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는 앞으로의 시간이 조금은 막막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재미있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거 같다. 노련하게 부딪혀볼 만하니까.”
닉쿤이 2008년 2PM으로 데뷔했을 때 스물한 살이었다. 10대를 태국과 미국 등 해외에서 보낸 그에게 한국 생활은 전부 낯설고 서툴렀지만, 무대와 방송에서는 웃음을 잃지 않았다. 태국과 중국 등 해외 작품 활동이나 얼마 전 첫 한국 드라마 〈마술학교〉에서도 한결같이 밝게 웃었다. 그래서 닉쿤을 떠올리면 웃음기 가득한 표정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대체 이 웃음 뒤에는 어떤 모습이 있을까?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스튜디오에 나타난 그는 이제 연기뿐 아니라 생활과 일 모든 면에서 닉쿤답게 할 거라 말했다. 억지 부리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는 여행 에세이집 〈여행, 바람을 품은 지도〉를 출간한 여행 작가지만 인생 자체가 여행 같다고, 서른이 되었지만, 알면 알수록 여행도 사는 것도 더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아시아 팬미팅을 준비 중이다. 더는 왕자 같은 이미지가 아닌 진짜 닉쿤을 보여줄 예정이라 한다. 이제부터가 진짜 닉쿤이다.
그간 보여준 밝은 이미지와는 다른 촬영이었다. 정적이면서 무게감 있는 분위기.
처음에는 조금 어색했다. 오랜만에 하는 촬영이고, 그동안 해오던 촬영과는 달리 동작이 크지 않고 가라앉은 분위기를 연출해야 했으니까. 그런데 사실 내가 생각보다 애교가 별로 없고 무언가 집중하면 말수가 줄어드는 사람이다. 진지해지거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기 위해 밝은 모습을 주로 보여주긴 하지만, 사실 말수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맥락에서 내 모습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는 촬영이었다.
2년 전 독립한 이후 골프, 그림 그리기를 하거나 프랭크 시나트라나 마이클 부블레 등의 재즈 음악을 들으며 와인을 즐겨 마시게 됐다고 들었다. 왜 그런지 이제 좀 이해가 된다.
요즘 들어 바이닐로 음악 듣는 게 좋다. 집에서 한강이 보이는데, 평소 다 쳐놓는 커튼을 음악 들으며 와인 마실 때만 활짝 열어둔다. 야경 보면서 혼자 음악과 와인에 취하는 게 좋다.
그때는 주로 무슨 생각을 하나?
미래? 또…. 생각이 많다. 너무 많아서 정리해서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인생이나 일, 과거, 미래, 가족과 친구, 사람 관계 등. 굳이 표현하자면 사는 것에 대해서겠지?
생각에 잠기는 걸 좋아하나 보네. 그래서 여행 작가가 되었나?
하하. 배우 이정진 형과 함께 여행 책을 내긴 했지만, 작가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물론, 여행을 좋아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인생 자체가 여행 같다. 대부분 일 때문이긴 하지만, 해외에 자주 나가고 그 나라의 문화나 언어, 음식을 체험하고 오니까. 자주 떠나다 보니 여행이 도대체 뭔지 잘 모르겠더라. 해외에서 생활한 경험이 많아 더욱 그런 것 같다. 이제는 어딘가를 가면 쉬어야 할지 돌아다녀야 할지 고민까지 한다.
벌써 데뷔 10년 차다. 어떤가? 세상이 많이 달라졌나?
무서워졌다. 어딜 가도 기자들과 스마트폰이 있다. 하하.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는데 팬이 찾아와 사진을 찍자고 하면 기분 좋다. 하지만 말없이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면 조금 불편하다. 나만의 공간이 사라지는 거니까. ‘닉쿤 여기 다니는구나’ 이런 소문이 퍼지면 그곳을 다시 찾기 힘들다. 그렇다고 화낼 수도 없고 짜증낼 수도 없고 뭐라 할 수 없다. 그래서 무섭다. 연예인이라는 일과 내 사생활이 분리되었으면 하거든.
세상이 무서워질 동안 닉쿤은 어떻게 변했을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20대에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았다. 주로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영화 보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게을러진 건 아닌데, 이제 편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다. 혼자 칠 수 있는 골프가 좋은 이유도 그렇다. 그리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을 내려놓게 됐다. 매번 열심히 하지만, 매번 좋은 성적이 나올 수는 없으니까. 매번 기대를 많이 하면 실망을 끌어안아야 한다. 내려놓고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되겠지, 자연스럽게 즐기면 부지불식 간에 좋은 기회가 오겠지 생각하게 됐다.
변화의 계기랄 게 있을까?
나이와 경험? 대박 날 것 같은 노래가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었고 별로라 생각한 곡이 잘되기도 했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더라. 굳이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는 거지. 수년간 여러 가지 일을 헤쳐 나가다 보니 노하우가 생기고, 당장 눈앞의 것도 중요하지만 한 발짝 뒤로 물러나 전체 흐름을 보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여러 경험을 통해서 내적으로 성숙해진 거네.
열두 살에 유학 생활을 시작하면서 집을 나와 산 지 벌써 18년 됐다. 여러 가지로 부딪히면서 실수도 많이 했다. 혼자 슬프고 혼자 행복한 시간이 많았다. 그러면서 성장했다고 믿는다. 덕분에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만 외롭지 않게 됐고. 누굴 만나야 하고 사람들이 옆에 있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게 없다.
오버사이즈 재킷은 푸시버튼, 빨간색 체크 셔츠는 로에베 by 10 꼬르소 꼬모, 검은색 터틀넥 니트는 아르마니 익스페인지, 검은색 구루카 팬츠는 생 로랑 by 무이, 피어싱 디테일 구두는 크리스찬 루부탱 제품.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20대에는 사람 만나는 게 좋았다. 주로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영화 보고 놀면서 시간을 보냈다. 게을러진 건 아닌데, 이제 편히 혼자 보내는 시간이 좋다. 혼자 칠 수 있는 골프가 좋은 이유도 그렇다.”
어린 나이에 집 떠나 혼자 생활했으면 외로움이 컸을 텐데, 괜찮았나?
많이 울었다. 뉴질랜드의 기숙사 학교에서 공부했는데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태국 학생 몇 명하고만 알고 지냈는데, 이러다 영어 못 배울 것 같아서 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때 바쁘게 살면 외롭지 않다는 걸 느꼈다. 굳이 ‘뭘 해야 해! 뭣도 해야 하고 뭣도!’ 이런 식으로 생각만 바쁜 건 바쁜 게 아니다. 일단 부딪혀야 한다. 외로운 감정이 들지 않도록, ‘여기서 열심히 하고 보고 싶은 사람 나중에 보면 되지!’ 이런 생각을 했더니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이 생기더라.
외로움과 고독함에 대해서 나름 대처 방식을 터득한 셈이네?
그런가? 이런 내 모습이 익숙하고 편하다.
미디어에서 보이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나는 사실 조용한 사람이다.
요즘은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나?
오그라드는 말이겠지만, 운명에 기댄 시간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 오디션이 몇 개 들어왔는데, 촬영 직전에 취소된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처음에는 굉장히 아쉬웠는데 이제는 내 것이 아니라 안 된 거라고 생각한다. 내 것이라면 어떻게든 나한테 올 테고 내 것이 아니라면 언제든 떠나기 마련이겠지. 다만, 나한테 온 것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해낸다. 현재는 해외 작품과 아시아 팬미팅 투어 준비에 집중하고 있다. 해외 작품은 좀 더 구체화되면 공식적으로 알리겠다. 팬미팅은 한국, 일본, 중국, 태국에서 할 예정이다. 각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멘트도 다르게 준비할 예정이라, 머리 아프다. 하하.
또 혼자 와인 마시는 시간을 갖겠네.
하하. 그러고 싶은데 해외 작품 준비로 다이어트 중이라 자주 못 마신다. 요즘 술 마시면 얼굴 하고 배에만 살이 붙더라.
닉쿤도 나잇살이 찌나?
예전만큼 활동적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다. 하하. 전에는 헬스장 자주 가고 배드민턴도 곧잘 치고는 했는데. 이제는 골프…. 아저씨가 돼가는 건가? 하하.
아저씨라고 하기에는 닉쿤은 심각한 동안이다. 이 얼굴을 서른이라고 하면 누가 믿겠나? 그래서 묻고 싶은데,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른에 의미를 많이 둔다. 닉쿤이 서른을 정의한다면?
흥분되는 시작점인 것 같다. 20대에는 앞으로의 시간이 조금은 막막하게 느껴졌는데, 이제는 재미있는 마음으로 임할 수 있을 거 같거든. 전에는 아무것도 모르고 부딪혔다면 이제는 경험도 있으니 비교적 노련하게 부딪혀볼 만하니까. 반대로, 알면 알수록 모르겠다는 말처럼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점도 좋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경험이 있지만 이제 시작이라 말할 수 있는 시기인 것 같다.
V앱 방송을 통해 팬미팅에서 왕자 닉쿤이 아닌 ‘리얼’ 닉쿤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리얼’ 닉쿤은 뭔가?
팬미팅 기획하면서 제작진이 왕자 콘셉트로 가자고 했다. 장난으로 알겠다고, 다 갖춰 입은 왕자님으로 등장해서 방송 도중에 의상을 하나씩 벗을 거라고, 마지막에는 평상시 집에서 하던 대로 반소매만 입고 있을 거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나를 태국 왕자라 불렀는데, 요즘엔 나를 진짜 태국 왕자로 알고 마하 와치랄롱꼰 국왕을 아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농담일 수 있는데, 어쨌든 나는 일반 사람이다. 물론, 고마운 별명이지만 이제는 왕자 이미지보다는 그냥 닉쿤으로 가고 싶다. 그래서 방송에서 그렇게 말한 거다. 나도 실수할 때 있고 못할 때도 있고 못생길 때도 있다. 사람이다.
왜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자연스러운 게 제일 좋으니까. 트레이닝복같이 편한 옷이 좋아서 쇼핑을 잘 안 한다. 차려입는 일이 거의 없다. 공항에서도 다른 연예인은 코트 입고 구두 신고 멋지게 나오는데 나는 패딩 점퍼에 모자 쓰고 청바지에 운동화 신는다. 불편하거든. 편한 게 제일이다.
일반적인 연예인이라면 언제든 연예인처럼 보이기 위해 외적으로 치장을 많이 한다.
연예인은 직업이고, 이 직업은 사람들에게 행복과 희망을 줘야 한다. 평소에 멋을 내는 게 무슨 의미인가 싶다. 일반인이 따라 하고 싶은 대상인데, 월급이 너무 다르지 않나? 명품 옷을 입고 금 목걸이 하고 다니면 딱 봐도 연예인이겠지. 하지만 일반인 입장에서 보면 ‘저렇게 되고 싶은데, 돈이 없어’라고 불행하지 않을까? 나는 평상시 트레이닝복 입고 다녀도 연예인이다. 연예인과 인생은 다른 거니까. 연예인이 끝난다고 인생이 끝나는 게 아니다.
정확히 내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네.
뒤늦게 알게 된 거다. 살다 보니까. 연예인뿐 아니라 일반인도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 멋있고 좋아 보인다고 다 따라 하지 않고 자신을 돌보며 자신다운 걸 찾았으면 좋겠다.
10년 전으로 돌아가면 똑같은 선택을 할 건가?
우연찮게 시작했지만, 이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 팬미팅이나 콘서트 할 때 나 때문에 웃는 사람을 보면 굉장히 행복하거든. 말이 더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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