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를 보다 보면 종종 ‘동네 한복판에서 로켓도 쏘아 올리는 나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는 일본이 주택가 사이사이 중소 공장에서 로켓 부품까지 만들어내는 기술 산업 국가라는 의미인데, 일명 ‘마을 공장’이라고 불리는 중소 공장들의 종류는 아주 다양하다. 나사못 같은 작은 기계 부품부터 인쇄 공장, 장난감 공장, 두부 공장, 의약품 개발 공장 등이 대를 이어가며 한 동네에 자리한다. 서울의 을지로나 청계천 일대를 떠올리면 쉬운데, 크게 다른 점은 장르에 따라 한 지역에 모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절정기였던 30여 년 전에 비하면 크게 줄었지만, 아직도 많은 마을 공장들이 대를 이어가며 일본 산업을 지지하고 있다.
종로구의 약 두 배 면적인 아다치구에는 공장이 2천 개 이상 있다. 직원을 5명 이상 고용하고 가동 중인 공장만으로는 도쿄 23개 구 내에서 2위를 차지한다. 1위는 4천5백여 개의 오타구로, 공장이 9천여 개에 이르던 시기도 있었다고. 그러던 중 <아다치 공장남자>라는 사진집이 출간돼 새삼 화제를 모았다. 깔끔하고 산뜻한 청년들이 진지하게 일하는 모습을 담은 이 사진집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아다치구의 편견을 깨는 데 큰 몫을 했다. 공장 가동 수 2위임에도 불구하고 아다치는 공장 제조업으로 유명한 동네는 아니었다. 치안이 좋지 않아 아다치구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는 성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었다. 하지만 사진집에 등장하는 아다치의 공장 남자들은 건강미 넘치는 반듯한 겉모습은 물론 일에 대한 신념, 의지, 애정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부터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았던 청년,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에서 큰 보람을 느끼지 못한 청년이 주택가 작은 공장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았다. 그들은 거대한 기계 속에서 자신이 만든 부품 하나가 제 역할을 하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직원 수 1명부터 많아야 20명 정도에 불과한 소규모 공장들은 생산량이나 인건비 면에서 당연히 대기업 대형 공장을 따라갈 수 없다. 작은 마을 공장에서 자동차나 비행기 부품을 생산하는 것이 일본 제조업의 특별함이었지만 고령화와 인력난, 중국산 저가품에 밀려 많은 공장들이 문을 닫았다. 남은 공장들은 그러한 위기에서 생산량을 늘리거나 단가를 낮추기보다, 단 하나를 만들더라도 완벽한 품질로 경쟁하는 것을 택했다. 일본의 장인 정신이 작은 마을 공장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건축, 디자인, 공예, 그리고 각종 첨단 기술 등 ‘메이드 인 재팬’의 가치가 세계에서 높이 평가되는 이유다.
사진집 <아다치 공장남자>는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를 카메라 렌즈에 담았다. 그러나 사실은 사람이 놓인 공장이라는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 길 건너 이웃 공장 안에는 어떤 풍경이 펼쳐져 있는지,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만들고 있는지를 다정하게 소개한다. 요즘 아이들이 ‘메이드 인 재팬’의 신념을 다음 세대에도 이어갈 수 있도록 공장의 매력을 전하는 것이 이 사진집의 진짜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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