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T라는 바벨탑
2018년은 홈 IoT 플랫폼이 국내 소비자에게 본격적으로 소개된 해였다. 단적으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모델명 뒤에 ‘스마트싱스’나 ‘씽큐’가 붙은 제품을 대거 출시했다. 똑똑해 보이기는 하는데 실제 리뷰해보니 예전 제품들과 큰 차이가 없다. 생각해보니 차이가 있다. 모델명이 길어졌고 가격이 더 비싸다. 사실 이런 홈 IoT 가전은 중국의 샤오미가 가장 방대한 플랫폼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부터 공기청정기, 선풍기, 가습기 등 2014년 이후 샤오미가 내놓는 모든 모델은 샤오미의 IoT 플랫폼(Mi Home)을 탑재하고 있다. 세부 설정은 앱을 통해 이뤄지므로 제조 단가를 낮추는 데 IoT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식이다.
그러나 국내 제품들은 반대다. 이미 온갖 기능을 제품 자체에 달아놓고 리모컨도 제공하며 여기에 추가적으로 IoT 플랫폼을 붙여놓았다. 한국다운 정(情)과 친절이 느껴진다. 가격만 빼고는. 그런데 이런 홈 IoT 전략은 의외의 효과가 있다. 모델명에 스마트싱스나 씽큐가 붙은 제품을 하나 사면 다른 제품들도 깔맞춤하고 싶어진다. 스마트싱스나 씽큐가 없는 모델을 사면 왠지 찝찝하다. 스마트한 소비자가 아닌 것 같고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기도 하다. 소비자 허영심을 절묘하게 자극한다. 그래서 홈 IoT가 적용된 제품을 잔뜩 구입하면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난다. IoT 플랫폼이 모두 제각각이라 스마트폰에 이런저런 앱을 잔뜩 깔아야 한다.
IoT 플랫폼만 해도 삼성전자, LG전자, SKT, KT, LG 유플러스, 구글, 카카오, 네이버 등이 제각각이다. 샤오미나 다이슨, 소니 등의 해외 IoT 플랫폼까지 포함하면 카오스가 따로 없다. 여기에 인공지능 플랫폼도 따로 논다. 구글 어시스턴트, 삼성 빅스비, 애플 시리, 아마존 알렉사, 추가적으로 코타나, KT 기가지니, SKT 누구 등까지 합류하면 IoT 센서와 인공지능이 생활을 편리하게 하는 건지 복잡하게 만드는 건지 분간이 안 간다. 아무리 좋은 기능도 소비자가 그 기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다 배울 수 없으니 허상에 불과하다. 지금의 IoT는 소통되지 않는 서로 다른 언어와 플랫폼으로 21세기의 거대한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다. 불행한 것은 내가 구입하는 바벨탑이 허상인지, 아니면 실체인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다.
WORDS 김정철(IT 칼럼니스트)
IoT는 무엇을 두고 달려왔나
세상의 모든 것을 인터넷으로 연결한다는 의미의 사물인터넷은 IT를 넘어 사람들이 ‘전자제품’이라는 개념과 함께 상상했던 것의 이른바 ‘완결판’이었다. 통신 기술뿐 아니라 반도체, 센서 등의 기술이 충분히 작아졌고, 또 싸지면서 손에 닿을 수 있는 기술이 됐고, 이는 그동안 세세하게 분류되던 ‘홈 오토메이션’이나 ‘스마트 헬스케어’ 같은 기술들을 아우르는 커다란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지금 사물인터넷은 얼마나 왔을까? 일단 사람들 사이에서 관심이 떨어진 것은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이미 그 자체로 구닥다리 기술 이미지까지 덧입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기술은 더 발전했고, 대중적 이해도도 더 높아졌지만 오히려 제품들은 사물인터넷에서 한 발짝 물러나 있다. 뭐가 잘못된 걸까?
그동안의 접근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다만 기술과 사용 방법 외에 더 필요한 것들이 있었을 뿐이다. IoT에 대한 불신은 바로 ‘사물인터넷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다. 어떤 기술은 수요에 의해서 태어나지만, 또 어떤 기술은 쓰일 곳을 찾아야 한다. IoT는 무르익기 전에 ‘환상’이 먼저 팔리기 시작했다. 모든 기술은 실패를 반복하며 시장에서 자리 잡게 마련인데, 그 경험이 자리 잡기 전에 이미지의 몸값이 치솟았고, 대중은 감정을 미리 다 소비했다. 결과는 당연히 실망인 경우가 많았지만 그 안에서 추려낼 가치는 충분히 많았다.
또 하나는 세상이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 바로 규제다. IoT는 결국 우리 주변의 온갖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데서 그 가치가 나온다. 하지만 누군가는 편리와 정보를 맞바꾸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위치, 의료, 금융 정보 등을 누군가가 함부로 모으고 분석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에 맞부딪칠 수밖에 없다. 규제는 기술이 세상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떻게 자리 잡을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기도 하다. 기술은 ‘더 할 수 있다’고 하는데 세상은 아직 두려운 부분이 남아 있다. 실제로 해보기 전에는 몰랐을 뿐이다. 모든 기술과 소비는 보이지 않는 가치를 통해 성장한다. IoT는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IoT에서 거창함이 빠지는 지금이 더 본질에 다가서기 쉬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술 하나 자리 잡는 게 이렇게 어렵다.
WORDS 최호섭(IT 칼럼니스트)
혼수 속의 함정 IoT
당연한 소리지만 가전제품은 비싸다. 그리고 기왕이면 10년 쓸 것을 산다. 집에서 밥을 얼마나 먹는다고, 소형 냉장고 하나면 충분할 것 같은데 결혼을 하고 보니 타의 반 자의 반 냉장고는 크고 오래 쓸 수 있는 것으로 고르게 된다. 냉장고뿐이랴? 단무지만 먹는데도 김치냉장고를 사야 한다. 하물며 세탁기는 또 어떠한가? 기왕이면 이불 빨래도 척척 할 수 있는 대용량으로 구입하고, 같은 사이즈인 전기건조기도 사야 한다. TV는 거거익선이라 하였던가? 여기에 첨단 미래 사회의 맞벌이 부부를 위한 각종 로봇 메이드들도 구입해야 한다. 로봇청소기나 식기세척기 등 참 많다. 집 안 스피커들은 값싸고 귀여운 AI 스피커들이다. 기본 혼수라 불리는 가전제품들만 설치해도 집 안이 미래적으로 변한다.
대부분의 가전제품은 AI를 품었다. TV나 스피커나 음성 비서를 호출해 작동한다. 회사에서 스마트폰으로 로봇청소기가 제대로 청소하고 있는지 살펴보며 감시하기도 한다. 로봇을 감시할 때는 죄책감이 조금도 들지 않아서 마음이 편하다. 세탁기나 냉장고 상태도 확인한다. 하지만 이런 기능들을 이제는 잘 쓰지 않는다.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굳이 스마트폰으로 세탁기를 돌릴 이유가 없다. 전기건조기도 마찬가지다. 가전제품을 구입할 때는 기왕이면 10년 쓸 것, 좋은 것들만 고르다 보니 우연찮게도 대형 가전에는 모두 IoT 서비스가 탑재됐다. 원한 것은 아닌데 하나같이 있다. 그리고 하나같이 다르다. 스마트폰 하나면 집 안의 불을 켜고, 청소와 세탁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앱은 여러 개여야 한다. 앱을 찾아서 구동하고 업데이트가 안 됐으면 업데이트를 기다려야 하고,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막상 구동한 앱에는 굳이 스마트폰으로 작동했어야 했나? 하는 자괴감도 느껴진다. 한두 걸음 걷고 움직이면 될 일이다.
IoT가 보급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한다. 하지만 그것이 <도라에몽>에 나올 법한 편리한 생활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세탁실에 가는 것이 스마트폰에서 앱을 찾고 업그레이드하는 것보다 편할 때가 많다. 자주 사용하지도 않을 기능을 왜 웃돈 주고 사왔을까? AI에게 물어보니 잘 못 들었다는 말만 반복한다.
EDITOR 조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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