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킬라가 누군지 궁금하다면, DJ 바리오닉스에게 물어보면 된다. 국내 EDM 신에서 드럼앤베이스 장르의 독보적 존재인 DJ 바리오닉스의 또 다른 자아가 정킬라이기 때문이다. 10년간 드럼앤베이스를 기반으로 다양한 음악을 선보이고, 국내를 비롯해 아시아권의 모든 페스티벌 무대에 오른 DJ 바리오닉스에게 필요한 것은 음악적으로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2017년, 그는 정킬라라는 또 다른 음악적 자아를 만들어냈다. “바리오닉스가 하는 음악으로는 시도할 수 없는 장르나 색이 많았어요. 기본적으로 바리오닉스는 드럼앤베이스만을 고집하는, 처음부터 한계가 있는 캐릭터였어요. 거기서 좀 더 자유로워지고 싶어서 정킬라를 만들었어요. 바리오닉스라는 이름으로 다른 걸 하면 되지, 굳이 새로운 자아까지 만들 필요가 있냐고도 하는데 바리오닉스를 좋아해주는 사람들의 고집스러운 성향에 반하는 음악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어요. 음식점을 예로 들면 중국집에서 갑자기 파스타를 팔면 이도저도 아닌 가게가 되잖아요. 그래서 아예 그 옆에 다른 가게를 차린 거죠. 바리오닉스 안에서 어중간하게 다리를 걸치는 느낌은 싫었어요.”
스스로 설정해둔 음악적 제약에서 벗어나서일까? 정킬라의 음악에는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장르가 혼재되어 있다. 정킬라가 만드는 사운드나 멜로디 또한 바리오닉스의 것과는 전혀 다른 색이다. 정킬라의 음악은 마치 강하고 둔탁한 사운드를 구사했던 바리오닉스라는 동굴에서 나와 빛을 보고 사람들을 마주하면서 느낀 감정을 담은 것 같다. 부드럽고, 따뜻하고, 밝다. “정킬라의 음악은 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때 좋은 생각을 하도록 도와주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아직 색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지만, 누군가 정킬라의 음악이 뭐냐고 물으면 ‘메시지’라고 답할 거예요. 지금은 정킬라를 통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나 메시지를 전하고 있거든요. 최근에 발표한 ‘Light It Up’이 서울의 밤풍경을 보면서 느낀 감정을 표현했다면, 앞으로 나올 곡에는 지금 저의 고민을 담았어요. 제가 지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어떤 것 때문에 이런 음악을 하는 건지 반문하면서 만든 곡이에요. 바리오닉스의 음악을 할 때는 한 번도 생각한 적 없는 것들이에요.”
전혀 다른 색을 지닌 두 자아로 음악을 만들고 있지만, 듣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강요할 생각은 없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대로 살고자 음악을 시작했던 자신처럼 바리오닉스나 정킬라의 음악에 빠지는 건 듣는 사람의 자유다.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음악에 눈치 보지 않고 몸을 들썩이는 것,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에 정킬라의 이름이 있는 것, 이를 통해 바리오닉스의 한계를 넘어 좀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정킬라가 음악으로 꾸는 꿈이다. 그래서 우선 지금은 정킬라로 사는 중이다. “정킬라를 만들면서 자아가 여러 개가 될 수 있음을 처음 알았어요. 바리오닉스로 활동할 때와 정킬라로 활동할 때 제 모습이 정말 다르더라고요. 인터뷰를 할 때 대답도, 표정도, 태도도 달라요. 사실 바리오닉스라면 이런 옷도 안 입을 거예요. 오늘 바리오닉스 인터뷰라면 다 찢어진 옷에, 체인이나 액세서리도 주렁주렁 걸치고 나왔을걸요? 정킬라일 때는 왠지 친근하고 친절해지는 것 같아요. 스타일도 미니멀하고 담백해지고요. 일부러 의도한 건 아닌데, 자연스럽게 두 자아가 형성된 것 같아요. 어쨌든 오늘은 정킬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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