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

AGENDA MORE+

남산의 피크닉

남산 자락에 숨어든, 이토록 서정적인 경험.

UpdatedOn July 05, 2018

/upload/arena/article/201806/thumb/39057-317420-sample.jpg
3 / 10

우리는 이제 예상치 못한 지역에서 의외의 공간을 발견하고 즐기기를 더 원한다. ‘OO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번화가를 좇는 건 별 매력이 없으니까. 의외의 장소에 위치한다는 조건이야말로 요즘 뜨겁게 주목받는 공간들이 지닌 공통점이다. 서울 회현동 일대에는 오래된 것이 많다. 수령 5백 년의 회현은행나무가 있고, 단원 김홍도의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집터도 있다. 서울의 마지막 시민아파트인 회현제2시민아파트도 빼놓을 수 없다. 회현동 일대는 남촌이라 불렸다. 청계천을 경계로 남쪽에 위치해서다.

한곳에서 수십 년간 거주한 주민이 지켜온 이 동네에 최근 새로운 활기가 돋았다. 전시 기획사 글린트가 만든 문화 공간 ‘피크닉’ 때문이다. 피크닉은 나지막한 주거 시설들 사이에 있던 오래된 빌딩을 리노베이션했다. 1970년대에 중견 제약회사의 사옥으로 지은 건물로, 지난 2016년 처음, 글린트 일원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붉은 타일 위에 육중한 청기와 지붕을 얹은 모습이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이 마을의 질서와 평화가 흐트러지길 원치 않은 글린트는 외관의 붉은 타일, 건물 뼈대는 물론 내벽까지도 일부 보존하여 피크닉을 완성했다. 이 지역에 스며들기 위한 보호색을 작정하고 두른 것이다. 새로운 공간이 무수히 출현하고 사라지는 서울에서 이토록 조심스럽게 지은 곳은 드물다.

이충후가 이끄는 프렌치 레스토랑 ‘제로 콤플렉스’가 서래마을에서 이곳 3층으로 이전했고, 헬카페가 운영하는 ‘카페 피크닉’과 서울 창작자들의 작업물을 판매하는 상점 ‘키오스크 키오스크’가 1층, 류이치 사카모토의 개인전 <Life, Life>를 개관 전시로 개최하는 전시 공간 ‘글린트’가 2층에 자리한다. 카페 맞은편에 마련한 작은 온실에서는 제로 콤플렉스가 요리에 쓰는 꽃과 허브, 갖가지 자연 재료들을 재배한다. 백미는 4층 테라스다. 북쪽으로는 회현동과 서울역 일대에 솟은 잿빛 고층 빌딩이, 남쪽으로는 남산 자락의 푸른 숲이 파노라마로 펼쳐지는 너른 테라스. 1인용 빈백 소파가 듬성듬성 놓여 있는데 그야말로 맥주 한잔하지 않고는 못 배길 장소다. 서울의 속살을 만끽할 수 있는 이 테라스에서는 제주 맥주를 비롯한 3~4종의 병맥주와 류이치 사카모토의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서울 밀레니엄 힐튼 호텔이 위치한 도동 삼거리. ‘PIKNIC’이란 표지판을 따라 걸으면 문화 공간이랄 게 도통 없을 것 같은 길이 잠시 이어진다. 여기가 맞나 싶은 순간 수령이 1백 년은 더 되었을 법한 느티나무와 그 잎새로 가려진 내리막길이 슬며시 보일 것이다. 그 틈새로 붉은 타일 외벽의 건물을 발견한다면, 제대로 찾은 거다. 

 

피크닉
주소
서울시 중구 퇴계로6가길 30
문의 02-6245-6371 

<아레나옴므플러스>의 모든 기사의 사진과 텍스트는 상업적인 용도로 일부 혹은 전체를 무단 전재할 수 없습니다. 링크를 걸거나 SNS 퍼가기 버튼으로 공유해주세요.

KEYWORD

CREDIT INFO

EDITOR 이경진
PHOTOGRAPHY 이수강

2018년 07월호

MOST POPULAR

  • 1
    하유준&박지후&이승협, 세 청춘을 화보로 담다
  • 2
    진짜 K-팝은 발라드다
  • 3
    왓츠 인 마이 카
  • 4
    등산이 기다려지는 서울 등산로 맛집 5
  • 5
    Spring Breeze

RELATED STORIES

  • LIFE

    CHAMPAGNE SUPERNOVA

    샴페인도 와인인데, 왜 목이 긴 플루트 잔에만 마시나? 서로 다른 스타일의 4가지 샴페인에 맞춤인 잔 4개를 골랐다.

  • LIFE

    HELLO NEW YEAR

    도쿄에는 자신만의 색을 담아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다.

  • FASHION

    바다의 지배자

    25주년을 맞아 더 새로워진 다이버 시계의 대명사, 오메가 씨마스터 다이버 300M.

  • FASHION

    CLOSE TO YOU

    서늘한 계절을 위한 11가지 소재.

  • FASHION

    이세와 라이의 뉴욕 패션위크 런웨이

    첫 번째 런웨이 컬렉션으로 뉴욕 패션위크에 데뷔하는 이세(IISE)와 두 번째 뉴욕 런웨이에 서는 이청청의 라이(LIE)가 지금 서울의 패션을 선보인다.

MORE FROM ARENA

  • INTERVIEW

    운명적인 우연과 올리비아 마쉬의 바람

    세상의 많은 일이 그렇다. 우연이 운명이 된다. 올리비아 마쉬도 그렇다. 호주에서 가족이 보고 싶어 한국에 왔다. 터를 잡기 위해 취직도 했다. 그곳에서 작곡이라는 재능을 깨웠다. 그 재능은 다시 싱어송라이터로 이끌었다. 지난 2월 EP 앨범 을 선보이기까지 그가 관통한 우연과 운명이다. 유명인의 언니를 넘어, 싱어송라이터 올리비아 마쉬로서 그는 자기만의 노래를 부른다.

  • FASHION

    More than Chocolate

    초콜릿보다 더 달콤하고 아릿한 브라운.

  • AGENDA

    고고학자

    9와 숫자들의 9가 잠시 0, 3, 4의 곁을 벗어나 홀로 여정을 떠났다. 그리고 고고학자가 되어 돌아왔다.

  • CAR

    시승 논객

    BMW 뉴 7시리즈에 대한 두 기자의 상반된 의견.

  • INTERVIEW

    <아레나> 6월호 커버를 장식한 배우 손석구

    강인한 매력이 돋보이는 손석구의 <아레나> 6월호 커버 공개!

FAMILY SI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