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된 일인지 우리나라에서는 ‘아저씨 점퍼’로 통하지만 대개 ‘바람막이 점퍼’ ‘골프 점퍼’ ‘해링턴 재킷’으로 불리는 이것, ‘블루종’. 많은 사람들이 블루종의 시조로 떠올리는 ‘바라쿠타(Baracuta)’의 G9은 1937년 영국 맨체스터에서 아이작 밀러와 존 밀러가 탄생시켰다. 스탠드업 칼라, 래글런 소매, 글렌 타탄 체크 안감으로 무장한 이것은 1950년경 미국으로 수출되면서 전성기를 맞이한다. 당대 최고 아이돌,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과 〈열정의 무대〉의 엘비스 프레슬리가 입었으니, 길거리엔 블루종을 차려입고 한껏 멋에 취한 사내들로 넘쳐났다. 특히 스티브 맥퀸은 일상과 작품 속에서 블루종에 대한 애정을 열렬히 드러냈는데, 1963년 〈라이프〉 매거진의 커버를 장식할 때도 G9을 입고 있었다. 이때부터 블루종은 남성적이고, 지위와 권위가 있는 남성의 전유물로 자리 잡는다. 이들을 보고 자란 대한민국 아재들, 그 당시를 추억하며 오늘까지 열심히 입는 것은 아닐는지.
그럴 만도 한 것이, 블루종의 가장 큰 매력은 실용성과 기능성이기 때문이다. 품이 넉넉하고 방수 기능이 탁월하니 활동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유용하다. 일 좀 열심히 하는 남자라면 한 번쯤 입어봤을 거다. 본디 남자는 일할 때 가장 빛나 보이는 법.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남자로 꼽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실무를 볼 때 이러한 형태의 재킷을 착용한 사실은 익히 포착된 바 있다. 존 F. 케네디, 빌 클린턴 역시 블루종 애호가로 유명하다. 편안하지만 단정하고 격이 없어 보이는 덕에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들 역시 애용해온 것이다. 바라쿠타와 함께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그렌펠(Grenfell)’은 1923년 선교사 윌프레드 그렌펠의 이름을 딴 첫 직물을 개발하면서 시작됐는데, 그 목적이 ‘선교지에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숨 쉬는 원단’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니 이 재킷, 태초부터 실용성을 안고 태어난 셈이다. 최근의 ‘너드’ ‘놈코어’ 트렌드에 휩쓸려 단지 외면적으로만 착해 보이거나, 평범을 ‘추구하는’ 아이템 정도가 아니라는 말이다.
의외로, 1970년대에는 영국의 스킨헤드족과 모드족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스킨헤드족의 유래를 따져보면 본래 (인종차별주의 성향이 아닌) 노동자 계급 성향이 아니었던가. 힘든 노동으로 거친 성격을 가진 이들은 노동하기에 편한 옷과 신발을 챙겨 입고 머리에 이가 생기지 않도록 삭발을 한, 전형적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영국 청년이었다. 모드족 역시 ‘열심히 일해 번 돈으로 잘 만든 옷 한 벌 구입해 입고 다니자’라는 정신의 멋쟁이 청년들이었으니, 이들이 영국 문화를 상징하는 타탄 체크 안감이 달린 블루종에 열광했다는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닐 거다. ‘워리어 클로딩(Warrior Clothing)’은 이 정통성을 고스란히 담아 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블루종을 출시한다.
주변에 이 재킷을 입고 다니는 남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멋스럽게 스타일링하느냐’보다 ‘이 재킷이 가진 성향을 제대로 알고 입는 남자인가’에 주목할 것. 후자라면, 곁에 오래 두고 볼 일이다. 진짜 남자의 멋이 무엇인지 아는 진국일 테니까. 그리고 새 시대를 맞이한 이 시점. 바라건대, 우리의 대통령이 이 옷을 꽤 자주 입는 행보를 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라 점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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