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의외의 공간을 발견하고 즐기기를 더 원한다. ‘OO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번화가를 좇는 건 별 매력이 없으니까. 의외의 장소에 위치한다는 조건이야말로 요즘 뜨겁게 주목받는 공간들이 지닌 공통점이다. 서울 회현동 일대에는 오래된 것이 많다. 수령 5백 년의 회현은행나무가 있고,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집터도 있다. 서울의 마지막 시민아파트인 회현제2시민아파트도 빼놓을 수 없다. 회현동 일대는 남촌이라 불렸다.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에 위치해서다.
한곳에서 수십 년간 거주한 주민이 지켜온 이 동네에 최근 새로운 활기가 돋았다. 전시 기획사 글린트가 만든 문화 공간 ‘피크닉’ 때문이다. 피크닉은 나지막한 주거 시설들 사이에 있던 오래된 빌딩을 리노베이션했다. 1970년대에 중견 제약회사의 사옥으로 지은 건물로, 지난 2016년 처음, 글린트 일원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붉은 타일 위에 육중한 청기와 지붕을 얹은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이 마을의 질서와 평화가 흐트러지길 원치 않은 글린트는 외관의 붉은 타일, 건물 뼈대는 물론 내벽까지도 일부 보존하여 피크닉을 완성했다. 이 지역에 스며들기 위한 보호색을 작정하고 두른 것이다. 새로운 공간이 무수히 출현하고 사라지는 서울에서 이토록 조심스럽게 지은 곳은 드물다.
이충후가 이끄는 프렌치 레스토랑 ‘제로 콤플렉스’가 서래마을에서 이곳 3층으로 이전했고, 헬카페가 운영하는 ‘카페 피크닉’과 서울 창작자들의 작업물을 판매하는 상점 ‘키오스크 키오스크’가 1층, 류이치 사카모토의 개인전 <Life, Life>를 개관 전시로 개최하는 전시 공간 ‘글린트’가 2층에 자리한다. 카페 맞은편에 마련한 작은 온실에서는 제로 콤플렉스가 요리에 쓰는 꽃과 허브, 갖가지 자연 재료들을 재배한다. 백미는 4층 테라스다. 북쪽으로는 회현동과 서울역 일대에 솟은 잿빛 고층 빌딩이, 남쪽으로는 남산 자락의 푸른 숲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너른 테라스. 1인용 빈백 소파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데 그야말로 맥주 한잔하지 않고는 못 배길 장소다. 서울의 속살을 만끽할 수 있는 이 테라스에서는 제주 맥주를 비롯한 3~4종의 병맥주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위치한 도동 삼거리. ‘PIKNIC’이란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문화 공간이랄 게 도통 없을 것 같은 길이 잠시 이어진다. 여기가 맞나 싶은 순간 수령이 1백 년은 더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와 그 잎새로 가려진 내리막길이 슬며시 보일 것이다. 그 틈새로 붉은 타일 외벽의 건물을 발견한다면, 제대로 찾은 거다.
피크닉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문의 02-6245-6371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