퀼티드 재킷은 블랙아이패치 by 웍스아웃, 줄무늬 터틀넥 톱과 치노 팬츠는 모두 프래그매틱 by 헨즈 제품.
“내가 은근 고집이 있는데, 뭔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창작자의 표현에 제약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더 생각도 과감하게,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힙합 하는 사람’에 대해 갖는 흔한 편견 중 하나가 ‘외모에서 풍기는 포스’가 아닐까 싶다. 조금은 비딱하고 껄렁하게, 옷깃 사이사이로 화려한 타투도 슬쩍 보이게, 걸음걸이도 남다르게. 이런 편협한 맥락에서 본다면 한해는 ‘힙합 하는 사람’과 거리가 먼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말끔한 대학 선배 같은 외모 탓에 ‘남친짤 제조기’ 등의 애칭이 붙었다는 것이 그 증거다. 하지만 ‘팬텀’ 멤버로 데뷔한 2011년부터 한해는 쭉 래퍼였다. 그것도 아주 성실하게, 맡은 파트를 야무지게 해내는. 뭔가 ‘한 방’이 필요하다 싶던 2015년, 한해는 〈쇼미더머니4〉에 출연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판정을 번복했고 승자인 줄 알았던 한해가 다시 패자가 돼 탈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리고 2년 뒤, 다시 한해가 〈쇼미더머니6〉에 등장했다. 아마 다들 폭포수 아래서 수련하며 이를 갈고 나왔을 거라 짐작했겠지만, 정작 그는 자신감을 찾을 돌파구가 필요해서였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준결승까지 진출해 ‘얼굴 잘생기고 랩도 잘하는 한해’를 만천하에 알렸기에 일단 목표는 성공이다. 이제 랩 잘하는 한해가 얼마나 더 괜찮은 음악을 들려줄지 기대하는 일만 남았다.
과거로 한번 돌아가보자. 부산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지내다 힙합에 눈을 떠 무작정 상경했다.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같은 선택을 할 건가?
우선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하지는 않았다.(웃음) 난 늘 중간만 하던 아이였다. 그냥 이렇다 할 꿈 없이 사는 대학생이었다. 대학도 성적 맞춰서 갔는데, 재미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내가 뭘 잘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힙합을 하기로 결심했다. 굉장히 무모했다. 그래서 괜한 자신감도 있었다. 지금 내 삶의 만족도가 꽤 높은데, 과거로 돌아간다고 하더라도 같은 생각일 거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선택 같거든.
‘뭘해도 될 놈’이라는 자신감은 있었나 보다?
될 놈이란 생각까진 아니고 분수를 몰랐다. 하하. 음악을 즐겨 들으면서 힙합에 빠지게 됐고, 가사를 끄적거리게 됐다. 잘은 모르지만 내가 더 잘하겠는데 하는 음악도 있었고. 물론 절대 만만치 않다는 건 서울 올라와 부딪치면서 깨달았다.
미니홈피 시절에 지금의 소속사 사장인 라이머에게 쪽지를 보내서 극적으로 계약을 했다고 들었다. 그런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진다. 의리 때문인가, 아니면 브랜뉴뮤직에서 좀 더 해보고 싶은 목표가 있어서인가?
둘 다다. 라이머 형은 나에게 음악 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 사람이다. 한 2년 전까지만 해도 괜한 사명감이 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브랜뉴뮤직은 좋은 회사지만, 힙합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 한해서 좋지 않은 평가를 받던 시기가 있었다. 그걸 뒤바꿔보고 싶은 이상한 사명감이 생기더라고. 6, 7년 정도 음악을 하면서 다른 회사도 어깨너머로 봐왔지만 우리 회사는 시스템도 잘 갖추고 괜찮은 편이다. 어딜 가든 불만은 생기기 마련이니까. 나를 음악 할 수 있게 이끌어준 사람과 마찰 없이 행복하게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이 크다.
만약 주변 친구가 내년에 〈쇼미더머니7〉을 나가고 싶어 한다면, 뭐라고 말해주겠나?
일단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건 무조건 찬성이다. 그냥 너무 꾸밀 필요 없다고 말해주고 싶다. 꾸밈없는 자기 모습을 보여줘라. 그리고 이왕 나간 거 최대한 많이 뽑아 먹어라. 이 정도 조언을 해주고 싶다.
‘뽑아 먹는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 내 매력을 보여줘서 다음에 음원 냈을 때 대중이 찾아 듣게 만드는 것?
우리 음악 인생이 〈쇼미더머니〉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너무 몰입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지금 이 승부가 아니면 다 끝장날 거야’ 같은 절박함은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몰입도 중요하지만 방송 이후를 생각하며 상황을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가장 자극이 됐던 래퍼로 우찬이를 꼽았는데?
우찬이를 보면서 ‘새 시대가 왔구나’라는 느낌이 들었다. 사실 내가 2005년생과 말을 섞을 일이 거의 없지 않나. 2002년 월드컵 때도 태어나지 않았다기에 놀랐다. ‘이렇게 어린데 말은 제대로 할 수 있어?’ 싶은 애가 나보다 말도 훨씬 잘하고 무대에서도 여유 있었으니까, ‘이제는 우찬이 세대의 시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100%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새로운 종족이 나타났구나 싶은 거다. 그래서 우찬이 얘기를 많이 들어보고 싶고, 무슨 생각하나 궁금하고 그랬다.
뭔가 한 방이 부족한 것 같다는 평을 이 방송을 통해 완전히 날려버린 것 같은데?
나는 힙합 음악을 기반으로 랩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힙합계 사람들과 동떨어져 있다는,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얼마만큼 잘할 수 있는지 가늠이 안 되는 시기였다. 그런데 이번 기회를 통해 무시받지 않고 좋은 피드백을 받으니까 자신감이 조금 올라온 건 사실이다.
“우리 음악 인생이 <쇼미더머니> 로 끝나는 게 아니니까. 예를 들면 ‘지금 이 승부가 아니면 다 끝장날 거야’ 같은 절박함은 독이 될 수 있다. 물론 몰입도 중요하지만 방송 이후를 생각하며 상황을 거시적으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패딩 톱은 라벤헴 by 플랫폼 플레이스, 플리스 셔츠는 파타 by 웍스아웃, 워크 팬츠는 디키즈 제품.
방송에서 꽤 많은 무대를 보여줬다. 가장 ‘한해다웠다’ 싶은 건 어떤 무대인가?
사람들이 ‘임팩트 없다’고 말한 무대가 나에게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하하. 준결승 무대에서 부른 ‘One Sun’이란 곡을 가장 좋아한다. 사실 지극히 내 이야기라서 사람들이 호응을 많이 안 해줬을 수도 있고, 행주 형한테 워낙 크게 져서 좋지 않았던 무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 더 안타까운데, 어떠한 무대 장치도 없이 3절까지 내 이야기를 랩으로 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한 가지 더 꼽자면, 방송에서 통편집됐다가 나중에 미방영분으로 인터넷에 풀린 2차 예선 무대도 좋아한다. 1:1 미션이나 팀 미션, 디스 배틀은 확실한 주제가 정해져 있어 내가 100% 녹아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2차 예선만큼은 100% 나다운 걸 해보자고 결심하고 준비했다.
다들 ‘한해가 칼을 엄청 갈고 나왔다’고 하던데?
사실 칼을 갈았다는 게 나쁜 말은 아니라 부정하진 않겠다. 열심히 하긴 했다. 그렇지만 어디 폭포수 가서 수련하고 온 건 아니다.(웃음) 아무래도 나는 경험을 한 번 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덜 떨었던 것 같다.
여자들이 ‘현실 남친’ 같다고 많이 좋아하더라. ‘한해 남친짤’ 이런 것도 검색되고.
부끄럽다.
근데 한해의 음악을 들어보면 여자 마음을 막 가지고 노는 ‘세상 나쁜 놈’ 같은 노래도 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훈남 이미지’를 탈피하고 싶어서 만든 건가?
그냥 그 시기에 떠오른 아이디어였다. 내가 은근 고집이 있는데, 뭔가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창작자의 표현에 제약이 많다는 게 안타깝다. 그래서 더 생각도 과감하게, 자유롭게 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성인이고 내 생각에 책임을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쁘고 불순한 의도보다 자유분방하게 표현하고 싶었다.
사실 솔직하고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건 무척 큰 용기가 필요하다. 어떻게 보면 사람들이 보고 싶고, 좋아하는 이미지대로 나를 노출하는 것이 더 쉬울 수도 있다. 이를테면 ‘현실 남친 한해’처럼.
‘척’하면서 사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음악 시작하면서 주변에서 그런 사람들을 종종 봐왔다. 실제 자신의 모습과 다른 어떤 틀을 정해놓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사람들. 일단 그렇게 꾸민 나를 한 번 노출하고 나면 그대로 쭉 가야 한다. 그건 나하고 맞지 않다. 살던 대로 살아야 편하다.
요즘 한해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다. ‘한해가 이렇게 잘생겼는지 몰랐다’라는 것과 ‘한해가 이렇게 랩을 잘하는지 몰랐다’라는 것. 아마 후자가 더 반가웠을 거 같은데?
그런 반응이 고팠다. 그동안 나를 좋아해주는 팬의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다. 이번 방송을 통해 남자 팬이 늘어나서 뿌듯하다. 길에서 ‘엇, 한해 형!’ 하면서 다가오는 분들이 있으니까 신기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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