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예상을 뛰어넘은 버질 아블로의 루이 비통 입성과 킴 존스의 디올행. 이미 뚜껑은 열렸고 이에 대한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루이 비통과 디올의 모회사 LVMH 그룹의 치밀한 한 수는 인정할 만하다. 두 브랜드의 스타일은 극명하게 달랐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흥분할 만한 요소들은 차고 넘쳤다. 그룹 내 쌍두마차인 두 브랜드가 온전히 밀레니얼 세대를 위해 환골탈태한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패션계가 밀레니얼 세대에 이토록 목을 매는 건 그들의 강력한 영향력을 알기 때문이다.
프로엔자슐러의 디자이너 라사로 에르난데스는 미국의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를 패션 신의 관점에서 보다 세련되게 정의했다. 그는 밀레니얼 세대를 ‘포괄성, 성 중립성, 편안함, 우연함, 나다움을 찾는 이들’이라고 명쾌하게 정의했다. 그가 가장 먼저 내세운 포괄성은 무엇일까. 어떤 범위의 것들을 끌어안는 포괄성에는 다양성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국적과 인종, 성별, 문화 등이 한데 뒤얽힌 요즘이 딱 그렇다. 대상과 영역을 분류하고 구분 짓는 것은 오히려 시대착오로 보인다. 2014 S/S 시즌 광고 캠페인에 휠체어 탄 소녀를 모델로 내세운 디젤과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 캠페인 모델을 찾기 위해 인스타그램 계정에 공고를 올려 10만 개가 넘는 태그를 받는 일, 일반인을 길거리에서 촬영한 베트멍의 룩북, 인플루언서들을 캠페인 광고에 내세우는 돌체&가바나와 헬무트 랭 등 모두 이에 파생된 결과물이다.
라사로 에르난데스의 표현을 한 번 더 빌려볼까 한다. 그는 편안함이라는 단어를 설명하면서 앞으로 전개해 나갈 옷에 대해 이야기했다. 티셔츠나 데님 팬츠, 스웨트 셔츠와 운동화 등 스트리트 스타일이 예시였다. 밀레니얼이 가장 쿨한 것으로 인식하는 하위문화, 일상적인 옷차림. 스트리트 패션에 대한 열광은 루이 비통과 슈프림의 만남을 극적으로 성사시켰고 루이 비통 매장 앞에는 젊은이들이 며칠 밤이고 줄 서는 진풍경을 만들었다. 스트리트 패션과 재미를 본 브랜드는 협업을 공략했다. 가장 영국적인 브랜드 버버리는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와 지속적인 캡슐 컬렉션을 선보이고, 최근 디올로 자리를 옮긴 킴 존스는 데뷔 무대에서 스트리트 브랜드 1017 알릭스 9SM과 함께하고 앰부시 디자이너 윤안을 끌어들이는 등 세대를 자극했다. 명품과 스트리트 패션을 뒤섞는 일은 더 이상 파격이 아닌 일종의 불패 공식이 됐다. 밀레니얼 세대가 선호하는 디자이너들이 거대한 하우스로 거처를 옮기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어찌 보면 발렌시아가의 수장으로 임명된 뎀나 바잘리아와 루이 비통의 남성복을 이끄는 버질 아블로의 거침없는 행보는 밀레니얼 세대가 만든 결과다. 그들이 애정하는 디자이너가 자리를 이동하면서 브랜드 충성도 역시 자연스레 움직였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는 2017년을 ‘명품 시장의 세대교체가 일어난 해’로 정의했다. 명품 시장의 성장을 주도한 이들의 85%가 바로 밀레니얼 세대니 기념할 만하다. 그 위력을 인정한 브랜드는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 ‘SNS’라는 친숙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SNS는 과거 내성적이었던 브랜드의 성격을 외향적으로 바꾸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았던 신비주의에 가까운 명품 브랜드는 SNS에 컬렉션 티저 영상부터 제작 과정, 파격적인 이슈 등을 가장 먼저 그리고 빠르게 업로드한다. SNS에서 수많은 지식을 실시간으로 소비하는 밀레니얼은 보다 새로운, 보다 많은 정보를 구애한다. 패션계는 1년에 두 번 선보인 신제품 소식에 ‘프리(Pre)-컬렉션’을 앞세우며 곱절로, 그 사이는 캡슐 컬렉션으로 채우며 그들의 갈증을 해소한다. 이러한 요구에 패션 캘린더는 유례없이 더욱 발 빠르게 돌아가고, 촘촘하게 채워졌다.
미국의 <허핑턴 포스트>는 밀레니얼 세대 2천 명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설문을 했다. ‘SNS 광고에 누가 나왔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과반수가 ‘나 같은 사람!’을 원한다고. 이를 눈치 챈 영민한 브랜드는 이제 투명한 게시물을 만드는 데 집중한다. 상업적인 이미지의 셀럽 대신 자신이 판단하기에 남다른 개성과 감각을 표현하는 사람, 이상적인 외모의 모델 대신 나에게 적용할 수있는 현실적인 사람들을 피드 속으로 끌어들인다. 이렇게 등장한 인플루언서라는 새로운 명함은 패션계를 뒤흔들기 시작한다. 앞서 언급한 인플루언서의 캠페인 사진과 런웨이 워킹에는 면역력이 생겼다. 그들은 이제 패션쇼 프런트 로에 앉아 이를 바라보고 즐기는 위치가 됐다.
하지만 몸집이 커지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 눈치 빠른 밀레니얼은 상업적이고 때 묻은 인플루언서를 가려내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실질적인 지지층을 확보한 10만 명 이하의 ‘마이크로 인플루언서’가 알짜로 떠올랐다. 이처럼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플루언서는 셀럽 이상의 파급력이 있는, 따라 하고 싶은 동시에 ‘내가’ 될 수 있는 민주적인 영역의 표상이 됐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그래서 밀레니얼 세대가 도대체 뭔데?”라고 묻는다면, 조금 전까지 SNS 피드를 체크한 당신, 지금도 한 손에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나. 평범하지만 누구보다 특별한 우리가 곧 ‘밀레니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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