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그조틱한 맛의 시작
2019년은 바우하우스 설립 1백 주년이다. 지난 11월 런던의 테이트 모던은 이를 기념하여 바우하우스의 학생이자 선생이었던 애니 알버스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공예’와 ‘여성’이라는 단어를 특히 강조한다. 당시 바우하우스는 성별에 상관없이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고자 여성 입학을 이례적으로 허용했다. 이에 애니 알버스, 게르트루트 아른트, 마리안느 브란트와 같은 이들이 바우하우스에 입성했고, 정치의 때가 끼지 않은 공예 미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었다. 지금 예술과 디자인은 공예의 미학을 되새김질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과 디자인이 순진무구하게 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만은 아니다. 그 역시 정치와 경제, 사회 환경에 기생해야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세기는 기계 산업화와 전쟁으로 인한 ‘기술 발전’과 ‘수요와 공급’의 맥락 속에서 살아갔다. 그러나 21세기는 정보와 정신, 그리고 삶의 질 속에서 자라나고 있다. 유행을 선도하는 관리자들은 이런 물결에 저마다 다른 이야기가 담긴 다채로운 향수들을 뿌리며 사물을 띄워 보내고 싶어 한다. 쓰임새와 아름다움이 함께 어우러진 공예품이 ‘예술적 생활용품’으로서 더욱 풍성한 성분을 가지고 있기에 좋은 재료로 쓰일 수 있게 된 것이다. 2019년에는 여기에 장식 미술, 풍습, 아시아라는 토핑이 곁들여질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 이 느낌을 ‘이그조틱(Exotic)하다’라고 표현하고 싶다.
국가 간 문화 장벽이 무너지고 있는 시점에 기획자들은 모험가가 되어 다른 시대와 지역의 예술들을 새롭게 발견하며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그 중심에 아시아가 있다. (이번만큼은 콕 집어 일본이라 언급하기 싫다.) 기존 서구 중심의 예술적 견해를 바꿔 아시아를 통한 새로운 관계가 연결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작은 무명 장인들의 민중적 공예로부터 시작될 조짐이다.
그간 ‘누구누구’의 ‘어쩌고저쩌고’한 ‘크래프트’에만 집중되었을 때, ‘민속 공예’는 풍토와 풍습을 살려 창의력으로 계승되어 만들어지고 있었다. 오랜 시간 서민의 일상을 지탱한 순수한 생활 도구들은 필요성을 반영한 형태로, 손에서 손으로 이어졌다. 흥미로울 수밖에 없는 이 도구들에 양식과 장식을 더한다면? 이러한 ‘이그조틱한 공예’의 단단한 미의식은 새 시대의 정신적 에너지를 만드는 계기로 발전될 것이다.
WORDS 김한규(르시뜨피존 대표)
영감의 갈증을 해소할 우물
사람의 힘과 간단한 공구의 조합이 이끄는 ‘만듦’이 매우 특별한 일이 됐다. 공예, 수공예, 수제품 등 이를 지칭하는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일련의 행위가 추구하는 가치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방향을 바라본다. 근대화와 산업화가 구현한 대량생산 체제의 풍요로운 풍경을 잠시 걷어낸 후, 질식의 위기에 봉착한 ‘손 노동’의 진가를 재발견하고, 북돋고, 나아가 이에 정당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 우리는 첨단 기술과 디자인의 협업 아래 기능과 아름다움이 효율적으로 교차하는 문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불확실성과 불완전함이 주는 휴머니티 고유의 매력에 둔감해졌다.
몇 년 전부터 전 세계적으로 부흥한 로컬리티에 대한 관심 덕분에 지역에 온전히 뿌리를 둔 공예가 재조명받기 시작했다. 손맛 넘치는 노동 개념이 신을 강렬하게 휩쓸고 있다. 이런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 럭셔리 업계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로고 플레이, 첨단 소재를 이용한 파격적인 디자인, 현대 예술과의 접점을 통한 가치 상승에 집중하던 과거와 달리, 시간과 정성을 쏟는 노동의 정직함, 휴머니티의 발현, 모든 개체의 ‘온리원’ 전략을 통해 공예적 미덕을 브랜드로 끌어들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이런 흐름을 영리하게 잡아낸 대표적인 브랜드가 로에베. 로에베는 ‘로에베 공예상’을 제정하며 에르메스, 루이 비통, 까르띠에 등 유수의 럭셔리 브랜드가 현대 미술에 올인하는 기간 동안 상대적으로 잊힌 ‘공예’라는 이슈를 선점하며 리포지셔닝에 성공했다.
공예는 기후와 대지의 제약을 감내하며 현지 재료를 활용해 기능성과 심미성을 직조하는 활동이다. 특정 지역의 문화가 독특하게 농축된 정수다. 산업화가 오기 전까지 적어도 수백 년간 축적한 노하우로 자연에서 구한 소재를 정성스레 가공하는 태도는 빠르게 물건을 소비하며 감각을 휘발시키는 데 진력이 난 현대인의 허망한 마음을 채워주고 있다. 공예가 지닌 낯선 조형 언어는 신선하고 선명한 미적 감흥을 일으키고, 친환경에 입각한 제작 프로세스는 이 시대에 필요한 미덕으로 간주된다. 즉 공예는 크리에이티브 업계가 직면한 영감의 갈증을 해소시킬 깊은 우물인 셈이다. 2019년에도 사회, 문화의 핵심부에 진입하며 입지가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WORDS 전종현(디자인 칼럼니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사람들이 삶의 반경 속에 ‘물성’을 지닌 오브제를 들이기 시작했다. 노동집약적으로 완성된 물체들을 말이다. 이 현상은 앞서가는 감각을 뽐내려는 힙스터들 사이에 특히 두드러진다. 잘나가는 산업의 산물을 자랑하는 일로 감각을 어필하던 이들은 이제 손으로 빚은 그릇, 수제 모로칸 러그 등의 불완전한 아름다움에 관심을 갖고 전시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공장에서 기계로 직조한 밀짚 소재 카펫이나 역시 공장에서 찍어낸 붉은 흙빛의 자기 그릇처럼, 수공예품 ‘같은’ 물건들도 인기가 좋다.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만든 물성, 기능과 장식의 양면을 조화시킨 공예가 전례 없이 동시대적인 지지를 받기 시작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로에베 공예상’을 설립한 조너선 앤더슨은 이렇게 말했다. “공예는 디지털 미디어 세상의 해독제다.” ‘로에베 공예상’의 한 면을 뜯어보면 이유가 어렴풋이 잡힌다. 2017 ‘로에베 공예상’의 우승자는 독일의 에른스트 갬펄이었다. 우승작인 ‘생명의 나무2’는 폭풍우에 뿌리가 뽑힌, 3백 년 된 참나무에 진흙과 돌가루 등을 더하여 완성한 거대한 오브제. 결선작 중 일본 작가 요시아키 고지로의 ‘구조적 파랑’은 유리 가루와 산화동을 합쳐 구워내는 새로운 시도를 했다. 두 작품 모두 형태나 기술이 아닌, 소재와 제작 과정이 독창적인 경우다. 공예의 근원적인 가치가 빛나는 작품들이다. 공예란 익숙한 소재에 시간을 들여 다가가며 깊어지는 것이니까. 그렇기에 공예가 재조명되는 현상은 인간이 주어진 시간을 음미하고자 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도 된다.
디지털 혹은 기계식으로 실시간 ‘운영되는’ 세상에선 빠르고 즉흥적이며 효율적인 것이 중요했다. 공예는 ‘실용’이라는 대중의 목표와는 멀어졌다. 느리고, 기술과 소재를 연마할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러나 아마도 지금, 우리는 다시 ‘잃어버린 시간의 가치’를 찾으려는 것 같다. 조너선 앤더슨의 말대로, 여유와 느림, 시간을 들여 쌓은 감각 같은 정신적 가치만이 우리의 해독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취향’이라는 그릇에 담아내길 갈망하고 있는 것 같다. 2019년에는 이러한 움직임이 더욱 크게 일렁일 것이다. 다만 이것이 트렌드가 되지는 않기를, 홀연히 사라지는 공중누각이 되지는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EDITOR 이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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