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이 무척 나긋나긋하시네요.
처음 만나서 그렇습니다. 사람을 처음 만나면 누구든 좋은 인상을 주려고 하잖아요. 그런 거죠.
타인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도 싫어하지 않나요? 드라마 <도깨비> 촬영 때 김소현에게 “네 이년”이라고 말하는 대사를 굉장히 힘들어했다고요.
그랬죠. 근데 누구라도 그럴 겁니다. 좋은 사람에게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잖아요.
자신에게 엄격한 편인가요?
다른 사람에게 엄격할 때가 있고 나 자신에게 나긋나긋할 때도 있어요.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에요. 가끔 설거지 거리를 쌓아놓기도 하고, 바닥에 먼지가 보여도 ‘저 정도면 한 달 후에 해도 되겠다’ 하면서 지나치고요.
카메라 앞에선 천연덕스럽지만, 평소에는 낯을 좀 가린다더군요. <SKY 캐슬>의 비하인드 방송에서도 그런 모습이 보였어요. 어떤 사람들과 쉽게 편해지나요?
붙임성 좋은 사람들요. 그런 사람들과는 계속 소통하게 되고 조금 더 친하게 지내요. 윤세아 배우가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사실 이런 사람들이야 누구와든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들이죠.
<SKY 캐슬>에서 윤세아와 가장 많이 호흡을 맞췄어요. 최대치의 교감을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나요?
노력했다기보다 처음부터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 주어졌어요. 초반부에 함께 왈츠 추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둘이 처음 만나 가장 먼저 한 게 왈츠 교습이었거든요. 왈츠는 두 사람이 딱 붙어서 추는 춤이에요. 골반을 붙이고 추죠. 데뷔 초 연극 연습하던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일단 만나 부딪히면서 합을 맞춰본다는 점에서요. 촬영하는 동안 윤세아 배우 덕을 참 많이 봤습니다. 내가 미처 파악하지 못했던 차민혁에 관해 자주 이야기해줬어요.
차민혁은 극단적인 인물입니다. 뭐든 과하고 넘쳤어요. 차민혁의 면면 중에 아주 싫은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가족이라는 이유로 타인을 제 뜻대로 부리려고 하는 점이죠. 현실에서는 차민혁과 같은 사고방식이나 시도가 성공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그런 면이 굉장히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죠.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가족이 제 뜻과 달리 반응하면, 방식이나 전략이라도 바꿔봐야 하는데 차민혁은 그렇게 하지도 않았어요.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싶었죠.
한편 노승혜가 차민혁의 밥을 차리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땐, 밖에서 식사를 해도 될 텐데 꼬박꼬박 집에 들어와서 그녀가 내어주는 컵라면을 먹었어요.
그것도 왜일까 싶었어요. 꼬박꼬박 들어와 꾸역꾸역 컵라면을 먹는 이유가 뭘까. 결국 차민혁은 자기가 만든 틀, 규칙, 시스템 안에 자신까지도 밀어 넣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너희도 이 시스템을 지켜’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차민혁을 연기하면서 어떤 사람이든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는 게 얼마나 허망하고 말이 안 되는 일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 모두에게 그런 욕구가 있잖아요. ‘저 사람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SKY 캐슬>에서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한 인물은 누구였나요?
아무래도 김주영이에요. ‘판타지’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어요. 김주영의 존재가 드라마에 동화 같은 느낌을 불어넣은 것 같습니다. 김주영은 동화를 찢고 나온 마녀고, 이에 맞서는 한서진이 보여주는 둘의 관계가 재미있었어요. 극에 몰입도를 부여한 건 단연 두 캐릭터예요. 인간이 무엇을 욕망함으로써 자신과 주변 인물들, 혹은 상황을 얼마나 왜곡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봐요.
쟁쟁한 연기자들이 모인 현장이었잖아요. 다른 배우의 연기에 매료되는 순간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많죠. 특히 염정아 배우의 연기가 엄청났어요. 내 연기는 무겁고 질척이는 느낌인데, 염정아의 연기는 굉장히 경쾌하더라고요. 고수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가벼움이었어요. 아주 간단한 동작으로 경쾌하게 해내죠. 어마어마해요. 김서형이 맡은 김주영은 처음 대본을 접했을 때 가장 해보고 싶은 역할이었는데, 김서형 배우의 연기를 보고 있자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싹 사라지더군요.
극의 결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차민혁의 결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자면, 개인적으로는 그가 노승혜의 뜻을 따르기로 한 후에 사실 좀 우울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말한 건 지키려는 사람이니까 어떻게든 약속을 지키겠지만, 차민혁 같은 사람에게 과연 쉬운 일일까요? 그는 그런 변화를 바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습니다. 머리로는 수긍해도 본심과는 충돌했을 거고, 꽤 저항했을 거예요. 나는 차민혁이 가족과 계속해서 떨어져 사는 것도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물론 작가님이 가족의 모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결말을 단연 존중합니다.
대부분 사람들이 <태양의 후예>에 등장한 김병철부터 기억합니다. 혹은 <도깨비>와 <미스터 션샤인>에서의 김병철을 기억하고요. 이 작품들 이전의 시간이 궁금해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나요?
중앙대 연극과를 졸업했고 2001년에 연극 <안톤 체홉>으로 데뷔했어요. 2003년부터 몇몇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 시작했죠. 연극도 좋았지만 처음부터 영상 연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에 어느 순간 적극적으로 영상 오디션에 참여하면서 기회를 잡으려 노력했어요. 그렇게 해서 처음 캐스팅된 영화가 <알 포인트>예요.
“차민혁을 연기하면서 어떤 사람이든 내 마음대로 조종하려 한다는 게 얼마나 허망하고 말이 안 되는 일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2011년에는 <롤러코스터>의 배우로도 활약했죠. 요즘 웹 상에서 그 시절의 영상이 꽤 돌고 있어요.
<롤러코스터>가 핫했던 시절입니다. 지금의 tvN이 개국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프로그램인 것으로 알아요. 하하. 한국에서 보기 힘든 코미디였죠. 영국 쪽 코미디가 좀 세잖아요. 영국 코미디를 한국에 이식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한 프로그램이거든요. 나도 그런 코미디를 해보고 싶어서 참여했어요. 보는 이의 시야를 넓혀줄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반응은 그다지 안 좋았죠.
단역을 거듭하며 출연 작품을 꽤 많이 쌓았더군요. 그래도 갈증이 있었겠죠. 고정 수입도 필요했을 테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나는 ‘연기를 이렇게 해보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있지 못한 것 같아’라는 두 가지 생각을 늘 오가요. 내가 원하는 연기를 해내기 위해 배우고, 팀을 찾고, 선생님을 찾아보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조바심도 났죠. 이런 식으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역시 연기가 재미있었어요.
쉴 땐 주로 집에 있다던데, 뭘 하며 지내요?
인터넷 서핑이요. 하하. 내 이름을 검색해보기도 해요. 이것저것 찾아보면서 놉니다. 뒷산에도 올라요. 장비 다 갖춘 등산은 아니고, 한두 시간 정도 가볍게 해요. 최근에는 다음 작품의 대본을 주로 봤고요.
곧 방송될 드라마 <닥터 프리즈너> 말이죠? 교도소의 의료 과장 역을 맡았더군요.
맞습니다. 어느 교도소의 의료 과장인 선민식이라는 인물을 연기해요. 사회적 권력에 절실히 매달리는 사람이에요. 촬영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는데 초반 분량이 많은 역할이라 <SKY 캐슬> 촬영 끝나자마자 바로 들어갔어요.
남궁민 배우가 맡은 역할과 대립하는 캐릭터라죠?
계속 대립해요. 극의 진행 속도가 꽤 빨라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는 여러 등장인물들이 얽히고 충돌하는 이야기가 속도감 있게 펼쳐질 거예요.
어느 인터뷰에서 “장기적인 목표가 없다”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목표나 성취로부터 자유로운 편인가요?
장기적인 목표라는 건 추상적이잖아요. 책상 위에서 세우는 것이고요. 그런 건 결국 생각한 대로 잘 안 되더라고요. 연기 지망생들이 ‘평소와 다른 삶을 살고 싶다’는 기대를 많이 하는데, 나는 바라는 삶을 연기 활동하며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어요. 배우가 된다는 게, 다른 삶을 사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고요.
김병철이 배우의 삶을 사는 이유는 뭔가요?
연기가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아요. 연기하는 배우 그 자신을 변화시킬 수도 있고, 연기를 보는 사람들을 변하게 할 수도 있고, 세상을 조금 바꿀 수도 있다는 것. 연기는 실제 세상에 일어나는 변화에 나를 던져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인간을 표현하는 일이죠. 누군가는 그림으로 혹은 글로, 음악으로 표현하는 일을 한다면, 나는 연기로 삶을 표현하고 싶어요. 내게는 그 방식이 잘 맞아요.
본인에게 가장 적합한 표현 방식이라는 뜻인가요?
적합하다기보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라는 느낌이에요. 연기의 원초적인 수단은 말과 행동이잖아요. 무엇보다 직접적인 방식이라고 느껴져요. 그래서 좋습니다. 직접적으로 바라보고 표현할 수 있어서요.
데뷔한 지 15년, 나이로는 40대 중반이 되었습니다. 나이 들수록 더 편하고 좋다고 느끼나요?
더 좋고 나쁜 나이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몸은 예전 같지 않죠.(웃음) 예전처럼 더 활력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어떤 것을 규정할 수 있을까요?
나이와 사회에서의 위치, 성숙도, 수행 능력 등은 별 관계가 없는 것 같아요.
이쯤 되니 조금 쉬워진 일 같은 건 있어요?
글쎄요. 면도는 좀 쉬워졌어요. 하하. 원래 면도를 참 못했거든요. 늘 베이고 피나는 게 일이어서 계속 연구했습니다. 이제야 요령이 생겼어요. 지금은 면도기를 2개 씁니다. 날 면도기와 전기면도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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