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포츠 타운
한국에 오프로드가 있어? 오프로드도 없는데 왜 그런 차를 타냐? 오프로드 차량을 타면 종종 듣는 소리다. 강원도 어느 국도를 가도 비포장도로를 발견하기란 어렵다. 잘 닦인 아스팔트가 대부분이다. 선거철을 맞이해서 그런지 요즘은 요철도 없이 깔끔하게 정비됐다. 오프로드 차량의 성능을 시험할 도로 찾기를 포기할 즈음 강원도 인제가 떠올랐다. 인제는 설악산 남서쪽에 위치한 산악 지역이다. 군부대가 지역 경제의 기반일 정도로 이렇다 할 상업 시설이 없는 조용한 산골 마을이다. 설악산에 가려 관광지로서의 존재감도 약하다. 하지만 인제는 산악 지대다. 거친 봉우리가 제법 많고, 산세가 험해 계곡이 발달했다. 내린천 계곡, 하추리 계곡, 피아시 계곡 등 소양강과 합류하는 지점마다 급류가 유명하다. 고속도로가 정비되기 이전 한계령 고개를 넘어야만 동해에 도달하던 시절에는 지나가는 여행자들이 잠시 쉬어가는 곳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인제는 거친 환경을 활용한 레저 스포츠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인제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번지점프대다. 인제에서 제법 높은 시설물로 마치 ‘여기서부터는 익스트림하다’고 느낌표를 박는 장승 역할을 한다. 소양강에서는 번지점프를 하고, 상류 계곡에서는 래프팅이 활발하다. 계곡 주변에는 래프팅을 주선하는 펜션들이 있고, 캠핑장도 쉽게 눈에 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등반 전 황태백반
인제 맛집이라고 들어봤나? 인제에서 군생활을 하지 않은 이상 들어본 적이 없을 거다. 덕산리에서 북쪽으로 올라가면 원통이 나온다. 원통고등학교 맞은편에는 식당들이 줄지어 있는데, 그중에 황태 요리를 잘하는 송희식당이 있다. 점심시간에는 주차할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은 맛집이다. 산골짜기에 황태 요리 식당이 있는 게 이상하지만 어쨌거나 맛은 꽤 훌륭하다. 황태찜이 대표 메뉴이지만 오프로드 등반 전에는 황태정식을 추천한다. 밑반찬으로 다양한 산나물이 나온다. 신선하고, 깔끔해 육식주의자라도 반찬 리필을 요구하게 된다. 든든한 것은 황탯국이다. 뽀얀 국물이 구수한 황탯국은 다른 반찬 없이 밥만 말아 먹어도 속이 든든하다. 정식 하나당 큼직한 황태구이 한 마리가 장어구이처럼 한입 크기로 잘라서 나온다. 자극적이지 않고 쫀득한 식감에 어느새 꼬리까지 씹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아침 식사도 제공하니 아침 일찍 등반할 계획이라면 송희식당에서 속을 채우고 가길 추천한다.
오프로드의 천국
인제 한석산은 오랫동안 국내 오프로드 문화의 성지로 군림했다. 거창한 소개와는 다르게 강원도에서는 평범한 해발 1,119m 높이의 산이다. 하지만 등반길이 매우 험하고, 코스가 여러 개다. 물론 도보가 아닌 운전해서 오르기 험하다는 뜻이다. 등반로는 임도로서 오프로드로만 이루어졌다. 한석산 입구를 찾기 전에 지형부터 알아야 한다. 한석산을 중심으로 다섯 마을이 있다. 나름 다운타운인 인제군청 쪽에 가까운 덕산리, 덕산리에서 출발해 굽이진 덕산천을 따라 진입하면 산골짜기에 자리한 덕적리가 있다. 덕적리를 지나면 가리산리, 가리산리에서 가리산천을 따라 내려오면 하추리와 하추리 계곡이 나온다. 하추리에서 소양강을 따라 인제군청 쪽으로 올라가면 고사리가 있다. 다섯 마을에서 모두 한석산 오프로드에 진입할 수 있지만 진입로를 찾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오프로더들이 주로 이용하는 코스는 고사리의 피아시 계곡 방면과 덕적리의 장승고개 옆길, 가리산리의 가리산아파트 사잇길이다. 피아시 계곡 방면은 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으나, 입구에서 2.8km 지점에 바위가 낙하해 길이 끊겼다. 다행히 바위에서 10m 앞에 공터가 있어 차를 우회할 수 있다. 그러면 왕복 약 5.6km의 짧지만 강렬한 오프로드를 체험 가능하다. 덕적리 장승고개 임도에는 바리게이트가 있다. 가지 말라면 안 가는 게 상책. 인제 지역은 군 시설이 곳곳에 있다. 한석산에도 훈련장이 있다. 열심히 훈련하는 장병들을 위해 장승고개 임도 투어는 패스했다. 가리산아파트 옆길은 한석산에서 가장 유명한 오프로드다. 아파트 앞 작은 개울 너머에 있는 좁은 길을 따라 약 3km 진입하면 포장도로가 끊기고, 오프로드 흙길이 나타난다. 여기서부터 약 8km 오프로드 대장정이 시작된다. 오프로드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사륜구동 차량이 필수다. 저단 기어를 사용해 천천히 이동해야 사고를 방지할 수 있다. 위험하다고 판단될 때는 고민하지 말고 즉시 내려 차량 상태를 확인해야 한다. 그래야 안전하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당연한 소리지만 내려올 때가 더 스릴 있다.
피아시 계곡 코스
내린천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피아시의 작은 삼거리를 발견한다. 삼거리 안쪽 산 방향으로 좁은 도로를 향해 운전대를 꺾었다. 아스팔트 도로는 사라지고 시멘트 포장된 좁은 길이 나타난다. 길을 따라 펜션 몇 채를 지나면 계곡 옆 오솔길이 나타난다. 오솔길은 자갈로 이루어지고, 솔잎이 떨어져 있어 운치 있다. 여기서부터 지프 랭글러 사하라의 기어를 4L로 변경했다. 그립감이 향상되고 스티어링 휠의 회전 반경도 줄어들었다. 오솔길은 지면 상태가 비교적 고른 편이라 차체 흔들림이 크지 않았다. 오솔길을 벗어나면 그때부터 경사가 시작된다. 경사로는 비교적 큰 돌들이 가득하다. 움푹 파여 있으니 바퀴가 빠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오프로드는 등고선을 따라 둥글게 이어진다. 커브는 넓게 돌아 나가며 지면 상태도 비교적 고른 편이라 이동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1km 정도 지나자 암반이 드러난 길이 펼쳐졌다. 튀어나온 암석을 부드럽게 넘어가기 위해서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해야 한다. 오프로드이기 때문에 시속 10km 이내의 느린 속도로 이동해야 한다. 참고로 창문은 꼭 닫아야 한다. 여름이라 나무들이 많이 자라 길을 가로막고 있다. 나뭇가지에 차가 긁히는 소리는 꽤나 신경을 긁는다. 다행히 차량 표면에 흠집이 생기진 않았다. 그리고 날벌레가 엄청나다. 1.8km 오르면 헤어핀 구간이 나온다. 오프로드에 무슨 헤어핀이냐 싶겠지만 차 한 대가 겨우 이동할 정도로 좁은 커브가 4번 반복된다. 평소였으면 후진하며 이동할 법한 길이지만 지프 랭글러 사하라는 다행히 한 번에 빠져나갔다. 커브마다 암석이 있으니 회전 시 주의가 요망된다. 커브 진입하기 전에 차에서 내려 지면 상태를 파악하길 추천한다. 헤어핀 구간을 빠져나오면 자갈길이 나온다. 한숨 돌리는 구간이다. 자갈길이라도 속도는 늦추는 것이 좋다. 길에 발 하나 걸친 바위가 있기 때문이다. 바위를 지나 정상을 2.5km 앞둔 지점에 공터가 있다. 이 공터에서 차를 돌려 되돌아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은 무난한 편이지만 좁고 험하니 핸들이 바깥으로 쏠리지 않게 잡아준다. 속도를 내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다. 피아시 계곡 코스를 빠져나와 다음 코스로 이동했다.
가리산 아파트 코스
피아시 계곡 코스가 초급반이라면 가리산아파트 코스는 중급자 구간이다. 가리산아파트 샛길을 따라 한참 달리면 몇 채의 주택을 지나 오프로드 입구에 도달한다. 오프로드 입구라고 해도 흙길이라 난이도가 체감되지 않는다. 산비탈이라 조심해야겠다 정도. 차량 세팅을 4H로 바꾸고 가볍게 언덕을 올랐다. 지면이 건조해 다행이었다. 비라도 내렸으면 바퀴가 빠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겨울철 빙판길로 변하면 오르기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콘크리트 도로가 나온다. 콘크리트 도로가 오프로드로 이어지는 곳은 인도와 차도의 높이만큼 낙차가 크다. 지상고가 낮은 차라면 차량 하부가 바위에 부딪칠 수 있다. 암석이 드러난 길을 지나면 흙길이 이어진다. 흙길 주변에는 풀이 사람 키만큼이나 자라 있다. 앞유리를 가릴 정도로 튀어나온 나뭇가지들 때문에 시야 확보가 안 된다. 숲을 빠져나오면 도로 폭이 넓어진다. 지면은 단단한 흙길이지만 가파른 언덕이라 조심할 필요가 있다. 한석산 오프로드의 즐거움은 거친 지면을 사륜구동으로 이동하는 즐거움과 넓은 풍광이다. 굽이진 길들과 헤어핀 구간이 나와도 놀라지 마시라. 그보다 험한 지형이 이어진다. 하우고개를 넘어 3km 정도 더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좌회전하면 정상으로 향하는 흙길이 나온다. 흙길은 빗물에 깊게 파인 웅덩이가 곳곳에 있다. 한눈팔면 고랑에 빠지기 쉽다. 그대로 약 3km를 직진하면 정상에 도달한다. 한석산 정상은 넓은 공터다. 한석산 참전 전우회가 세운 기념비가 여름 햇살 아래 뜨겁게 서 있다.
온로드 낙원
인제는 자동차 문화의 고장이 되었다. 인제스피디움은 자동차 테마파크다. F1 대회를 제외한 모든 대회를 유치할 수 있는 길이 3,908km의 FIA 그레이드2 규격의 서킷이 있다. F2급 대회인 슈퍼 포뮬러와 아시안 르망 시리즈 등을 개최했을 정도로 세계에서 인정받은 서킷이다. 인제스피디움 서킷의 자랑은 반복되는 내리막 커브와 오르막 커브다. 엔진의 힘을 쥐어짜며 가속도를 체감할 수 있는 짜릿한 코스다. 스릴이 가득하다. 서킷에서는 스포츠카 행사뿐만 아니라 모터사이클 행사도 열린다. 바퀴 달린 빠른 것들이라면 모두 모이는 곳이다.
인제스피디움이 자동차 테마파크로 불리는 이유는 서킷 이외에도 자동차 문화를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최초의 네오 클래식 자동차를 전문으로 전시하는 클래식카 박물관도 있다. 로버 미니, 로터스 에스프리, BMW 1502, 푸조 208, 알파로메오 스파이더 등 국내에서 보기 드문 희귀한 자동차 30여 대가 있다. 모두 1960~90년대 자동차로 차를 사랑한다면 빠져나오기 힘든 박물관이다. 그중 일부 클래식카를 시승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클래식카의 승차감과 엔진 소리가 은근히 매력적이다.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