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피스톨스가 록 역사의 전설을 한 페이지 써내려간 건 다들 알 거다. 그런데 이 위대한 업적이 불과 2년 남짓한 짧은 시간 동안 이뤄졌다는 건 참 알수록 새롭다. 이들은 시대에 저항하는 록 정신을 일깨우고, 거대한 자본과 시스템에 기대지 않는 인디펜던트 음악의 뿌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70년대 영국 청년들은 암울한 시기를 관통하고 있었다. 바로 그 시대에 분노의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가 등장했다. 1977년 데뷔 앨범 <Never Mind The Bollocks>는 우울한 시대를 깨부수는 통쾌한 한 방이었다. 글렌 매틀록은 이 1집을 끝으로 탈퇴했지만, 섹스 피스톨스의 명곡을 남겼다. ‘God Save The Queen’, ‘Anarchy In The U.K’ 모두 글렌이 만들었다. 무능한 영국 왕실을 조롱하고 무정부주의를 부르짖던 저항의 로큰롤러, 글렌 매틀록이 한국을 찾은 건 지난 6월, DMZ 피스 트레인 뮤직 페스티벌(DMZ Peace Train Music Festival) 때문이었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인 대한민국에서 ‘음악을 통해 국가, 정치, 경제, 이념, 인종을 초월하고 자유와 평화를 경험하자’는 취지로 만든 축제다. 그는 주최 측에게 초대를 받았지만 확답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TV로 남북 정상회담을 지켜봤다. 그리고 바로 페스티벌 조직위원인 스티븐 버드에게 전화를 걸어 참석하겠다고 말했다. 평화 시대로 걸어가는 한반도에서 자신의 록 음악이 울려 퍼지는 건 그 자체로 남다른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당시 페스티벌 주최 측은 그와 협업할 뮤지션으로 크라잉넛과 차승우를 추천했다. 무더운 여름, 서로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며 페스티벌을 마친 이들이 다시 만난 건 3개월 정도 지난 가을이었다. 홍대 인근 공연장에서 릴레이로 펼치는 글로벌 축제, ‘잔다리 페스타’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차승우와 글렌 매틀록은 히든 쇼케이스를 통해 합동 공연을 준비했다. 공연을 몇 시간 앞두고, 로큰롤 바이브가 흘러 넘치는 두 멋쟁이들을 잠깐 만났다.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하다는 걸 깨닫는다. 로커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다. 그냥 삶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오늘 두 사람의 공연은 어떻게 성사됐나?
차승우 글렌 형님이 ‘잔다리 페스타’에 오신다길래 “그럼 제가 또 함께해야죠”라고 말했다. 그렇게 아주 간단하게 이뤄졌다.(웃음)
이 만남이 앞으로 두 사람이 할 음악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나?
차승우 나는 지대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그냥 막 들이댔는데, 앞으로 내 작업물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씀도 해주셔서 무척 가슴이 벅차다. 싱글 작업에도 참여해줄 수 있다고 해서 영국에 가서 녹음을 받아올까 생각하는 중이다. 무작정 꺼낸 얘긴데 배려를 참 많이 해주신다.
글렌 최근에 차차가 낸 싱글도 들어봤는데 꽤 훌륭하더라고. 일단 런던으로 와라. 와서 같이 녹음하자.
올해 두 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그동안 한국 젊은이들의 인상적인 문화 등을 발견했나?
글렌 일단 한국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친절했고, 상냥했다. 주로 한국 뮤지션들과 어울렸는데, 세계 어디를 가나 뮤지션들은 다 비슷하다. 국적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뮤지션들이 풍기는 분위기나 태도는 비슷한 것 같다. 미국인이건 프랑스인이건 다 똑같다. 아, 프랑스인은 좀 다르려나. 하하. 농담이다. 음악은 범우주적인 언어다. 로큰롤을 예로 들자면 말이 통하지 않아도 누군가 기타를 연주하면 그에 맞춰 베이스를 튕기고 드럼을 치면서 하나가 된다. 그냥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에게 경계란 없지.
DMZ 피스 트레인 페스티벌 스티커를 아직도 옷 안쪽에 붙여놓은 걸 봤다. 굉장히 인상적이었나 보네.
글렌 아, 이거 그냥 떼는 걸 까먹은 것뿐이다. 하하. 원래 기타에 붙이려다가 마땅치 않아서 잠깐 재킷 안쪽에 붙여놨는데, 뗀다는 걸 깜빡했다. DMZ 피스 트레인 페스티벌 자체는 훌륭했지. 내 덕분에 DMZ에 평화가 찾아왔잖아. 하하.
어쨌거나 요즘 한반도에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록을 비롯한 예술은 암울한 시기에 더욱 꽃피운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대로 평화가 찾아온다면, 세상에 저항하던 로커들에게는 어떤 역할이 새롭게 요구될까?
글렌 내가 살아보니까, 완벽하게 평화로운 시대는 쉽게 찾아오지 않더라. 꼭 평화에 반해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거든. 예술가의 역할은 시대 흐름에 맞게 달라지겠지. 지금의 예술가들은 쿨하고 감각 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발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느낀다.
차승우 평화의 시대가 온다면, 로커들도 평화롭게 살아가겠지.(웃음)
록이라고 하면 ‘포에버 영(Forever Young)’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젊은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나? 아니면 자연스럽게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
글렌 아주 많은 커피가 필요하다. 하하. 일단 나는 음악을 하니까 모든 관심사가 음악에 집중되어 있다. 내게 주어진 한 가지 특권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음악과 예술을 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거다. 그렇게 사람들을 만나면 사는 모습이 다들 비슷하다는 걸 깨닫는다. 가족을 아끼고 사랑하고, 건강을 챙기고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 말이다. 로커라고 해서 별다른 건 없다. 그냥 삶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하다.
차승우 ‘늙으면 안 된다’ 혹은 ‘늙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는 강박에 시달리면 노화가 더 촉진되는 것 같다. 지금 하는 일을 즐겁게 하면서 사는 게 젊게 살아가는 비결이 아닐까?
몇 시간 뒤 두 사람이 함께할 공연에선 어떤 레퍼토리를 준비했나?
차승우 글렌 형님이 굉장히 즉흥적이어서, 어제 연습하면서 새로운 레퍼토리가 몇 곡 늘어났다. 인터뷰 마치고 바로 집에 가서 새로운 곡을 연습하려고 한다.
글렌 오늘 그냥 2시간 정도 공연해버릴까? 하하. 나는 준비되어 있다.
차승우 참, 마지막으로 글렌 형님의 새로운 웹페이지(www.glenmatlock.co.uk)가 개설되었으니까 많은 방문을 바란다. 나는 두 번째 싱글 앨범 준비 중이다. 정규 앨범은 너무 머나먼 길이라 일단 지금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 ‘싱글 단타’를 작업하고 있다. 그러다 에너지가 모이면 솔로 정규 앨범을 낼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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