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gjoo_im
임정주는 물건을 만든다. 물건의 본질에 수많은 질문을 던져 완성하는 그의 물건들은 언뜻 보면 3차원 그래픽 같고 가까이 들여다보면 사용자의 감각에 예민하게 맞춘 인체공학적 제품 같다.
지난해부터 임정주라는 작가와 브랜드인 물건 연구소를 분리하는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다고?
물건 연구소에서 작품보다 상품 위주의 물건을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오류가 발생했다. 혼자 만들며 공급하니 전혀 생산적이지 않았다. 상품에 맞는 가격을 매길 수 없었다. 소비자와 먼 상품이 된 거다. 작가라는 타이틀을 좋아하지 않지만, 물건 연구소와 나의 작업을 분리할 필요를 느꼈다. 작가로서는 하나의 물건에 집중해 한층 질 높은 물건을 만들고, 물건 연구소에서는 각 물건에 맞는 방식을 따라 물건을 생산하려고 한다. 작년 11월부터 물건 연구소에서 다룰 만한 물건들을 오픈 스튜디오라는 형식으로 풀고 있다. 주물로 제작한 향로가 이에 속한다. 나의 기획과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빌려 생산성이 높은 물건을 만들어봤다.
물건 연구소를 열 때 삶에 필요한 물건을 만들겠다는 원칙을 세웠다. 쓰임새를 고민하는 일은 물건 만드는 모든 사람에게 기본이 아닌가. 임정주가 물건의 쓰임새에 던지는 질문은 좀 달랐나?
접근 방식은 같다. 단지 나는 모든 물건을 직접 만들었다. 주로 아내가 나에게 필요한 물건을 요청하면서 제작이 시작됐다. 사실 디자이너의 관점에서만 ‘삶에 필요한 물건’을 생각하다 보면 뻔하다. 진짜 필요한 물건은 만들지 못할 거다. 아내의 요청이 오면 스케치를 시작했고, 그다음으로 내 색깔에 맞는 비례와 형태를 찾아나갔다.
물건 연구소라는 이름을 걸고 물건을 만드는 동안 연구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물건. 모든 물건은 제각기 기능이 있는데, 그 기능을 물건의 목적에 맞게 연구하고 싶었다.
어떤 결과를 얻었나?
물건 연구소를 시작한 당시에는 어떤 물건의 기능이나 목적을 ‘형태’가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메종&오브제 전시에서 선보인 ‘레스트(Rest)’를 계기로 무너졌다. 목적 없이 만든 물건에서 비례를 발견하고 기능을 찾게 된 거다. 덩어리의 크기만으로도 기능이 생성될 수 있음을, 목적 없는 형태에 기능이 자연스럽게 따를 수 있음을, 보는 사람에 의해 용도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인지하게 됐다. 그 이후 구체적인 기능을 부여하지 않는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전 온양에서 진행한 전시 <논엘로퀀트(Noneloquent): 기능적이지 않은>이 그러한 맥락에 있었다. 물건 연구소는 기능을 연구하는 브랜드인데, ‘기능적이지 않은’ 물건들을 만들어 전시했다.
온양민속박물관의 40주년 특별 기획 전시 파트에 작가로 참여하게 됐다. 주어진 주제는 ‘유산의 일상’. 유산과 유물이 일상으로 들어온 예를 디자인으로 풀어보자는 것이다. 민속박물관은 국립중앙박물관 같은 곳과 전시품의 결이 아주 다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귀족이나 왕족이 지녔던, 미적이고 기술적으로 완성된 물건들이 있다면 민속박물관의 전시품들은 모두 개인의 필요성을 충족하는 삶의 물건들이다. 누가 만들어주지 않아 스스로 만든 것들도 많다. 그러니 타인이 봤을 땐 원래 기능을 상상할 수도 없는 물건들이 즐비하다. 동묘를 자주 가는데, 내 눈에 촛대로 사용하면 딱 좋을 물건이 보여서 가져다가 촛대로 썼다. 그런데 그게 고드레였다. 화문석 만들 때 대나무 살에 실을 꿰지 않나. 그 실을 감는 실패로 쓰는 게 고드레다. 엄청난 충격이었고, 사용하는 사람이 필요에 의해 어떤 물건을 만들어도, 바라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점을 깨달았다. ‘논엘로퀀트’는 그러한 주제로 진행한 프로젝트다.
20개의 통나무를 각각 다른 형태로 깎고 모두 까만색으로 칠해 전시장에 펼쳤더라. 장관이었다.
모두 스스로 설 수 있는, 다른 형태의 입체이되 높이와 폭만 통일했다. 닮았지만 같지 않은 오브제가 도열되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스툴을, 사이드 테이블을, 혹은 2개 이상 놓고 유리를 올려서 쓰는 테이블을 연상하며 쓰임새를 찾아내더라. 프로젝트 ‘논엘로퀀트’는 올해에도 이어 진행할 것이다. 총 1백 개를 만들 생각이다. 일부는 삼청동 백미당으로 들어간다. 거기선 스툴로 쓰인다.
‘논엘로퀀트’ 역시 나무가 재료다. 나무로 계속해서 작업 중이지만 목수, 목공예가로는 소개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임정주를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
크래프트 디자이너. 디자이너인데 직접 만드는 사람. 나는 한국에서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런던에서 제품 디자인을 공부했다. 런던에는 직접 물건을 만드는 디자이너들이 정말 많다. 디자이너 출신인데 금속을 다룬다든지, 나무를 만진다든지. 한국으로 돌아와 물건 연구소를 시작하면서 역시 그런 개념으로 일하고 있는데, 한국에서는 뭘 만든다면 ‘공예가’, 나무를 만진다면 ‘목수’, 금속을 다룬다면 ‘금속공예가’, 기획만 하고 외주로 생산을 맡기면 ‘디자이너’라 부르더라. 그래서 나는 애매한 지점의 사람이 됐다. 물론 명확한 분류 안에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만드는 디자이너, 크래프트 디자이너라고 알려지면 좋겠다. 만드는 일의 시작이 나무였고, 나무가 여전히 어려워서 하고 있는 것뿐이다.
지금껏 공예가라고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으로 물건을 만들고, 하나의 재료만 평생 탐구하는 사람으로 인식됐다. 이제 그런 시대에서 조금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무를 다루면 목공예가, 아크릴로 작업하면 아크릴 공예가. 이런 단어로는 더 이상 물건 만드는 작업자를 정의할 수 없다. 분류 자체가 무너진 지 오래다. 물건 만드는 사람이 탐구하는 재료란 그 사람의 개인적인 삶에 의해 결정된다. 옻칠이든 금속이든 나무든 그들의 생활 반경, 환경 내에서 접하고 배울 수 있었기에 그 재료를 만지기 시작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내가 나무 작업을 시작한 이유는 콘크리트 몰드를 만들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3D 프린터를 쓰기는 싫고 직접 만들고 싶어 목선반 제작법을 배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박정화 선생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나무 만지는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나무 작업을 시작한 것이지 나무 장인이 되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다.
장인 정신이라는 개념도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다.
확실히 그렇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지금 세대의 장인 정신이란 각자의 생활을 기반으로, 직업적으로 반복하는 작업 속에서 발현되는 것이라고 본다. 단지 특정 재료를 평생 다루며 물건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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