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시 제목이 ‘기러기 GIROGI’다. 벽면에 각기 다른 새의 입체 드로잉이 자리한다. 이 중에 기러기가 있나?
황당하겠지만 기러기는 없다. 모두 기러기를 제외한 새들뿐이다.
그렇다면 전시 제목이 ‘기러기 GIROGI’인 이유는 무엇인가?
별 의미 없다.(웃음) 이번 전시의 목적이 비움이거든. 그래서 제목부터 설치물까지 모두 아무 의미 없는 것으로 찾았다. 의미가 없는 단어는 빈칸과 같다고 생각한다. 전시에 등장하지도 않는 기러기를 제목으로 정하면서 의미 없음을 극대화했다. 기러기를 영문으로 표현하면 와일드 구스(wild goose)인데 ‘GIROGI’로 표기한 것도 그렇고.
이번 전시 소개에 이런 말이 있다. “자기모순적인 모습들, 가시화되지 않은 폭력성, 필연적인 타협 등을 주어진 공간에 표현했다”라고, 본인 일상에서 이 감정을 포착해 시에 드러내려 했던 게 아닌가?
그 감정을 계기로 작업을 시작한 건 맞다. 그런데 정말 진지한 것은 아니다. 창피할 정도로 사적인 사건으로 시작됐다. 비둘기 때문에 이웃집이랑 다툼이 있었다. 나 스스로도 처음 보는 분노에 찬 모습을 표출했다. 그때 비둘기를 소재로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느낀 감정을 표현하려고 했다기보다 그냥 새로운 작업 소재가 필요했다.
기존 전시에서도 단순한 구조의 설치물들을 보여줬다. 하지만 명확한 개념을 담았던 것으로 안다.
맞다. 단순해 보이는 조형물이지만 그 안에 나의 개념은 확고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비워보고 싶었다. 원칙이나 이유를 찾는 내 작업에 대해서 최근 질려버렸다. 내가 미술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그다음 단계로 이 작품을 완성했다. 그래서 최대한 소재부터 의미까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걸 택하고 싶었다. 나름대로는 극단적인 작업이었던 것 같다.
이번 전시에 무빙 라이트와 사운드를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
전시장이 좀 더 휑하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임을 강조하고 싶었다. 그걸 강조할 수 있는 부가적인 요소를 찾았는데 조명과 사운드였다. 조명은 드로잉이 있는 벽면만을 천천히 비추면서 빈 공간을 극대화해준다. 새의 움직임 소리를 담은 사운드는 벽에 박제된 듯 자리한 새 드로잉과 이질감을 형성해 그 사이에 여백이 생긴다고 생각했다.
빈 공간을 만들고 싶은 욕구가 언제부터 있었나?
빈 공간, 빈칸에 관심이 항상 있었다. 그래서 이전 작품에서 원고지를 도려내거나 제품이 들어 있는 박스 속에 물건만 쏙 빼버리는 작업 등을 했다. 빈 곳, 빈자리, 빈 공간 등 비어있는 걸 자꾸 만들게 된다. 비움과 채움의 간극에 관심이 있는 거 같기도 하고, 비어 있으면 좀 더 생각하게 되지 않나.
김민애의 작품은 의도가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방식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과연 직설적으로 말하는 게 정답일까?’라는 생각이 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작품에 대한 해석을 막아버리는 것 같다. 작품에 감춰진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자꾸 빈 공간을 찾나 보다.
김민애의 작품은 공간과 작품 간의 관계를 더욱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거 같아 보인다. 아뜰리에 에르메스 전시 공간은 어떻게 활용했나?
아뜰리에 에르메스는 강남 한복판 지하에 위치한 갤러리다. 나는 이 점이 흥미로웠다. 바쁘고 복잡한 곳에 자리 잡은 조용한 갤러리. 이곳에 거대한 빈칸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흰 벽의 부조처럼 작품을 설치했고, 이외에는 아무런 설치를 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으면 좋겠나?
모든 관객을 환기하는 전시였으면 좋겠다. 미술 작품으로 가득 채워야 할 전시장이 텅 비어 있을 때 황당한 기분도 느낄 수 있다면 재밌을 거 같다. 원래 복잡한 미술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번 전시는 작정하고 비워냈으니까.
김민애 <기러기 GIROGI>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 45길 7 에르메스 메종 도산 지하 1층 아뜰리에 에르메스
문의 02-3015-3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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