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뿜어내는 연기보다 나만의 색깔이 담긴 연기를 찾아가는, 어떤 시작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다.”
먼저 영화 <독전>으로 시작을 해야 할 것 같다. 모든 등장 인물들이 독하게 에너지를 발산하기 바쁜데, 류준열이 연기한 ‘락’이만큼은 혼자 기운을 삼키고 있다.
촬영하면서 뭔가를 더 표현하고 싶어 꿈틀대는 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뿜어내는 연기보다 나만의 색깔이 담긴 연기를 찾아가는, 어떤 시작점이 된 작품이 아닐까 싶다. 정말 재미있게 촬영했다.
그 꿈틀대는 순간, 역할을 생각하지 않고 뭔가를 마음껏 연기할 수 있었다면 어떤 걸 보여줬을 것 같나?
조진웅 선배나 김주혁 선배의 팽팽한 감정 사이에 끼어들려고 했겠지. 그런데 정작 내가 끼어들면 오히려 상황이 우스워지거나 급반전이 생길 것 같았다. 그 장면에서 주혁 선배님이 맡은 ‘진하림’이 ‘락’이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 친구는 넘치는 데가 없어.” 그 대사 그대로, 넘치지 않게 있는 게 맞다. <독전>은 선배님들이 준비한 연기를 현장에서만 볼 수 있었다. 전체 리딩을 할 때 준비한 것을 거의 보여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모습일까 되게 궁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진짜 엄청 재미있게 연기를 해주셨다. 그런 걸 보면서 ‘이 영화에선 내가 할 몫이 있으니까 다른 작품에서 더 재미있게 연기해봐야지’ 그런 생각을 잠시 했다.
영화가 흥행하고, 롱런하면서 무대 인사도 꽤 많이 했다. <독전>은 몇 번이나 봤나?
내 영화 많이 안 본다. 최초 시사 등만 챙겨서 최대한 조금 보려고 한다. <독전>은 딱 한 번 봤다, 부끄러워서. 기자 역시 <아레나>에 쓴 자신의 기사를 두고두고 읽진 않지?(웃음) 똑같은 것 같다.
극 중에서 “저 안 믿으시잖아요”라는 대사가 여러 번 등장한다. 어떨 때는 믿고 싶게 얘기하고, 어떨 때는 믿으면 안 될 것처럼 묘한 뉘앙스로 말한다. 후반부의 반전 때문에 의도적으로 대사에 강약을 분배한 건가?
반전을 위해서 준비했다기보다는 인물 자체가 그런 성격이었다. 나름 진심을 순간순간 보여줬던 거다. 전반적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너무 숨겨도 로봇 같은 느낌이어서 줄타기를 잘하려고 노력했다. 이해영 감독님과도 흔히 말하는 ‘사이코패스’ 같은 연기는 지양하자고 얘기했다. 나조차 그런 연기가 등장하는 영화를 지루하게 본 기억이 있어서,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익스텐디드 컷이 개봉된다. 열린 결말로 끝나서 크레디트 올라갈 때 다들 “그래서 누가 죽은 거야?” 수근대기 바쁘다. 배우들은 결말을 명확하게 알고 있나?
물론이다. 이렇게도 찍어보고 저렇게도 찍어보고 그러지 않고, 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정확하게 찍었다. 사람들이 엄청 궁금해하는데, 우리는 결말을 바꿔야 한다거나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느끼지 않았다. 애초부터 열린 결말이었고, 얼터(추가 촬영분)로 찍어놓은 결말이 익스텐디드 컷에 포함된다고 들었다. 시간 관계상 부족했던 인물들의 서사를 보너스처럼 보여주는 거지.
이번 역할의 잔상이 오래갔다고 들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나는 흔히 얘기하는, 배역에 몰입한다는 것, 그래서 배우가 배역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에 공감을 잘 하지 못하는 편이다. 그보다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전>을 찍으면서 배역과의 감정적 거리가 많이 가까워지는 경험을 했다. 예전에는 배역과 나를 분리했다면 이번엔 극 중 감정을 일상으로 가지고 왔다. 근데 좋은 것 같지는 않더라. 몸이 좀 축나더라고. 하하. 어떤 방식이 맞냐 틀리냐 문제는 아닌 것 같고, 여태까지와 다른 방법으로 연기해봤다는 점이 특별하다면 특별하겠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데, 아직까진 좋지만, 언젠가 좋아하지 않게 될까 봐서 많이 노력한다.”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면 재밌게 잘 사는 사람 같다.
오, 인스타그램을 하는 보람이 있네. 원래 그런 식으로 보여주려고 의도한 건데.(웃음)
방금 말한 것처럼 배역에 빠져서 일에만 몰두하는 게 아니라 자기 생활을 즐기는 것 같다. 여행과 사진, 축구도 좋아하고.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려는 노력의 일환인가?
지금은 그 균형을 많이 생각한다. 안 그러면 정신적으로 많이 소모되는 거 같아서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인데, 아직까진 좋지만, 언젠가 좋아하지 않게 될까 봐서 많이 노력한다. 예전에 바쁘게 일하는 배우 친구들 보면 촬영 끝나고 힘들다면서도 집에 안 가고 또 다른 친구들 만나러 가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다음 날 촬영장에서 “죽겠다”고 하면서 왜 그 시간에 잠을 안 잘까? 근데 내가 바빠 보니까 피곤하다고 집에 가서 자고 다음 날 다시 일하러 나오는 생활이 반복되면 정서적으로 좋지 않더라. 체력 충전보다 사진 찍고 영화 보는 등 정신 충전을 하려고 노력한다.
축구 팬으로 메시도 만나고, 손흥민 선수와도 절친이 됐고, 모두가 인정하는 ‘성덕(성공한 덕후)’이다. 뭔가에 빠지면 ‘디깅’을 하는 편인가?
디깅을 하긴 하는데 짧은 편이다. 잡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여러 가지를 얕게 파고드는데, 좋아하는 게 많다. 축구나 여행 같은 건 대중에게도 좀 티가 났던 분야고(웃음), 그 외에 모르시는 것들도 많다. 그래서 가끔 의도치 않게 내 ‘덕질’이 보이면 ‘이런 것도 좋아했어?’라고 놀라는 분들이 많다. 반대로 싫어하는 것도 꽤 있다. 보여주고 싶어서 하는 건 아닌데, 이제는 시간이 한정적이다 보니까 여행이나 축구 같은 것들만 남은 거 같다.
의외의 덕질 중에 ‘스폰지밥’도 있다. 스폰지밥 성우가 “준열아 건강해야 해”라고 녹음한 걸 듣고 눈물까지 글썽이는 영상을 봤다. 언제부터 좋아한 건가?
워낙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많이 찾아본다. 나름대로 룰이 있다. 아침부터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엔 좀 무거운 감이 있어서 애니메이션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스폰지밥을 알게 됐는데, 사실 시작은 기억이 안 난다. 팬들이 어떻게 알게 됐는지, 언제부터 티가 났는지도 모르겠다. 하하.
“부담 없는 사이가 좋다. 나는 복잡한 사람들은 잘 안 만난다. 서로 기대고 깊이 들어가는 것보다 가볍고 단순하게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더 좋다.”
오늘도 <아레나> 화보 촬영을 한 다음에 영화를 찍으러 간다고? 소처럼 열심히 일해서 ‘소준열’이 된 지 오래다.
데뷔하고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왜?
근데 사실 중간중간 잘 쉰다.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하지만 사이사이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다. 그래서 지치지 않는다. 나는 일단 영화를 찍는 게 너무 재미있어서 ‘일’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힘들지도 않다. 오늘 화보도 재미있을 거 같아서 기대하고 있다.
이따 촬영하러 가는 영화는 어떤 건가?
<뺑반>이라고, 뺑소니 전담반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뺑소니범을 잡기 위해 공효진 선배, 조정석 선배와 함께 어우러져 치고 박고 한다.(웃음)
카 액션 연습하면서 자동차와 친해졌겠네?
나는 자동차를 진짜 좋아한다. 피곤해서 운전 못하겠다고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운전이 재미있고, 그 순간이 참 좋다. 배우가 된 다음부터는 차에 혼자 앉아 있는 시간이 좋더라고. 서울은 사람 없는 곳이 한 군데도 없지 않나. 드라이브를 하다 보면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은 마음이 채워진다.
일하면서 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많나? 왠지 친구가 되기 쉬운 사람 같기도 하고, 반대로 어려운 사람 같기도 하고.
많지 않은 것 같다. 함께 촬영한 동갑내기 친구들과 다 좋은 관계이긴 하다. 그렇지만 친구란 또 다른 의미다. 친해지고 싶다고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고, 서로 마음이 맞아서 연락을 주고받다가 가까워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에게 먼저 연락하는 사람과 친해지는 편이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친구가 되는 거 같다.
류준열과 친해지려면 어떤 성향이어야 하나?
부담 없는 사이가 좋다. 나는 복잡한 사람들은 잘 안 만난다. 서로 기대고 깊이 들어가는 것보다 가볍고 단순하게 좋은 시간을 보내는 사이가 더 좋다. 물론 동네 친구처럼 깊은 관계도 있긴 한데, 일단 큰 기대 없이 만나서 재밌게 놀다 보면 그 사람에게 마음이 가더라고. 그리고 나는 먼저 많이 받는 편이다. 그것에 감동해서 나도 막 주고, 그러다 보면 친구가 되어 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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