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만9천원을 벌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누군가에게는 상사의 분탕질을 당한 일급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며칠, 몇 주 취재해서 고심하며 원고를 써야 벌 수 있는 돈일 수 있다. 1kg에 30원 하는 폐지로 따지면 무려 8톤 하고도 300kg을 모아야 된다. 전국을 공분시킨 ‘미미쿠키’ 사태가 시작된 네이버 카페 ‘농산물 수산물 직거래 장터나라’(이하 ‘농라’)에서 진행 중인 미미쿠키 구매 건 환불 신청 목록 중 최고액이 24만9천원이다. 이 카페는 미미쿠키에 민사 소송을 진행 중이며 자체적으로 구매 회원들에게 환불을 진행 중이다.
환불액과 변호사 수임료를 합한 총액이 11일 현재 1천9백84만 4천1백50원이며, 환불을 신청한 회원은 3백55명이다. 3백55명은 힘들게 번 돈을 어이없이 써버린 바보였을까? 3백55명뿐이 아니다. “진짜 가격 대비 싸고 맛있나 보네”라고 생각했던 직접적, 잠재적 미미쿠키 피해자들은 모두 바보였을까. 미미쿠키의 사기 및 불법 행위가 이 카페에서 발각되기 훨씬 이전, 3년여간 업체의 카카오스토리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미쿠키 구매 대열에 달려들었던 수많은 선지적 구매자들은 모두 바보였을까? 그리고 “돈이 필요했다”고 한 미미쿠키는 세상을 바보 취급했던 걸까. 전자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고, 후자에 대한 답은 “예”이다. 36만7천1백42명이 회원으로 있는 농라는 활발한 상행위가 이뤄지는 대형 카페다. 목소리 큰 소수의 오피니언 리더 ‘인싸(인사이더)’와 침묵하는 다수 ‘아싸(아웃사이더)’가 나뉘어 폐쇄적인 생태계를 형성한다. 인싸에 의해 하나의 상품이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면, 그 기세는 거침이 없다. 버즈를 일으키는 움직임은 적극적이지만, 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다수 아싸는 소극적인 침묵으로 일관하며 별반 관심이 없거나, 행동으로 옮길 용기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건강한 비판은 없다. ‘다 맛있다 하는데 나만 맛없다 하는 것도 이상하고, 나만 유별난 것 같고, 내 후기가 남의 장사 망치는 것 아닌가’ 하는 마음에, 사진만 보고도, 한 입 먹어보고도 ‘그 정도는 아닌데?’ 의문을 품었던 이들은 입을 다물고 뒤로 물러나곤 한다. 배타적인 동질감 밖으로 겉돌기를 두려워하는 인간의 본능이다. 미미쿠키는 알고 있었다. 좋다고 하는 사람이 계속 더 시끄럽게 좋다고 하면, 나쁘다고 하는 사람을 쭉 침묵하도록 하면 폐쇄 집단 안에서 평판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미미쿠키가 얼마나 주도면밀했는지에 대해서는 경찰 조사를 통해 밝혀지겠으나, 미미쿠키까지 손수 나서서 평판 관리를 열심히 할 필요도 딱히 없었을 것이다. 한정된 우물 속의 버즈는 궤도에만 오르면 무한 동력으로 공명한다. 내가 좋다고 한 것을 남이 나쁘다고 했을 때, 자신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모멸감을 느껴 반사적으로 악평을 공격하고, 한 번 좋다고 한 것은 더 시끄럽게 좋다고 해주는 팬덤이 알아서 벽돌 같은 실드를 쳐주고, 심지어 눈덩이처럼 과장을 부풀려간다. 아싸들은 그럴수록 더 굳게 입을 다물게 되어 있다.
한편, 유기농 재료로 만든 수제 제과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수입 제품을 구분하지 못하고 들떴던 입맛을 타박할 일이 아니다. ‘맛은 주관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 명제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맛에 대한 감수성은 전적으로 경험에 의거한다. 맛에 대한 주관적인 취향은 완성도에 대한 판단 이후에 거론할 수 있는 문제다. 이는 특히 나와 같은 푸드 칼럼니스트에게는 직업 윤리에 해당하는데, 완성도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많은 지식을 포함한 경험이 필요하기에, 쉽지 않다. 완성도를 평가할 때까지만 푸드 칼럼니스트이고, 완성도와 관계없이 취향만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면 블로거나 다름없게 된다. 맛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대개 일반인은 쉽게 “맛있다”고 한다. 이 말은 평가이기보다 감상이다. “맛있다”는 감상을 이야기하면서도 스스로 객관적인 평가라 여기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모르는지 알지 못한다. 자신이 얼마나 아는지도 모른다. 또한 대개 일반인은 “맛있다”는 감상을 평가로 받아들인다. 이 흥미로운 심리 트릭은 인지의 착시이고, 집단 미식의 맹점이 비롯되는 틈새다. 미미쿠키는, 이 메커니즘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과감한 일탈을 저질렀다.
문제는 누가 말하는가에 있다. 지난해 문을 연 한 돼지국밥집은 오픈 전부터 SNS에서 활발한 버즈를 일으켰다. 유력한 인플루언서들과 예전부터 관계를 맺고 있던 그 식당은 단 몇십 명이 일으킨 나비 효과 같은 버즈 덕택에 일약 줄 서는 ‘맛집’으로 시작을 끊었다. 좋은 재료로 잘 조리한 훌륭한 음식이었고, 단단히 준비된 외식업 종사자였으니 인싸들의 요란한 호평은 그에게 일약 날개를 달아준 셈이었다. 집단 미식의 긍정적인 면모다. 그럴 만한 자격을 갖춘 식당을 금세 발굴해준다. 하지만 맹목적인 인싸들의 찬양은 독이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집단 미식의 착시에 빠져서 때로 속곤 하는데, ‘완벽한 토렴’이라는 찬양이 문제였다. ‘완벽한’이라는 말을 쓸 수 있는 토렴이라니! 토렴을 알고 말할 법한 발화자의 평이었기에, 믿었다. 그리고 그 완벽한 토렴이라는 것을 줄 서서 경험해봤더니, 역시나 기대 이하였다. 밥은 차게 뭉쳐 있었고, 밥에서 나온 전분도 기준 이상으로 맑은 육수에 탁하게 풀려 있었다. ‘이렇게 국에 밥을 만 수준인 것을 완벽한 토렴이라고 했단 말인가?’ 배신감이 들었지만 나 자신에 대한 것이었다. 나에게도 어느새 뇌내 망상이 자리 잡은 것이었다. 후에 토렴의 연유를 알게 됐다. 완벽에 가까운 토렴을 추구한 그 식당의 문제가 아닌, 시킨 대로 토렴을 하지 않은 직원 개인의 일탈이 문제였다. 조심스레 두 번 내리라고 한 것을 우악스럽게 빨리빨리 들이부어버렸던 것이다. 그럴 수 있다. 매뉴얼은 추구하는 것이지, 완벽하게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결국 괴물은 누가 키웠는가. 집단 미식에 눈먼 우리다. 그렇다면 괴물이 되지 않는 것은 누구인가. 자신을 객관화하고 맹목적인 상찬을 되레 모욕으로 받아들이는 부류다. 그 돼지국밥집이 극찬을 마다하고 “우리는 완벽한 토렴을 하고 있지 못하다”라고 경계했던 것처럼, 맛에 대한 평가와 감상을 구분할 지식과 경험을 갖춘 이들만이 자신을 정확히 평가하고 호들갑스러운 과장으로부터 몸을 뗄 줄도 안다. 그리고 그로부터 정말로 완벽에 가까워지도록 발전해나가기도 한다. 사람은 딱 아는 만큼만 객관적일 수 있다. 맛에 있어서는, 특히나 그렇다. 미미쿠키는 알고 있었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자꾸 좋다고 하니까, 누가 좋다고 하는지를 가리려 하지 않고, 무엇이 어떻게 좋은지를 알려 하지 않고, 정말로 좋은 줄 알다가, 그에 취해 고삐 풀린 괴물이 되고야 말았을 것이다. 부부가 아이의 태명으로 상호를 정했다는 미미쿠키는 식품위생법과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사기, 탈세 혐의 등으로 전방위 고발, 입건되어 현재 조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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