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이 곡이 잘될 거라는 보장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 그거면 됐다’고 마음먹기로 했죠.”
멤버들과 데뷔하기 위해 두 번의 혹독한 서바이벌을 견뎌냈다. 그토록 바라던 데뷔 후엔 ‘우상(Idol)’이라고 불리는 삶을 살아가며 자신을 단단히 숨기고, 또 화려하게 드러내야 했고. ‘아이콘’이라는 멤버 6명을 이끄는 보이 그룹의 리더, 전 앨범 모든 곡을 프로듀싱하는 프로듀서로서 B.I. 그리고 이 모든 무게를 짊어진 스물세 살의 김한빈.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B.I는 명확하게 말했다. 무엇을 묻든지 아주 단단한 어조로. 무엇을 하든 그저 ‘음악’이라고 묶이는 큰 그림 안에 있다고, 자신은 이제 밑바닥에서 조금 위로 올라온 것뿐이라고. 그는 이미 알고 있다. ‘B.I’, 그리고 ‘김한빈’답게 사는 법이 무엇인지. 지금의 B.I가 김한빈 그 자체인 것을.
오늘을 넘길 듯 말 듯 자정이 다 된 시간에야, 카메라를 사이에 두고 B.I와 제대로 눈을 맞췄다. 앞선 스케줄을 모두 감당해내고 오느라 기력을 다해서였을까, 아니면 본디 낯을 가리는 성격 탓일까. 어쩐지 틈을 안 주는 눈빛에 도통 기복이 없는 보폭으로만 움직이는가 싶더니, 또 어떤 순간엔 후다닥대기도 했다. 마치 교복을 채 벗지 못한 사내아이처럼. 스튜디오에 있는 스피커에 자신의 스마트폰을 연결하고, 조작할 때 그랬다. 촬영하는 동안 스튜디오 안을 채운 노래들은 B.I가 직접 선곡했다. 그러니 어쩌다 자동으로 선곡된 노래가 썩 마음에 안 들었거나, 때마침 듣고 싶은 노래가 생각났을 때면 그렇게 달려갔겠지. 신발을 바꿔 신다가, 셔츠를 허리춤에 집어넣으면서, 머리를 다시금 매만지면서. B.I가 들려준 많은 노래 중 스태프들이 일제히 ‘이 노래 뭐야?’라고 물어본 곡이 있는데, 대답은 않고 그저 웃었다. 대신 여기에 슬쩍 적어보자면 아마, 바지(Bazzi)의 ‘Beautiful’이었던가.
한 해가 바빴죠. ‘사랑을 했다’에 이어 ‘죽겠다’까지. <NEW KIDS> 앨범의 3부작 시리즈가 완성된 셈이네요. 전 앨범을 프로듀싱했으니 소회가 남다르겠어요.
그렇죠. 리패키지 앨범까지. 특히 이번 앨범에서는 멤버들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녹음하는 데 딱히 어려운 점도 없었고. 저도 몰랐어요, 이렇게 올해를 꽉 채워 활동할 줄은. 사실, ‘사랑을 했다’가 나오기 전부터 제 머릿속에 큰 그림을 그려놓았어요.
어떤 그림이요? 회사에서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진 않잖아요.
노력 많이 했어요. 여러 가지 타이밍도 봐야 했고. 역시 제가 갈고닦아야 할 건 좋은 곡을 만들어야 하는 것밖에 없겠지만요.
‘사랑을 했다’ 활동 당시 계속 ‘기운이 좋다’고 말했었죠. 정말 반응이 좋았잖아요. 프로듀서로서의 촉은 좀 다른가. ‘죽겠다’는 어땠나요?
촉이라기보다는 감인 것 같아요. 차트 성적 같은 결과 말고, 곡을 만들 때나 활동하면서 느끼는 전반적인 기운이요. ‘죽겠다’ 만들 때도 좋았어요. 주변 사람들 반응도 그렇고. 하지만 스스로 이 곡이 잘될 거라는 보장은 하지 않기로 다짐했어요. 그냥 기운이 좋았기 때문에 ‘어떻게든 되지 않겠느냐, 그거면 됐다’고 마음먹기로 했죠.
결과주의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거군요.
네. 사실, 최근까지 부담감을 버리고 작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사랑을 했다’가 성적이 좋았으니까….
아무래도?
조금의 부담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아이콘의 리더로서, 또 프로듀서로서 매번 성적표를 받는 기분일 것 같아요.
처음엔 많이 신경 쓰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성적표를 받는다는 기분은 조금은 넘어섰다고 할 수 있어요.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 편인가요?
잘하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죠. 제가 취미나 여가가 딱히 없거든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밖엔 방법이 없어요.
멤버가 도움이 되진 않던가요?
전혀요.(웃음) 이건 스스로 이겨내야 하는 문제예요.
본인의 SNS만 봐도 작업실 아니면 연습실에서만 생활하는 것 같던데. ‘B.I’ 말고 ‘김한빈’은 없는 느낌이랄까? 그런 삶은 조금 재미없지 않나요?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볼 수도 있는데, 저는 그 안에서 재미를 느껴요. 오히려 다른 것들이 영 재미없더라고요.
인스타그램을 꽤 잘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해시태그를 붙인다거나, 보정이 잘된 반질반질한 셀피를 올리는 스타일이 아닌가 봐요. 근데 또 이상하게 재미는 있더라고. 셀피를 잘 찍기 위해 멤버 윤형에게 진지하게 고민 상담도 했었다고 하던데?
아니요, 저는 셀피를 잘 찍는 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 상담을 한 적이 없습니다.(웃음) 제 SNS를 보시면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요. 좀 다른 감성이라고 생각해요. 제 기준에서 웃긴 것들을 올리는 거죠. 결국 그게 다 작업하다가, 연습하다가 찍은 것들이지만요.
벌써 새벽 2시가 다 되어가요. 피곤할 텐데. 혼자서 화보 촬영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처음이죠?
네. 릴레이 말고 단독으로는 처음. 제가 워낙 낯을 많이 가려요. O형이어서 절대 소심한 편은 아닌데, 사람 대하는 게 되게 어려워요.
데뷔하기 전에 출연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도 그랬고, 안무나 무대 구성을 보면 한빈 씨가 ‘유난스럽게’ 잘 보이는 곡은 별로 없더라고요. 존재감이 없다는 말은 아니고, 돋보이려고 하기보다는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해낸달까요? 매번 프로듀싱을 직접 하니까, 조금은 욕심을 낼 수도 있을 텐데요.
완성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예를 들면 제가 랩을 했을 때 더 잘 들리는 부분이 있고, 바비 형이 랩을 했을 때 더 느낌이 살아나는 부분이 있는데 누구 한 사람이 욕심 내면 곡의 완성도가 깨지잖아요. ‘죽겠다’에서 바비 형이 제가 쓴 가사로 랩을 했어요. 대개 자신의 랩 파트는 직접 쓰는데, 이 곡에서는 제가 쓴 가사를 꼭 넣고 싶더라고. 그래서 바비 형에게 양해를 구했어요. ‘이 파트는 형이 이 가사로 꼭 불러줬으면 좋겠다’라고.
B.I의 판단이 좋았고, 바비가 잘 따라주었네요. 그 파트는 확실히 바비의 것이었어요. 물론 가사는 두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멤버들이 생각만큼 따라오지 못할 때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프로듀서의 고충이랄까.
그때는…. 아뇨, 안 되는 건 없습니다. 하하. 안 되는 게 아니라 좀 더딘 것뿐이에요. 하다 보면 다 되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야죠.
명확하네요. 그래서 그런가요? 팬들이 B.I 씨한테 고민 상담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자기 계발에 대해서. 팬들을 다그치는 것 같기도 하던데?
혼낸다기보다, 단호하게 말하는 거죠.(웃음) 팬들에게 지극히 주관적인 저의 생각을 말해주는 것뿐이고, 뭐든 본인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모든 고민이나 문제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니까요.
B.I가 그려놓은 그림에 솔로 앨범은 없나요?
분명 있죠. 정확하게 언제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제가 그린 큰 그림 안에 분명히 있습니다. 아이콘에서 보여준 것과는 조금 다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 계획한 대로 흘러가고 있어요.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나 콘셉트가 있나요? ‘취향 저격’이 수록된 데뷔 앨범 <WELCOME BACK>부터, 최근에 발표한 <NEW KIDS : CONTINUE>의 수록곡까지 모두 들어본 사람이라면, ‘아이콘이 꽤 다채로운 색깔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것 같거든요.
맞아요. 사실 도전하지 않은 장르는 없는 것 같아요. 그 곡들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아서 그렇지. 제가 작업밖에 안 하니까 만들어둔 곡이 아직도 너무 많아요. 장르나 콘셉트를 염두에 두고 곡을 만드는 편은 아니기 때문에, 앨범의 콘셉트나 방향성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고요.
그럼 B.I가 쓴 곡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곡이 타이틀 곡이 될 수도 있겠네요?
뭐, 그 노래가 좋다면요.
그렇게 되려면 엄청 좋아야 한다는 거죠?
아마 제가 만든 곡일 것 같기는 해요. 지금 딱히 받고 싶은 사람의 곡은 없으니까요. 제가 하면 했지.(웃음)
“본인의 마음가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모든 고민이나 문제는 스스로 헤쳐나가야 하니까요.”
“이번 앨범에 실린 곡 ‘바람’에 제 가치관이 가장 많이 담겨 있어요. 그게 제가 세상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아요.”
최근에 <자체 제작 아이콘 TV> 출연했잖아요. 아이콘이 이렇게 재미있는 친구들인지 몰랐어요. 망가지는 것이 두렵진 않았나요? 특히, 수면 내시경을 받는 회차에서 마취에서 깨어난 후 멤버들 반응이 정말 웃겼어요. 근데 B.I 씨는 마취에서 깨어나서도 작업 얘기를 하더군요. 조금 짠했어요.
아, 저도 그 회차가 제일 웃겼어요. 부담은 없었어요. 저희끼리 노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거니까. 그래서 팬들이 더 좋아해준 것 같고요. 예능 프로그램은 최대한 많이 하려고 해요. 한 번이라도 얼굴을 비추면 좋은 거니까. 웬만해선 회사에 다 잡아달라고 해요.
이번 앨범 활동을 마치고, 곧 있을 콘서트 <iKON 2018 CONTINUE TOUR IN SEOUL>까지 치르고 나면 분명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서울에서 오랜만에 콘서트를 하니까, 알차게 보여드리려고 열심히 연습하고 있어요. ‘시간 때운다’는 느낌 안 들도록 하려고요. 성장이라기보다는…. 저는 그냥 계속 여전하고 싶은데요.
여전하고 싶다는 건?
이번 앨범에 실린 곡 ‘바람’에 제 가치관이 가장 많이 담겨 있어요. 그게 제가 세상에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인 것 같아요.
진부한 질문이지만, 요즘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물어봐도 돼요?
요즘에 딱히 꽂힌 노래는 없고요, ‘Fly Me to the Moon’ 자주 들어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바트 하워드의 ‘Fly Me to the Moon’ 말인가요?
네. 듣기 좋잖아요.
온통 음악 생각뿐인 것 같아서 요즘엔 무얼 듣나, 궁금해서 물어봤어요.
네, 뭐 역시. 그래도 올겨울에는 시간이 있으면 여행 한번 가려고 해요.
여행을 좋아하진 않을 것 같은데요.
아뇨, 되게 좋아해요.
가고 싶은 곳이 있어요?
일단 소소하게 일본?
겨우?
촬영이나 공연 말고 친구들과 여행 가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가까운 곳부터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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