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시는 줄 알고 부랴부랴 전화를 드린 거였어요. 그런데 드렁큰 타이거란 이름으로 내는 마지막 앨범이라고요?
드렁큰 타이거의 정규 앨범 10집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하던 걸 계속 추구해나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시대가 너무 바뀌어버렸어요. 제가 생각할 때 지금 힙합 신은 힙합 문화가 있고 랩 문화가 있고 그리고 팬덤으로 형성된 문화가 있어요. 힙합의 오리지널리티를 강조해서 음악을 만들면 ‘올드’하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변한 상황에서 오래된 팬들은 예전 제 음악을 그리워하면서도 음악과 동떨어진 삶을 살더라고요. 팬들도 저랑 같이 나이를 먹었잖아요. 그래서 ‘이제 랩 문화는 내가 들을 것이 아니야’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이상한 시간과 공간 속에 갇혀버린 기분이었어요. 뭔가 시도할 때마다 이슈도 되지 않고 들어주는 사람도 없고, 그냥 ‘옛날 것’이라는 카테고리에 박혀버리니까요. ‘마지막’이라는 이유를 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된 거죠. 드렁큰 타이거의 생명은 여기까지구나 싶었어요. 그래도 ‘마지막’이라고 하니까 팬들이 귀 기울여주고 이렇게 부랴부랴 <아레나> 인터뷰도 하게 됐어요.(웃음) 답변이 너무 길었는데 고민을 많이 했기에 길게 설명할 수밖에 없는 점, 이해해주세요.
무려 20년 동안 드렁큰 타이거라는 이름으로 음악을 해왔어요. 그게 얼마만큼의 무게인지 저는 상상이 되지 않더라고요.
사실 ‘마지막’은 되게 진부한 표현이죠.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해요. 저는 MFBTY라는 그룹도 만들고, 타이거 JK로서 추구하는 음악 작업도 해왔어요. 저에겐 사실 설레는 마지막이에요. 생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간 하고 싶었던 것들을 시작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거든요. 이제 팬들에게 드렁큰 타이거다운 음악을 들려줄 수 있어서 기뻐요. ‘마지막’이 약간 펀치라인이다 보니까 ‘은퇴하냐’고 많이 물어보시던데 그건 절대 아니에요.
이제 타이거 JK로 활동하실 건가요? 아니면 새로 이름을 만드셨나요?
그냥 타이거 JK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마미손처럼 ‘파피손’이 될 수도 있어요. 하하.
말씀하신 것처럼 ‘난 널 원해’를 듣고 감동받은 팬들이 이제 30대 중·후반이 됐어요. 그래서 드렁큰 타이거 음악이 그들에게 가장 재미있었던, 잘나갔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거 같아요. 이게 아마도 드렁큰 타이거 음악을 만드는 데 계속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을 거예요. ‘나 어렸을 때 듣던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올드 팬들의 바람을 느끼셨나요?
확실히 느꼈죠. 그런데 그분들도 또 다른 삶이 시작되면서 예전 같은 팬덤 활동은 못하는 거죠. 저도 아빠가 되면서 그 부분을 이해했어요. 지금 저는 마지막 앨범을 타입 캡슐에 넣어놓는 기분이에요. 이젠 패러다임이 바뀌었죠. 열심히 앨범을 만들어도 SNS에 바이럴되지 않거나 스트리밍 사이트에 음원이 없으면 새로 나왔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굉장히 고민스러웠죠. 저는 이대로 묻혀버리는, 존재하지 않는 뮤지션이 되는 것 같았어요.
이제는 바뀐 패러다임을 비판하고 부정할 시기는 지나간 것 같아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방향으로 합류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될 때죠.
맞아요. 제가 청개구리 같은 성향이 있어요. 어쩌면 제 실수일 수도 있고요. 뭐냐면, 유튜브와 트위터가 처음 꿈틀거릴 때 제가 되게 열심히 했었거든요. 당시 미디어 교수님들이 세미나에서 ‘미디어를 기반으로 소통하는 아티스트’의 사례로 제 이름을 거론할 정도였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SNS보다 음악을 열심히 만들어서 표현하는 게 더 어울리는 것 같아서 ‘난 이런 거 안 해’ 하고 다른 길로 간 거죠. 결과적으로 저만 다른 세계로 가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합류하실 건가요?
합류하긴 해야죠. 저도 동의해요. 디지털 시대를 비판하는 것도 절대 아니에요. 아들이랑 대화를 해봐도 저보다 더 많은 음악을 알고 있어요. 그게 다 밈(Meme)에서 찾은 거예요. 짧고 웃긴 영상 등에 쓰인 배경 음악을 찾아서 듣더라고요. 예전에 우리는 좋아하는 LP 찾고 디깅하느라 엄청 오래 걸렸는데 이제는 2초면 음악을 찾고 친구와 공유할 수 있어요. 너무 좋은 현상이죠. 하지만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저와 가장 잘 맞는 건 공연이에요. 오프라인의 중요성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그래서 드렁큰 타이거 마지막 앨범을 소장 가치가 있는 물건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CD를 사도 들을 수 있는 기기가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냥 방에 가져다놓는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물건이 됐으면 해서요. 그래서 ‘대가’라고 불리는 김정기 작가의 일러스트도 넣고, 앨범 패키지 자체가 내 예술적 표현의 확장으로서 어느 세대건 소장 가치가 있는 작품임을 제시하고 싶었어요.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마지막 앨범에 관해 가장 많이 기사화된 건 방탄소년단의 RM과 세븐틴의 버논이 피처링으로 참여했다는 소식이었어요.
“나 드렁큰 타이거인데, 마지막 앨범이니까 유명한 너희들이 참여해줘” 이런 식으로 섭외한 건 아니에요. 방탄소년단과 세븐틴 모두 예전부터 음악적으로 교류를 했어요. MFBTY 초창기 때 프로듀서였던 방시혁 대표가 ‘방탄소년단이라는 보이 밴드를 만들었는데 힙합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니까 교류했으면 좋겠다’고 연락했어요. 비디오 촬영도 참여하고 MFBTY 앨범에 피처링도 했죠. 세븐틴 버논도 프로듀서인 범주 때문에 알게 됐는데, 의정부 작업실 와서 같이 음악도 만들었죠. 언젠가 내가 마지막 앨범을 만들면 같이 해보자 했어요. 제일 먼저 피처링을 녹음해준 친구가 RM이었어요. 직접 비트도 고르고, 녹음을 하면서 수정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유명해지는 거예요. 나중에 되게 걱정했어요. 녹음 못할까 봐. 하하. “와, 방탄소년단이 <지미 팰론 쇼>에 나왔대, 몇 마디 더 받을 거 있는데 어떡하지?” 문자로 수정 사항 주고받다가 한 2주간 연락이 끊긴 적이 있었어요. 근데 UN에서 연설한다더라고요. 하하. 하지만 역시, 훌륭하게 완성할 수 있었죠.
그런데 타이거 JK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에서 하는 얘기가 있죠. ‘항상 작업하는 사람들과만 하지 말고 새 시대에 맞는 새 사람들과 작업하면 새 음악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어떻게 생각해요?
맞아요. 주변 사람들이 많이 얘기해요. 내가 쓰는 가사, 운율의 패턴은 더 이상 요즘 사람들에게 와 닿지 않으니까 공부를 하든가 대필을 쓰라고요. 곡도 잘나가는 몇몇 레이블의 프로듀서에게 새로운 소리를 배우고 받아야 한다고요. 그런데 우리는 닥터 드레에게 “너 요즘 인기 있는 포스트 말론이나 드레이크 스타일로 곡 만들어봐”라는 말을 하지 않잖아요. 제가 닥터 드레라는 게 아니라, 어쨌든 노장인 해외 뮤지션에게는 그런 식으로 잣대를 들이대지 않는다는 말이죠. 저는 한쪽에 치우친 사람은 아니에요. 요즘 노래도 다 듣고 따라 해보고, 표현 방법도 고민해요.
그림으로 치면 도형 몇 개로 단순하게 그린 그림이 유행이니까 수십 년간 그려온 걸 버리고 따라 하라는 것과 같은 느낌이겠네요.
네. 제가 처한 상황이 그런 느낌이었어요.
음악이 패션처럼 트렌디하게 소비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대중음악이고, 대중은 계속 새로운 것을 원하니까 창작자 입장에선 강요받는다고 느낄 수도 있겠죠.
제가 다른 걸 시도했을 때도 “타이거 JK 돈 좇아가네, 감을 잃었네”라는 얘길 들었어요. 혹은 “예전에 그 색깔 못 내네”라거나요. 뭘 해도 욕을 먹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트렌드란 뚝 떨어지는 게 아니라 결국 예전 장르를 새롭게 버무리는 건데, 고지식하게 요즘 스타일도 모르고 못 만든다고 하니까요. 이번 앨범에선 주노 플로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어설프게 흉내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또 프로듀서 영인이 한국에 와서 같이 작업했는데, 이 친구는 켄드릭 라마 앨범 작업에 참여해서 그래미 상을 받았어요. 그 친구가 만들어주는 드럼 사운드에 이끌려서 곡도 만들었고요. 제가 얼만큼 요즘 스타일을 소화하고 표현할 수 있나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신구의 밸런스가 가장 완벽한 앨범이 아닐까, 감히 말하고 싶어요.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지식한 이미지는 의정부를 떠나지 않는 고집과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사실 전 되게 멋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에미넴도 디트로이트를 떠나지 않잖아요.(웃음)
감사합니다. 이해해주시는 분이 여기 계셨네요. 하하.
뿌리를 지키는 것, 의정부를 사랑하는 것 이런 것들이 힙합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도 연관이 있나요?
아티스트로서 부리는 고집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비욘세가 슈퍼스타지만 늘 휴스턴을 강조하잖아요. 그게 저는 하나의 ‘간지’라고 생각하거든요. ‘타이거 JK와 윤미래가 의정부에 힙합을 뿌리 내렸다.’ 10년 후에는 굉장히 멋진 스토리가 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K-팝처럼 K-HOP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안 오면 말고요. 하하.
지난여름 의정부에서 블랙 뮤직 페스티벌이 열렸잖아요. 공연 예술 감독을 맡으셨다고요?
의정부가 약간 브루클린 냄새가 나요. 시도 그렇고 주민, 이웃들도 되게 소울풀한 향기가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페스티벌을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껴요. 제한된 예산으론 섭외할 수 없는 아티스트들이 나와서 축제를 채워줬어요. 제가 말로만 의정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님을 알아주셔서 그런지, 길을 걸어도 다들 따뜻하게 바라봐주세요. 하하.
지난 시즌 <쇼미더머니> 얘기를 꺼내보고 싶어요. 저는 타이거 JK가 변화를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자 시도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부딪쳐보니 어떻던가요?
매 시즌 계속 이야기가 오가다 시즌 6 때 합류한 거예요. 무엇보다 큰 교훈을 얻었어요. 힙합에 자부심이 있고, 겸손하고 뭐 이런 ‘에고(Ego)’가 저에게 남아 있었나 봐요. 한국 힙합 초기 멤버라는 생각 때문에, 제가 이끌어주고 아이디어 내고 하면 힙합 팬들이 따라와줄 거고 방송도 제 말을 들어주겠지, 라는 착각에 빠진 거예요. 이미 시즌 6까지 이어지는 동안 이 프로그램은 힙합이 아니라 랩 문화 그리고 랩을 좋아하는 경연 프로그램의 시청자 팬덤에 기반하고 있었어요. 제가 ‘이건 힙합 문화가 아닌데?’ 하고 지적하면 반응도 예상과는 달랐어요. 또 촬영도 끊임없이 해서, 잠 깨려고 장난 치고 하는 멘트들을 제작진이 재밌다고 생각해서 방송에 내보낸 거죠. 그렇게 호랑이 삼촌, 큰형 이미지가 만들어지다 보니까 공연할 때 분위기부터 달라져요. 더 이상 힙합 뮤지션도 아니고, 뭐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결국 방송에 대한 이해도가 낮았고, 힙합 에고(Ego)가 너무 강했다는 반성인가요?
네. 쇼를 비판하고 싶진 않아요. 물론 제 캐릭터가 그렇게 만들어지고 흘러간 데 대해선 힙합 팬으로서 섭섭한 감정이 있죠. 하지만 애초에 내가 어떤 방송인지 이해를 잘 못하고 출연을 결정한 거니까요. 그것에 대한 교훈을 얻었죠. 낄 데 안 낄 데 생각하고 행동해야겠구나 하는.(웃음)
20년이란 세월을 돌이켜보면요, 어떤 점이 가장 크게 변한 것 같나요? 맨 처음 한국에 와서 힙합 음악을 전파하고 공연하고 앨범을 만들었던 시절과 지금, 내 안의 변화 중에 손꼽을 만한 게 있나요?
와, 어려운 질문이에요. 음, 변한 건 없는데 시각은 달라졌어요. 예전엔 되게 치열했어요. 힙합 문화에 대한 사랑이 투쟁처럼 느껴졌으니까요. 어린 나이여서 그런지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더 커보였어요. 그래서 죽음과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을 함부로 했고 무서운 게 없었고 물러서지 않았어요. 그 시절에 가리온의 메타 형과는 팽팽하게 맞섰는데 그래도 끈끈한 뭔가가 있었죠. 이제 의정부에서 같이 나이 들어가면서 오늘 인터뷰했던 내용을 회상해보는데 되게 찡했어요. 우리 둘 다 결혼하고 가정이 있으니까 표현도 더 조심스럽죠.
마지막 앨범 활동은 공연 실황을 멋들어지게 찍어서 유튜브에 ‘태우면’ 어떨까요?
좋은 생각이에요. 공연은 진짜 자신 있거든요. 근데 사실 라디오 방송을 엄청 잡았어요. CD 들고 라디오 방송 돌고 공연하고 그러려고요. 옛날 사람이긴 한가 봐요. 하하.
이번에는 신구의 밸런스가 가장 완벽한 앨범이 아닐까, 감히 말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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