀 주전 골키퍼 알리송 베케르도 영입했다. 클롭이 키운 좌우 풀백 앤드루 로버트슨과 트렌털 알렉산더-아널드는 리그 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이렇게 영입하고 다듬은 수비진이 올 시즌 자리를 잡으면서 안정적인 전력을 꾸릴 수 있었다. 리버풀은 리그 30경기 중에서 17경기에서 골을 허용하지 않았다. 클롭은 보루시아 도르트문트에서 구사하던 수준으로 ‘게겐프레싱(전방 압박)’을 하지는 않지만, 효과적으로 전방부터 압박하는 전술로 상대를 숨막히게 하고 있다. 리버풀이 자랑하는 3톱 ‘마누라(마네+피르미누+살라)’는 공격수인 동시에 최전방 수비수이기도 하다. 공을 빼앗긴 동시에 상대 수비수를 압박한다. 리버풀 수비 방식은 격렬하다. 적당히 자리만 잡는 수비는 리버풀에 없다. 리버풀은 맨시티보다 태글을 경기당 2.6개씩 더 하는 팀이다. 경기당 태클을 15.9개나 한다. 20위 풀럼보다도 태클을 많이 한다. ‘헤비메탈 수비’는 부작용도 있다. 모든 선수가 많이 뛸 수밖에 없기에 후반기로 갈수록 체력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크다.
클롭은 잉글랜드에 온 이후 1월부터 이어지는 겨울마다 악몽을 꾸고 있다. 클롭이 당한 패배 중 29% 정도가 1월에 나왔을 정도다. 잉글랜드는 다른 리그와 다르게 12월에 ‘박싱 데이’ 등으로 살인적인 일정을 치러야 한다. 다른 팀보다 더 역동적인 리버풀은 12월을 넘긴 뒤 다음 해 1월부터는 항상 피로 누적으로 고생했다. 리버풀은 올 시즌에도 1, 2월에 5승 4무 1패라는 부족한 성적을 거두면서 맨시티에 선두를 내줬다. 수비는 여전히 선방하고 있으나 공격 쪽에 문제가 생겼다. 힘이 아닌 기술과 속도로 상대를 무너뜨리던 ‘마누라’도 최근에는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특히 지난 시즌 리오넬 메시와 비교될 정도로 좋은 모습을 보였던 살라가 잠잠하다. 클롭도 “살라가 왜 부진한지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라고 말했을 정도다. 물론, 클롭은 단 1패만 하고도 ‘위기’라는 이야기를 듣는 게 억울할 수도 있다. 그래도 어쩌겠나. 과르디올라가 이끄는 맨시티를 이기려면 상대도 ‘괴물’이 돼야 한다. 올 시즌 우승 경쟁은 정말 ‘역대급’이다.
WORDS 류청(<풋볼리스트> 취재기자)
클롭이 ‘The One’일지도 모를 이유
리버풀은 29년째 리그에서 빈손으로 지내고 있다. 올 시즌 선두 경쟁에 대한 리버풀 팬들의 흥분은 아주 당연하다. 지금까지 클롭 감독은 역사적 사명을 아주 잘 짊어지고 있다. 올 시즌 리그 8경기를 남긴 현재, 승점 73점으로 맨시티(74점)와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리그 30경기 승점으로는 리버풀 역대 최다 동률 기록이다. 지난 시즌의 교훈은 명확했다. 수비 구멍을 막는 것이다. 2018년 1월 피르힐 판 다이크의 영입에 이어 여름 이적 시장에서 알리송 베케르(골키퍼)와 파비뉴(수비형 미드필더)를 데려왔다. 효과는 즉각적이다. 경기당 실점이 지난 시즌 1.0골에서 올 시즌 0.56골(리그 최소)로 줄었다. 현재 중앙수비수 판 다이크는 프리미어리그 ‘올해의 선수’ 수상이 유력하다.마지막 퍼즐을 맞춘 부임 네 번째 시즌이 되어서 ‘진짜 클롭 축구’가 완성되는 분위기다. 말 그대로 올 시즌 리버풀의 경쟁력은 완성도에서 비롯된다. 지난 시즌 클롭 감독은 4-3-3 시스템을 기반으로 살라, 피르미누, 마네의 스리톱을 상시 가동했다. 판 다이크 효과로 수비 빌드업이 안정된 덕분에 1, 2선의 다양성과 창의성이 대폭발했다. 중앙 원톱이었던 피르미누는 폴스나인(가짜 9번)처럼 센터서클까지 내려와서 빌드업에 관여한다. 살라와 마네는 원톱을 분담한다. 세르단 샤키리의 가세로 살라 원톱의 4-2-3-1 시스템도 혼용하게 되었다. 이제 리버풀은 상대와 상황에 따라 4-3-3, 4-5-1, 4-2-3-1로 계속 변신하는 전천후 팀이 됐다. 양 풀백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이 리버풀의 완성도를 상징한다. 최종 수비 4인을 제외한 아웃필더 6명은 서로 자리를 바꿔가면서 상대의 중앙 영역으로 좁혀 들어간다. 상대가 반응하면 좌우 측면에 넓은 공간이 생긴다. 그곳으로 트렌털 알렉산더-아널드와 앤드루 로버트슨이 과감하게 전진해 위협적인 크로스를 제공한다. 리그 30라운드(3월 10일) 번리전의 마지막 득점 장면이 좋은 예다.
라이트백 알렉산더-아널드의 크로스를 반대편 문전까지 전진한 레프트백 로버트슨이 떨궈 마네의 쐐기골을 도왔다. 상대 진영의 중앙 점거는 클롭 축구의 전매특허인 게겐프레싱 효과를 극대화한다. 공격 도중 볼을 빼앗겨도 수적 우위를 통해 곧바로 압박할 선수들이 많다. 상대 역습을 깨서 곧바로 역습하는 게겐프레싱의 기본 목적을 올 시즌 리버풀이 정의하고 있다. 클롭 체제에서 멀티 능력자들이 중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임스 밀너, 조던 헨더슨, 파비뉴, 헤오르히니오 베이날둠, 애덤 랄라나, 나비 케이타 등은 하프라인 너머 어느 포지션에서도 상황별 최적의 대응 플레이가 가능하다. 유럽축구연맹(UEFA)의 전술 리포트는 “리버풀이야말로 최근 전술 트렌드를 가장 잘 보여주는 팀”이라고 극찬했다. 남은 일정에서 우승 경험 부족이라는 심리적 문제만 극복해낸다면 리버풀이 29년 만에 잉글랜드 챔피언으로 복귀하는 장면을 볼지도 모른다. 클롭 감독이 ‘The One’이었음도 입증될 테고.
WORDS 홍재민(축구 칼럼니스트, <포포투> 전 편집장)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