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wani.glass
양유완은 블로잉 기법으로 유리를 만든다. 규격화되지 않은 형태의 유리를 만든다. 파이프 끝에 숨을 불어넣어 오직 수공예로만 가능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비정형화된 형태의 유리를 만든다. 그리고 빛은 그 안에서 산란된다.
첫인상은 훈훈함이었다. 작업실 가운데 위치한 가마가 내뿜는 열기가 실내를 따뜻하게 데우고 있었다. 양유완 작가는 가마를 열어 투명한 액체 상태의 유리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가마 속에 담겨 있는 액체를 유리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싶었다. 투명한 엿물 같은 형태의 유리가 가마의 열기를 받아 붉게 빛났다. 양유완 작가는 1년 내내 가마 온도를 1,250℃로 유지한다. 달궈진 가마 옆으로는 유리를 다듬고 가공하는 가스 방식의 가마가 있고, 맞은편에는 성형한 유리를 천천히 식히는 가마가 있다. 여러 대의 가마에서 나오는 열기는 한겨울임을 잊을 만큼 작업실 공기를 데우고 있다. 양유완 작가가 내어준 커피와 다과를 마시며 촬영을 기다렸다. 창 앞에 놓인 유리 작품을 통과한 햇살이 산란되며 천장과 벽에 오묘한 무늬를 새겼다.
양유완의 작업 방식은 이탈리아 전통 블로잉 기법이다. 원통형 쇠파이프 끝으로 가마 속 녹아 있는 유리를 말아 꺼낸 다음 입으로 불어 형태를 확장하고 쇠파이프를 돌려가며 성형한다. 받침대 위에 쇠파이프를 가로로 길게 뉘어놓고 돌리는 모습은 흡사 물레를 돌리는 도예가나 음율을 느끼는 피아니스트를 연상시킨다. 그녀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쇠파이프를 돌리며 유리를 다듬었다. 숙련된 감각은 때론 음악처럼 다가온다. 양유완은 여섯 겹으로 접은 신문을 물에 적셔 둥글게 부풀어 오른 유리의 형태를 다듬었고, 토치로 마무리하였다. 늘어진 엿가락 같았던 유리는 불과 몇 분 만에 얇고 단단한 성질로 바뀌었다. “유리는 차가운 이미지인데, 작업하는 동안은 물컹하고 뜨거워요. 파이프를 회전하지 않으면 흘러내려서 작업을 시작하면 쉬거나 다른 일을 하는 건 불가능하죠. 매우 빨리 경화되기에 20~30분 안에 컵 하나를 성형해야 해요.”
유리는 그 아슬아슬한 소재의 특성처럼 다루는 것이 쉽지 않다. 성형을 마친 뜨거운 유리는 15시간 동안 서서히 식히며 굳혀야 표면에 금이 발생하지 않는다. 형태는 빨리 만들어지지만 굳혀가는 과정은 길다. “중요한 건 타이밍이에요. 균일한 온도를 유지하며 작업해야만 모양이 흐트러지지 않죠. 온도와 시간을 적절하게 맞추며 숨을 불어넣을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해요. 시간의 구애를 받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죠.” 양유완 작가가 말했다. 시간과 온도를 맞춰야 하는 작업 특성상 작가의 의도를 완벽히 실현하기란 쉽지 않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정해진 규격의 상품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공장의 일이라면, 공예가에게 완벽한 형태란 무엇일까? “때로는 실수가 발견으로 이어져요. 의도와 다른 결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해요. 그럴 땐 디자인의 방향을 다시 고민하게 되죠. 세상에 하나뿐인 물건을 만드는 일이라 공예는 실패가 없는 작업이라 생각해요.” 그녀의 작업은 시험과 기록에 가깝다. 서로 다른 종류의 것들을 조합하는 시도는 실패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새로운 발견이며, 그날의 기록이 된다.
한쪽 벽을 가득 메운 작품들을 보며 몇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다. 그녀는 채색이 없는 투명한 유리들을 사용했다. 호박색이나 초록색 유리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투명한 유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유리 안에 담긴 것이 보여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작업의 완성이라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녀는 유리가 가진 본연의 성질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외부에 드로잉을 하거나 돌이나 황동 같은 소재를 섞으며 다양한 시도도 감행한다. “소재 간의 융합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컵에 돌이 붙거나, 유리에 유약을 이용하는 작업을 해요. 동양과 서양, 투명과 불투명, 모던과 클래식 등 다양한 융합을 시도하고 있어요.” 또 다른 특징으로는 비정형성이다. 일정한 길이와 각도를 지닌 선들이 완벽한 대비를 이루는 기성 제품들과 달리 그녀의 작품은 구부러지거나 비대칭적인 형태를 이룬다. 그 독특한 형태는 그녀의 작업을 가장 잘 설명하는 예시일 것이다. “일정한 모양을 만드는 건 기계가 할 수 있어요. 손으로 만든 흔적이 두드러지는 것이 공예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똑바르고 정형화된 것보다는 비정형적인 형태를 이루려고 해요. 또 유리의 특성이 투명함이라 빛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중요해요. 비정형적인 형태에서 빛의 굴절은 더욱 드라마틱하고 아름다워지거든요.” 정오가 되자 컵의 굴곡을 타고 흩어진 햇빛이 작업실 천장에 더욱 진한 빛을 그렸다.
유쾌한 이야기를 하던 그녀는 작업을 시작하면 신속하고 정확한 움직임과 진지한 눈빛을 보였다. 뜨거운 유리를 재빨리 다듬어야 하기에 동선은 효율적이고, 작업은 높은 집중력을 요구했다. 액체 상태의 유리를 길어 올려 컵 형태를 만들고 기포를 넣는 그녀의 작업을 보며 이탈리아 무라노의 유리 공예 장인들이 오버랩됐다. 그곳에선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모두 저마다의 감각으로 자기 세계를 빚고 있었다. 마치 양유완처럼. “저 스스로 장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어요. 하지만 매일 유리를 빚으며 수련하고 있어요. 오늘은 어제보다 하루 더 감각이 쌓인 거죠. 유리에 대한 이해와 감각은 시간이 해결해준다고 생각해요.” 공예 작업이 몸에 새겨지는 것만이 아니라 오늘날 장인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분야와의 융합과 시도라고 하였다. 그녀는 납작한 대리석으로 만든 유리컵 손잡이를 잡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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